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만한 찌개 없어도 홍콩은 한식 붐
  •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 호수 560
  • 승인 2018.06.1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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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홍콩에는 한식당 붐이 일고 있다. 매년 새로운 집들이 생겨난다. 과거 홍콩 교민들이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먹던 찌개나 탕 또는 한국 음식의 대표 메뉴인 삼겹살, 생갈비구이 따위가 아니다. 4~5년 전쯤부터는 ‘치맥’ 집이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홍콩 뒷골목을 한국 음식이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간 레이저쇼로 유명한 침사추이에 가면 킴벌리 스트리트라는 곳이 있다. 여기가 홍콩 한식대첩의 결전장이다. 원래 한식당이 많은 거리였지만 최근에 가보고 정말 놀랐다. 정말로 두 집 건너 하나씩 한식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과거에는 좀 그럴싸한 레스토랑 위주였다면 지금은 홍콩의 여느 서민식당 같은 분위기랄까? 그중 재미있는 게 ‘컵밥’이었다. 컵밥이 어떻게 홍콩까지 전파되었는지 모르지만, 홍콩에서 팔리는 컵밥은 서울 노량진에서 파는 그것과는 달랐다. 성게알 같은 해산물이 올라간 고급 컵밥도 있었다.

홍콩 한식 열풍의 이정표는 란콰이펑에 있다. 영화 <중경삼림>에서 왕페이가 ‘캘리포니아 드림’을 부르며 햄버거를 굽던 그 자리에는 이제 ‘진주’라는 한식 포장마차가 들어섰다. <중경삼림>의 주요 촬영지인 란콰이펑은 홍콩의 노른자 지역 중 하나인 센트럴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에 속한다. 한식에 대한 수요가 한류에 민감한 청년층에서 화이트칼라, 그리고 홍콩 거주 외국인에게까지 확장되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명윤 제공최근 홍콩에는 한식당이 늘고 있다.
침사추이 거리에 보이는 한식당 간판들.

홍콩 한식 요리의 특이점은 모두 지나치게 맵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괴식’으로 분류되는 ‘캡사이신+치즈’ 조합의 요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게 팔린다는 건 홍콩이 최근 몇 년 사이 매운 요리에 꽤 관대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실 홍콩은 매운맛을 저급하다고 여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운맛이라면 질색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처음 홍콩을 취재할 무렵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쓰촨 훠궈 집을 찾지 못해 놀랐던 적도 있다.

그런 홍콩에 몇 년 전부터 매운 쓰촨 음식 붐이 불었다. 과거에는 몽콕 등 중국 본토 사람들이 주로 찾는 지역에서나 쓰촨 요리 전문점을 볼 수 있었는데, 이제 쓰촨 요리는 물론 그보다 더 매운 맛을 내는 후난 요리 전문 식당까지 생겨났다. 물론 이런 변화에 대해 홍콩 사람들은, 그런 곳은 중국 본토인이나 가는 곳이라며 손사래를 치는 이와, 홍콩 사람도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매운 요리가 당긴다는 사람으로 나뉜다.

매운 요리 익숙해진 홍콩인들 기호에 한류가 더해져


그런 점에서 본다면 홍콩의 한식 붐은 매운 요리에 익숙해진 홍콩인들 기호에 한류가 더해져 생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캡사이신 범벅에 치즈를 얹은 것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일부 분식이 한식의 대표인 양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몇 해 전 꽤 오래된 홍콩의 한식당에서 봄나물을 주제로 한 특별 요리 행사를 연 적이 있다. ‘나물이 홍콩인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지만, 한식의 다양함을 전파하려는 그 노력만은 꽤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제 이런 한식당에서도 앞서 말한 ‘캡사이신+치즈’ 스타일 요리를 내고 있다. 홍콩에 ‘코리안 레스토랑’은 넘쳐나는데, 정작 먹을 만한 된장찌개를 만드는 식당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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