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몸들의 혁명’
  • 오수경 (자유기고가)
  • 호수 561
  • 승인 2018.06.1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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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노브라’로 외출할 때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화장 역시 나의 자유가 아니다. 화장을 안 하면 ‘예의 없는’ 여성이 되고, 예의를 갖추기 위해 없는 시간을 쪼개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라도 화장하면 ‘개념 없는’ 여성이 된다. 옷을 잘 입거나 ‘착한’ 몸매를 유지하는 일도 여성이 갖추어야 할 능력이다. 언제든 몰래 찍힐 수 있는 걸 감수하며 조심하는 일도 여성의 몫이다. 뭇 남성의 심기를 건드리면 제아무리 능력과 사회적 지위를 갖추어도 그저 ‘개시건방진’ 여성이 될 수 있으니 친절은 기본 소양이다. 여성으로 살아가는 건 이토록 피곤한 일이다. 어쩌면 여성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가 강제로 입힌 코르셋을 입은 ‘인형’이 되거나 뷰티 산업의 ‘호갱’이 되어 살도록 설계된 존재일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기보다는 그저 ‘몸’으로만 존재할 때가 많다. (남성의) 즐거움을 위한 몸이거나 (사회를 위해) 생산하는 몸으로서 말이다. 그 몸은 생각하거나 저항하면 안 된다. 그저 평가당하거나 통제당할 뿐이다. 여성의 몸을 심지어 도시와 비교한 정치인도 있다. 김문수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는 도시개발 공약에 관한 질문에 이런 소신을 밝혔다. “어떤 아름다운 여성이 전혀 화장도 안 하고 씻지도 않고 산다? 그거 안 되잖아요. 매일 씻고 다듬고 또 피트니스도 하고 이래가지고 자기를 다듬어줘야 돼요. 도시도 똑같거든요.” 여성의 꾸밈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중년 남성이 정작 자신의 입으로는 지독한 ‘방귀’를 낀다. 여성을 인간이 아닌, 몸이라는 대상으로서만 인식한 결과다. 여성에 관한 무지보다 더 악하다.

ⓒ정켈 그림

이런 남성 중심 사회의 부당한 평가와 억압에 여성들이 강력하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몸들의 혁명이다. 6월2일 불꽃페미액션이라는 여성 단체 회원들이 페이스북 코리아 사옥 앞에서 ‘상의 탈의 시위’를 벌였다. 페이스북이 남성의 반라 사진은 그대로 두면서 여성의 그것은 음란물로 규정하여 삭제하고, 해당 계정에 1개월 정지 처분을 내린 것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여성의 몸은 음란물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내건 이들의 시위에 페이스북은 삭제된 게시물을 복원하고, 계정 정지를 해제했다.

그런가 하면 SNS에서는 10~2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탈 코르셋’ 운동이 한창이다. 외모 평가를 받는 여성들의 연령대가 낮아지다 못해 이제는 초등학생들조차 화장을 한다. ‘#탈코르셋’ ‘#학생이_겪는_코르셋’ 해시태그 아래 빼곡하게 적힌 내용을 보면, 여성들이 경험하는 외모에 관한 억압과 통제가 얼마나 집요하고 강력한지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부당한 시선에 갇혀 온전하게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없었던 여성들이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겠다며 머리를 자르고, 화장품을 버린다.

억압이 강할수록 저항도 거세지는 법

누군가는 이런 여성들의 행동을 극단적이라 여길 수도 있겠다. 단정 짓기 전에 생각해보자. 극단성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억압이 강할수록 저항도 거세지는 법이다. 그 억압은 정당했나? 여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하고, 상의를 벗고, 머리를 자르고, 화장을 지우는 일은 여성이길 포기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금까지 남성의 ‘소유’였거나 ‘공공재’ 취급을 받았던 부당한 시선에서 벗어나 여성 자신의 ‘몸’의 주어를 찾겠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여성으로 살겠다는 선언이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여성은 누군가에 의해 규정되고 평가되는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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