지난해 내내 나는 핵 위기의 게임이론을 공부했다. 북한과 미국의 최고 지도자들은 곧 핵전쟁을 벌일 수 있다는 위협을 점점 강도 높게 주고받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급변해서 이젠 온 나라가 북한 특수를 입에 올리고 있다. 장하성 정책실장이 남북 경협을 맡았다는 뉴스를 내보낸 청와대보다 돈 냄새에 민감한 변호사들과 투자자들이 더 빨리 움직인다. 금융기관들 역시 평양에 지점을 내는 문제를 검토하고 중국의 투기꾼들은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언론에는 연일 북한의 지하자원 매장량이 소개되며 30년 전부터의 꿈인 부산-파리 간의 철길이 연일 입에 오르내린다. 가스관, 경제특구, 문화 교류 등 15년 전 내가 청와대 동북아비서관일 때 검토했던 항목들도 빠질 리 없다.
최순실씨의 작명대로 ‘통일 대박’이 터지려는 걸까? 하지만 무슨 투자를 하건, 협력을 하건 북한 정권, 더 정확히 말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부터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북한 연구자 어느 누구도 현지에 다녀오지 못했다. 북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나아서 이리저리 추정할 뿐이다. 가장 신뢰할 만한 한국은행의 GDP 통계마저 국정원이 제공한 기초자료, 예컨대 흥남의 공장 굴뚝에서 나온 연기의 양으로 추정한 생산량에 기대는 식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게다가 보수 정권 9년 동안 모든 연구는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우리가 들여다볼 수 있는 시장경제로의 이행 경험은 소련·동구의 사례, 그리고 중국이나 베트남의 역사다. 동구권에선 당이 먼저 붕괴했다. 당의 계획에 입각한 경제는 완전히 마비되어 생산은 줄어들고 물가는 치솟았다. 여기에 IMF 등 국제기구와 미국의 주류 경제학자들이 제시한 쇼크 요법(급속한 가격자유화·개방화·민영화·안정화)은 ‘이행 불황’의 골을 더욱 깊이 팠다. 이들 나라의 신흥 부르주아와 새로운 투자처를 찾은 국제금융자본, 투자 전문 변호사들은 제도의 허점, 제도의 구멍을 찾아 떼돈을 벌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레트 버틀러도 전쟁은 곧 돈벌이 기회라고 갈파하지 않았던가? 대대적 ‘자산 탈취(asset stripping)’가 벌어졌고, 주민들의 삶이 구사회주의 시기 수준으로 돌아오는 데 10년 정도 걸렸다.
동독의 사례는 인상적이다. 서독의 제도를 별 정치적 논란 없이 도입했고 1대 1 통화 교환으로 발생한 경제침체에 대응해서 옛 동독 재정의 30%가 넘는 돈이 수년간 지원됐다. 그래도 통일 독일은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고 그 후유증은 지금도 동독 지역에 남아 있다.
남한·중국 자본이 북한의 자원을 탈취하는 방식이라면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남한과 중국의 자본은 북한의 자원을 탈취해서 단기간에 떼돈을 벌 수는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모두 불행해진다. 더구나 현재 상황에서는 한국 정부가 북한에 재정 지원을 할 수도 없다. 다행히 우리에겐 중국과 베트남의 이행 경험이 있고 이 경우엔 당이 개혁·개방을 주도했다. 그간 북한의 ‘경제 개선(개혁)’ 정책 방향이나 김정은 위원장의 방침을 볼 때 북한은 중국·베트남형 길을 택하려 하겠지만 북한의 경제이론지 〈경제연구〉 일부 필자들의 지나치게 과감한 주장(각종 민자 사업을 지지하고 심지어 파생금융 상품을 만들어 돈을 벌자는 얘기도 나온다)이 한국과 중국의 투자자들, 국제 금융기구의 ‘권고’와 결합하면 불행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북한 특수, 통일 대박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선의로 가득 차 있다 하더라도 그렇다.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도 확실히 필요한 사업, 북한의 점진적 발전에 딱 들어맞는 사업부터 출발해야 한다. 북한 철도 현대화와 연결, 개성공단 재개, 그리고 9년여의 교훈(제도와 규범)을 확산시키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내 짧은 경험으론 그마저도 지난한 사업이다. 오히려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전 세계에서 몰려들 투기꾼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않도록 신중하고 또 신중한 정책을 북한과 협의하는 일이다. 남북 주민들이 모두 행복해질 공동의 사회 경제상을 함께 그릴 수 있다면 말 그대로 금상첨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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