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3일 오후 2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첫 재판이 시작됐다. 검은색 양복, 흰색 와이셔츠 차림의 이명박 피고인은 서류 봉투 하나를 손에 쥐고 재판정으로 들어왔다. 그가 선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은 정확히 1년 전인 2017년 5월23일 박근혜 피고인이 첫 공판을 받은 장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정계선)가 재판을 맡았다.

ⓒ연합뉴스뇌물수수, 다스 자금 횡령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오른쪽).

판사:재판 시작하겠다. 언론인들 촬영 중인데 여러 의견 있었지만 이 사건 성격이나, 국민적인 관심도, 알권리를 고려해 촬영을 허가했다. 먼저 검찰 측 공소사실 요지 설명해달라(검찰은 다스 법인자금 횡령, 법인세 포탈, 다스 미국 소송 관련 직권남용, 삼성 뇌물수수, 국정원 뇌물수수·국고 손실, 공직 임명 대가 뇌물수수·정치자금법 위반, 대통령기록물 유출·은닉 혐의 등을 설명했다). 피고인 인정하나요?

변호인:다스 비자금 조성 관련 사실 자체 전부를 부인한다. 비자금 조성을 지시한 적 없고 그런 사실을 인식하지도 못했다. 선거캠프 직원 및 여비서 급여 제공, 다스 법인카드 사용 등은 친인척 간 지원일 뿐 횡령이 아니다.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도 지시한 사실이 없으며 특히 업무를 수행한 직원들이 강요에 의해 수행한 것이 맞는지 의문스럽다. 삼성으로부터 소송비 대납 사실도 전혀 인지하거나 보고받은 사실이 없다. 국정원 자금 수수 관련해서도 그 자금이 피고인 지시에 의해 청와대로 온 것인지, 검찰이 주장하는 목적대로 쓰였는지 다투고자 한다. 검찰이 제기하는 여러 사실 중에 공소시효가 만료된 것이 대부분이다.

판사:피고인, 변호인 말 들었죠? 그 취지로 부인하나?

이명박:네, 그렇습니다.

판사:말씀하실 부분이 있나?

이명박:공소사실이 사실과 너무 다르다. 검찰도 아마 속으로 그것을 알 것이다. 무리한 기소라고 생각한다. 제가 이렇게 써왔기 때문에…. (초록색 공책에 써온 자필 진술서를 꺼내 읽음. 이날 공판의 주요 쟁점인 다스 소유 부분만 간추렸다.) 제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다스 소유 건이다. 1985년 제 형님과 처남이 회사를 만들 때 정세영 회장이 부품 국산화 차원에서 자격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인데,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형님이 하는 것이니까 괜찮다고 하면서 정주영 회장도 양해한 일이라고 하여 시작되었다. 그 후 30여 년간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소유나 경영을 둘러싼 그 어떤 다툼도 가족들 사이에 없었던 회사를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 의문을 갖는다.

검찰:(채동영 전 다스 경리팀장·김○○ 전 다스 총무차장·김종백 전 이상은 운전기사 등의 진술조서 내용을 공개했다). 채동영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친고모가 이명박과 친분이 있어서 다스 취업 부탁을 해줬다. 영포빌딩에서 만난 이명박은 ‘경주에 갈 수 있느냐, 거기서 일해라’고 말했다. 이상은은 중요 서류 결재한 적 없고 무슨 일하는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이명박이 다스 경영 사항 관련해 보고받는 모습을 여러 번 직접 목격했다. 2003~2004년경 최○○ 생산기술본부장과 함께 서울 가회동 이명박 집에 가서 다스 해외시장 및 해외영업 상황을 보고한 적이 있다. 이명박은 별다른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BBK 140억원 반환 소송 관련, 상공회의소에서 주주명부 등 번역본 공증받아서 김백준과 함께 이명박을 직접 만났다. 당시 이명박이 ‘이 서류에 사인하면 140억 받을 수 있는 거야?’라고 윽박지르듯 김백준에게 말하는 걸 목격했다. 2008년 2~3월경 (이명박의 조카) 이동형과 함께 이명박을 만난 적도 있다. 이동형은 이명박에게 특검과 다스 관련 이야기를 했고 이명박은 ‘야 그럼 네가 경주 내려가서 잘해봐라’ 했다. 얼마 뒤 다스에 입사한 이동형은 실권을 장악하며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릴 듯 점령군 행세를 했다. 미국에서 김경준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던 시기, 김성우(전 다스 사장)가 변호사들과의 회의 결과를 타이핑해 나에게 이명박한테 팩스 보내라고 지시했는데 그 문서 타이틀이 ‘회장님께’였다.”

변호인:지시했다는 진술은 없고 보고했다는 진술뿐이다. 이명박은 채동영 입사에 대해 기억을 못한다. 연 1회 추상적으로 보고받고 추상적으로 지시한 적은 있다고 하셨다. 140억원 부분 관련해서는 대통령이 사인할 리가 만무하다. 이상은이 대통령께 가끔 보고받아 달라고 했다. 이명박은 전문 경영인 김성우에게 맡겼으니 견제 차원에서 필요하다 이해하고 정기보고가 아닌 1년에 한 번 가끔 받아달라고 부탁받을 때마다 보고받았다.

검찰:김○○ 전 다스 직원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이명박이 현대건설 사장이던 무렵 김성우는 자금담당 부장, 권○○(전 다스 전무)는 자금담당 대리로 함께 근무했다. 공장장, 이사들도 현대건설 출신으로 이명박이 직접 영입했다. 이상은이 영입한 임원은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역할이 전혀 없었고, 사실상 바지 회장이었다. 왕회장(이명박)은 서울시장 되기 전까지는 다스 방문이 잦았다. 제가 직접 울산공장 수행해 모신 것만 다섯 번이고 김성우, 권○○가 수행한 적도 많다. 김성우 지시로 울산공항에 미리 가서 다스 법인카드 이용해 김포행 VIP 항공권을 끊어 대기하다가 이명박에게 전달했다. 경주에 다스 2·3공장 부지 3만8000평 조성할 때도 직접 현장 내려간다 해서 제가 픽업해 모셔다드렸다. 김성우가 이명박이 신을 신발 갖고 오라 전화해서 270㎜ 안전화 한 켤레를 갖고 올라가 이명박이 제가 보는 앞에서 신발 신은 적도 있다. 다스 부지 3만8000평 중 1만 평은 오○○ 명의로 차명 관리했다. 오○○의 협조를 구하고자 그와 관련된 건설업체에 토목공사를 수의계약으로 주기로 했다. 그런데 이명박이 서울에서 현장에 내려와 김성우에게 ‘김재정 명의로 돼 있는 태영개발이 자회사로 있는데 왜 그 사람에게 수의계약 주느냐’라고 질타해 파기하고 태영개발에 줬다. 그러자 오○○은 손도끼 들고 들어가 김성우 어깨 부위를 내리쳐 특수상해죄로 1년간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명박 가족은 다스 법인카드를 소지하면서 지출했다. 이수연(이명박 피고인의 셋째 딸)은 다스 명의 차량을 운전하다가 버스와 접촉사고가 나서 김윤옥 여사가 다스 사무실에 전화해 차 보험에 대해 문의했다. 제가 직접 김 여사와 통화했다. 이명박은 서울시장이 되기 전, 다스 명의로 에쿠스 리무진을 출고해 타고 다녔다. 학생 신분이 끝나고 직장이 없던 상태인 이수연이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한 위장 재직증명서와 통장 잔고증명서도 다스에서 만들어 보냈다. 이명박의 동지상고 후배인 다스 경리차장 정○○은 서울시장 선거 당시 다스 대리급 직원 10여 명을 차출해 선거 캠프에 참여했다. 다스에서 이명박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를 대량 구입해 경주 시내 식당 카센터 등 사람 모이는 곳에 엄청나게 많이 뿌리기도 했다.”

다음은 이상은 전 운전기사 김종백의 진술 내용이다. “이영배(다스 협력업체 ‘금강’ 대표)와 이병모(청계재단 사무국장)는 이명박의 재산관리인이었다. 이상은 재산 중 상당 부분은 이명박과 이상득의 차명 재산이다. 매년 5월 종합소득세 재산 신고할 때 되면 제가 이상은의 도장을 들고 은행을 돌아다니며 이자배당소득 증권 거래확인서,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등 서류를 떼서 이병모에게 전달했다. 2007년 10~11월께 대선 전 다스의 실소유자 문제가 이슈화되며 검찰 조사 대비로 다스가 매우 바빴다. 권○○는 압수수색에 대비해야 한다며 증거인멸과 자료 폐기를 진두지휘했다. 1t 트럭 3대 분량 서류를 양산의 폐지업체에 주면서 폐기를 부탁했다. 그 업체는 퇴사한 다스 직원의 부모가 운영하는 업체다. 이상은 사무실 컴퓨터 파일 삭제도 지시받았는데, 제가 미처 발견 못하고 남긴 중요 파일을 당시 특검 검사가 열어보기도 했다.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는 경주·포항 참석자 명단 서류였다. 2012년 10월~11월 내곡동 특검 때도 증거인멸이 이뤄졌다. 당시 진두지휘는 이시형이 했다. 이시형이 ‘특검이 내일 압수수색하러 오니 주의하라’고 전화했다. 이상은 PC를 모두 회수하라고 지시해서 이상은의 경주 사택, 다스 서울사무소 내 회장실, 이상은의 서울 본가를 찾아가 PC를 모두 빼 회사 업무용 차량에 실은 뒤 회사 밖에 차를 세워뒀다. 감사비서실도 압수수색을 당할 수 있다며 ‘의전실’로 명패를 교체했다. 비서실은 압수수색 당하지 않은 걸 분명히 기억한다. 다음 날 이렇게 기지를 발휘해 압수수색 모면했다고 강경호(당시 다스 사장)에게 보고했더니 ‘허허 그래?’라고 웃던 기억이 난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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