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가 후쿠시마 제1원전을 덮쳤다. 원자로 냉각장치가 멈췄다. 핵연료가 녹아내렸다. 사상 초유의 비상사태에서 초기 대응을 지휘한 것은 총리 관저였다. 그러나 민간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았고, 관저는 정보 부족에 시달렸다. 영화 〈태양의 덮개〉(사토 후토시 감독)는 사고 당시 관저와 도쿄전력이 어떻게 단절되어 있었고 얼마나 속수무책이었는지, 그 안에서 원전 노동자와 피난민, 신문기자, 도쿄의 아이 키우는 여성이 어떤 시간을 보내야 했는지 생생히 복원해냈다. 환경재단과 서울환경영화제 조직위원회가 주최한 제15회 서울환경영화제가 5월20일 상영한 이 영화는 올해 안에 한국에서도 개봉할 예정이다. 영화제를 계기로 방한한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와 영화를 제작한 다치바나 다미요시 프로듀서를 5월21일 만났다. 간 전 총리는 2010년 6월부터 2011년 9월까지 총리로 재임하며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때 내각을 이끌었다. 다치바나 프로듀서는 간 전 총리와 같은 정당 후배로 오카야마 현 의원을 지냈고 현재 콘텐츠 전문 기업 폴투윈핏크루 홀딩스 대표 이사회장이다.

ⓒ시사IN 윤무영서울환경영화제 참석차 방한한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왼쪽)와 영화 〈태양의 덮개〉를 제작한 다치바나 다미요시 프로듀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뒤 7년이 흘렀다. 일본 사회는 어떻게 바뀌었나?

간 나오토:여전히 많은 주민이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 일부는 돌아왔지만 아직도 원전 사고로 인한 고통이 계속된다. 그런 점에선 결코 사고가 끝났다고 할 수 없다. 특히 피해를 받은 분들이 힘든 상황을 겪는 데 대해 정치가로서 책임을 느낀다. 후쿠시마 원전 폐로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도쿄전력 말로는 40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100년이 걸려도 제대로 될지 의구심이 든다. 현 정부는 (전체 에너지 생산의) 20~22% 정도로 원전을 유지하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원전을 없애길 바라고, 내가 속한 정당(입헌민주당) 또한 원전을 되도록 빨리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격렬한 의견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영화를 보면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총리에게조차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간 나오토:실제로 후쿠시마 제1원전 현장 상황이 내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세 가지 패턴이 있었다. 첫째는 현장 자체의 판단이 틀린 경우다. 예를 들어 지금은 멜트다운(원자로 노심 용융)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지만 당시에는 사고 당일 밤 10시까지는 아직 물이 있다고 생각했다. 수위를 재는 측정기가 오작동했다. 두 번째는, 현장에서는 정확히 알고 있는 정보가 도쿄전력 본사를 통해 내게 오면서 손실되거나 잘못 전달된 경우다. 세 번째는, 도쿄전력 본사가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보를 숨기려고 하는 경향 때문에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은 경우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당시 사고에 대해 도쿄전력 회장이나 사장 등이 조사를 받았고, 정치가들도 조사를 받았다. 정치가들은 조사받은 내용을 다 공개했다. 하지만 도쿄전력 관계자들은 본인이 동의하지 않아 지금도 그 정보를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영화 〈태양의 덮개〉 스틸컷영화 〈태양의 덮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초기의 긴박했던 상황을 보여준다. 위는 영화의 한 장면.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했나?

간 나오토:3월12일 아침에 헬기를 타고 후쿠시마 현장에 갔다. 정보가 오지 않으니까 현장 책임자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고 난 뒤 3월15일에 정부와 도쿄전력의 통합대책본부를 도쿄전력 본사에 설치했다. 그때 처음 본사 건물에 들어가 보았는데, TV 회의 스크린이 다이렉트로 후쿠시마 현장과 연결되고 있었다.

사고 대응을 일본의 미디어가 잘못 전달했고, 그것을 바로잡고 싶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잘못 전했나?

다치바나 다미요시:사고가 있던 해인 2011년 5월21일 〈요미우리 신문〉의 1면 톱기사를 예로 들 수 있다. 도쿄전력이 원자로를 냉각시키려 해수를 넣으려 했는데, 간 전 총리가 넣지 말라고 해서 해수 주입이 55분간 멈췄다는 보도였다. 지금도 이걸 믿는 사람이 많을 텐데, 사실 간 전 총리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고 실제로 해수 주입이 멈춘 적도 없다. 그런데도 해수 주입을 멈춰 사고를 확대시켰고 그 지시를 한 사람은 간 전 총리라고 신문에 나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기사는 아베 신조 당시 자민당 의원이 메일 매거진(발신자가 정기적으로 정보를 메일로 보내고, 읽고 싶은 사람이 구독하는 형태)으로 보낸 것과 똑같은 내용이었다. 이 외에도 관저가 정보를 숨겼다거나 ‘멜트다운’이란 말을 관저가 쓰지 말라고 했다는 등 사실과 다른 보도가 있었다(관저는 정보 부족에 시달렸고 ‘멜트다운’을 쓰지 말라는 지시는 도쿄전력 사장이 내렸다).

간 나오토:
당시 도쿄전력 본사가 해수 주입을 멈추라고 지시를 내렸는데, 현장에서는 부하에게 멈추라는 지시를 하면서도 실제로는 멈추지 말라고 했다. 그런 도쿄전력 내부의 경위가 있었다. 어쨌든 〈요미우리 신문〉과 〈산케이 신문〉은 사고 2개월 뒤인데도 해수 주입이 실제로 멈췄는지 사실관계도 조사하지 않고 일부 사람이 말한 내용을 1면 톱에 썼다.

ⓒAP Photo2011년 4월2일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운데)가 이와테 현을 방문해 피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책 〈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를 펴냈다.
저서 〈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 (에코리브르 펴냄)에서 ‘원자력촌 (原子力ムラ)’을 언급했다. 한국에서는 각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친원전 엘리트 그룹을 ‘원전 마피아’라 부른다.

간 나오토:사고가 일어난 뒤에야 ‘원자력촌’이 경제계만이 아니라 정치계, 관료에 대해서도 상당히 큰 힘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은퇴한 관료를 (원전과) 관계되는 회사에 좋은 조건으로 낙하산 취업시킨다든지, 원전에 찬성하는 정치인은 응원하고 반대하는 정치인은 발목을 잡는 식이다. 아베 당시 의원이 했던 행동도 거기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능한 근본적인 이유는 일본의 전력 생산 구조에 있다. 도쿄를 포함한 관동 지역에서 전기를 파는 것은 도쿄전력뿐이다. 지역 독점이 하나의 큰 배경이다. 또 다른 배경은 전력회사가 전기요금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총괄원가 방식이라는 게 있는데, 경쟁이 없으니까 전력요금도 발전비용에 자신들 이익을 마음대로 얹어 결정한다. 예를 들어 히타치나 도시바 같은 회사가 도쿄전력에 전기요금을 좀 더 싸게 해달라고 해도 해주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정치가, 관료, 원전 제조사인 대기업에 대해서도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는 것이 큰 의미에서의 원자력촌이다.

지역 독점이지만 민간기업인가?

간 나오토:그렇다. 국영이라면 국회에서 여러 가지 추궁을 할 수 있지만 민간기업이라 어렵다. 게다가 민간기업이니까 방송이나 신문에 광고를 내서 매스컴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매스컴이 원전을 반대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광고를 주지 않는다고 협박한다든지 한다. 국영의 나쁜 점과 민영의 나쁜 점을 합친 게 지금 일본의 전기회사다.

저서에서 ‘탈원전’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총리로서 경험한 정치가의 의무라고 했다. 아베 현 총리는 원전 재가동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간 나오토:사고 전에는 나 자신도 일본의 원자력 기술력이 높으니 체르노빌 같은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터키나 베트남에 일본 원전이 안전하니 사달라고 하는 입장이었다. 사고가 일어나고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통감했다. 일본에서, 가능하면 전 세계에서 원전을 없애는 게, 내 사명이라 생각하고 활동 중이다. 아베 정권이나 원전을 추진하려는 정치가들은 원전이 비용도 싸고, 이산화탄소를 내지 않아 깨끗하며, 안전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세 개가 전부 거짓말이란 게 확실해졌다. 사고가 났을 때 비용과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비용을 계산하지 않은 채 싸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비싸다. 이산화탄소는 안 낼지 몰라도 방사능은 방출하므로 깨끗하다고는 할 수 없다. 물론 안전하지도 않다. 아베 총리가 말하는 것은 정치적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틀렸다고 상당히 많은 일본 국민이 알고 있다.

일부 한국인은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에 방사능이 함유된 게 아닌지 두려워한다.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금지 특별조치를 연장하고 있다.

ⓒAP Photo2011년 4월2일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운데)가 이와테 현을 방문해 피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책 〈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를 펴냈다.
간 나오토:수출 품목뿐 아니라 국내에서 유통되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소위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을 포함해 시장에 내는 건 모두 검사해 (방사능 수치가) 기준 이하임을 정부가 보증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안전성을 확인하고 있으니 일본의 정치가로서는 사주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 다만 방사능 문제는 예를 들어 아이를 가진 분에게는 상당히 민감하다. 일본에서도 후쿠시마에서 먼 곳으로 피난 간 분도 있다. 그런 개개인의 선택은 선택으로서 존재하는 것이고, 국가 간에서는 모든 걸 안전기준을 충족시켜 내보내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탈원전·탈석탄 선언을 했다. 이후 공론화위원회가 ‘신고리 5, 6호기 건설은 재개하되 단계적으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어떻게 봤나?

간 나오토:대통령이 되기 전 후보 시절의 문재인 대통령을 몇 번 만났다. 문 대통령이 탈원전을 공약해 당선된 것은 탈원전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처지에서 굉장히 기쁜 일이었다. 최근 공론화위원회에서 그런 결론을 낸 것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는 원전 제로를 목표로 한다고 했지만 탈원전 속도가 늦어지는 건 아닌지, 제대로 탈원전을 향해 갈지 밖에서 보면 조금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다. 하나의 포인트는 원전을 줄이면 화석연료를 늘려야 하고 그러면 대기오염 문제가 생긴다는 트레이드오프 상황이다. 지금 한국은 재생에너지 비율이 상당히 낮다. 바로 그것이 탈원전을 추진할 때 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라 본다.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더 많이 이용해야 한다. 한국의 기술력과 경제력으로 서둘러 늘리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면 원전을 없애도 화석연료를 많이 안 써도 된다. 일본도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7년 동안 태양광 발전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가 전체에서 5% 늘었다. 이것이 계속되면 원전이 점하고 있던 30%가 0%가 되어도 그만큼 재생에너지를 늘려서 채울 수 있다. 한국에서도 재생에너지 추진으로 원전을 없애는 기간을 더 단축할 수 있고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게 내 조언이다. 세계 추세를 보면 원전으로 만드는 전기보다 풍력 생산 전기가 더 많다. 예를 들어 중국은 풍력발전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이다. 한국과 일본, 장래에는 북한까지 포함해 동해상에 공동으로 해상 풍력발전 생산기지를 건설하는 게 결코 꿈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북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최근 남북관계가 급격히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과 일본이 어떻게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고 보나?

간 나오토:일본이 전쟁 전 남북을 포함한 조선을 식민지화했고,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것도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북한의 관계가 좋아지고, 나아가 일본과도 관계가 개선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 물론 과제가 많이 있다. 특히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피해자들이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문제도 포함해서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분단된 한국과 북한이 장래에 통일이 될 수도 있고, 일본도 북한과 평화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그것은 세 국가에 좋은 일일 뿐 아니라 세계 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은 일본의 정치가로서 응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간 나오토:세계가 탈원전을 향해 가고 있다. 원전을 계속 유지하면 에너지 전환 흐름이 늦어져 경제적으로도 손해다. 원전 제로를 향해 가자는 결의를 지금 (한국의) 대통령이 갖고 있다. 그걸 얼마나 빨리 실현하느냐, 그 열쇠는 재생에너지에 있다. 거기에 더해서 에너지 절약이 필요할 것 같다. 일본은 사고 뒤 전력 소비가 10% 줄었다. 그렇다고 생산이 줄어든 건 아니다. 에너지 절약과 재생에너지를 함께 추진하는 것이 탈원전을 서둘러 추진하는 데 하나의 키가 된다는 점도 조언하고 싶다.

다치바나 다미요시
:공론화위원회에서 신고리 원전 건설 계속을 결정한 것은 아쉽다. 민의라는 건 계속 변하는데 40년, 60년 뒤 일을 결정해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탈원전 사회를 목표로 하더라도 속도가 느리면 때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후쿠시마 사고가 그렇다. 국외에서는 여덟 번째 상영인데, 이 영화를 보면 공론화위원회 결정도 바뀌지 않을까.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