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사운드와 기타가 만나는 풍경
  • 이기용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 호수 560
  • 승인 2018.06.1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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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철은 1990년대 후반부터 원더버드, 서울전자음악단 등에서 밴드 활동을 하며 록 밴드의 지평을 넓혀왔다. 그는 한국 록 음악의 대부 신중현씨의 둘째 아들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 ➉ 신윤철

 

기타리스트들이 기타 솔로를 연주하면서 입으로 멜로디를 따라 하는 것을 혹시 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것은 기타로 솔로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을 우리의 뇌가 흡사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인식해서 벌어지는 반응이다. 즉 기타 솔로 연주는 기타를 성대로 삼아 기타리스트가 부르는 노래인 것이다. 기타리스트 신윤철은 국내에서 기타로 가장 깊이 있는 노래를 부르는 뮤지션이다. 동시에 1990년대 후반부터 ‘원더버드’에 이어 ‘서울전자음악단’으로 이어지는 밴드 활동을 하며 기타 록 밴드의 지평을 넓혀왔다. 2010년에는 서울전자음악단의 두 번째 앨범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Life is strange)>로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을 수상했다.

그는 매우 드문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가족 구성원 전체가 평생 록 음악을 해온 음악인들이다. 한국대중음악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신중현 선생이 그의 아버지다. 그의 어머니는 한국 최초의 여성 드러머인 명정강 선생이다. 한편 록 밴드 시나위의 기타리스트 신대철이 형이고, 드러머 신석철은 동생이다. 그는 어릴 적 ‘집에 펜더나 깁슨 같은 기타들이 널려’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 신윤철이 공연과 녹음에 늘 사용하는 1982년산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기타도 아버지 신중현으로부터 중학교 3학년 즈음 물려받은 것이다. 서울전자음악단의 네 번째 음반을 준비 중인 신윤철을 만나 그의 음악과 최근 그가 빠진 아날로그 사운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윤철 제공신윤철(위)과 그가 속한 밴드 서울전자음악단의 음악은 안으로 침잠하고 때로는 우주를 유영하듯 몽환적이다.

 

이기용:록 음악과 기타는 어떻게 접하게 되었나?

신윤철:기타를 배운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대철이 형한테 끈질기게 부탁해서였다. 그 무렵 나는 비틀스와 지미 헨드릭스에 빠져 있었다. 형은 아버지한테 레슨을 받았지만 나나 동생 석철이에겐 안 해주셨다. 시간이 좀 지나서 아버지가 클래식 화성학 같은 것을 조금 가르쳐주셨다. 레드 제플린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Stairway to heaven)’ 아르페지오 연주법(기타 줄을 한 음 한 음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주법)을 배운 것도 그 무렵이다.

이기용:그게 언제였나?

신윤철:초등학교 6학년 때다(웃음). 아버지가 소리가 좀 작은 연습용 드럼을 구해주셔서 석철이가 드럼, 내가 베이스, 대철이 형이 기타를 치며 집에서 세 형제끼리 합주하고 그랬다. 음악은 주로 블루스 음악을 즉흥으로 연주했다.

이기용:최근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신윤철:시간이 지나면서 슬픔이 더 커지는 것 같다. 박정희 정권을 찬양하는 음악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거절한 후 아버지는 1975년부터 1980년 무렵까지 타의에 의해 음악 활동을 금지당했다. 그 시절 어머니가 고생을 참 많이 하셨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웠고. 당시 아버지가 사회에서 매장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온 가족이 어딜 가나 죄인 취급을 받았다. 학교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친구들 앞에서 ‘앞으로 신윤철이랑 놀지 마라.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다’라고 할 정도였으니.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철이 형이랑 석철이도 같은 일을 당했다고 하더라. 당시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지방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셨다. 오래 집을 비우곤 하셔서 아버지를 자주 뵐 수 없었다. 우리 형제들은 같이 음악 듣고 합주하면서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기용:명반으로 꼽히는 서울전자음악단 2집 <Life is strange>와 3집 앨범은 아날로그 ‘릴 테이프’로 녹음했다. 편한 컴퓨터 녹음이 아니라 과거의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뭔가?

신윤철:1980년대 후반에 CD가 등장하고 녹음 방식이 디지털로 바뀌면서 음악의 소리가 질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CD가 나오면서 음악이 망했다고 생각한다. CD가 나온 배경에는 음반사들이 제작비를 줄일 수 있게 된 측면이 있다. 바이닐(LP)을 만드는 것의 절반 정도 비용밖에 안 들 거다. 문제는 CD를 구성하는 소리의 질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소리의 주파수 모양을 분석하면 모두 곡선 형태이다. 그런데 디지털 주파수는 그렇지 않다. 자세히 보면 날카로운 직각으로 되어 있다. 그렇게 생긴 걸 펄스(pulse)파라고 한다. 즉 디지털 오디오의 소리는 자연에 존재하는 소리파형이 아닌 거다. 서울전자음악단도 처음에는 프로툴(컴퓨터 녹음 프로그램)로 녹음하다가 아날로그 릴 테이프 녹음기로 녹음해봤다. 똑같은 세팅에 같은 마이크로 녹음해서 들어보니 두 소리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큰일 났다 싶었다. 나는 편하게 컴퓨터로 녹음하고 싶은데 도저히 컴퓨터로는 아날로그의 그 따뜻한 질감을 만들 수가 없는 거다. 특히 드럼 소리의 차이가 크다. 디지털 소리도 고음질인 24비트 48㎑로 들으면 아날로그에 좀 더 가까워지긴 한다. 스튜디오에서 나도 192㎑로 녹음을 해봤는데, 저음이 풍부해지는 느낌이다. 나는 요즘 운전할 때에도 LP를 카세트테이프에 옮겨 담아서 테이프로 음악을 듣는다. 카세트테이프 자체가 아날로그 방식이니까 핸드폰이나 mp3로 듣는 것과는 달리 오랫동안 들어도 귀가 피곤하지 않다.

이기용:아날로그 사운드의 전도사 같다. 서울전자음악단의 3집은 아날로그 녹음 외에도 곡 작업 방식이 달랐다고 하던데?

신윤철:3집의 녹음은 밴드 멤버들과 모여서 즉흥으로 연주하며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미리 작곡을 해서 짜인 대로 녹음할 때와 비교해 음악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서로 어떻게 연주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흐름에 따라 호흡을 맞추었더니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음악이 나온 느낌이다. 그 전에는 작업할 때 내 색깔을 많이 집어넣었는데, 이번 앨범에서는 멤버들을 믿고 함께 만들어갔다.

이기용:밴드로, 솔로로, 또 수많은 가수들의 기타리스트로서 오래 활동해왔다. 다음 앨범을 준비 중인데 서울전자음악단의 정체성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고민이 많겠다.

신윤철:예전부터 하려고 생각만 하고 못했던 것인데 음악을 좀 더 사이키델릭 (몽환적인 사운드의 기타 음악)하게 만들어보고 싶다. 원더버드 때부터 지금의 서울전자음악단까지 항상 좀 더 모던한 사운드를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좀 버려야 할 것 같다. 올드한 사운드가 문제가 아니다. 진짜 위기는 밴드의 개성 있는 색깔이 옅어질 때라고 생각한다.

이기용:신윤철의 음악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 자신의 음악 중에서 추천해준다면.

신윤철:서울전자음악단의 곡 ‘서로 다른’과 원더버드의 ‘핑키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리고 제 노래는 아니지만 허클베리핀 공연에 게스트로 가서 기타로 참여한 ‘사막’이라는 곡도 추천하고 싶다(웃음).

그의 음악은 안으로 침잠하고 때로는 우주를 유영하듯 몽환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느리게 말하고 생각에 빠진 채 종종 침묵에 휩싸이는 신윤철의 화법과도 닮아 있다. 하지만 무대에서 기타 연주를 시작하면 관객은 그가 펼쳐놓는 형형색색의 만화경을 바라보느라 정신이 아득해진다. 신윤철이 새롭게 보여줄 더욱 따뜻한 사운드의 사이키델릭의 세계는 어떨지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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