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기업’이라 비난받는 대한항공을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한 것은 지나친 특혜입니다. 동의하십니까?”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기장이 물었다. 5월12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제2차 ‘조양호 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 STOP 촛불집회’에 가면을 쓰고 나온 대한항공 직원들은 “네!”라고 답했다. ‘대한항공 직원연대’는 조직을 꾸리고 항공사 필수공익사업 지정 철회를 국회에 요구하기로 했다.

ⓒ시사IN 신선영5월12일 서울시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조양호 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 STOP 촛불집회’에 참석한
대한항공 직원들이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있다.

그동안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터무니없는 전횡과 ‘갑질’이 가능했던 것은 대한항공 내부에 회장 일가를 견제할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조가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인 파업은 사측에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항공운수업은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되어 파업 기간에도 ‘필수유지업무’는 ‘공익’을 위해 정상적으로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노동자들은 파업 중에도 국제선 80%, 제주선 70%, 내륙선 50%의 운항률을 유지해야 한다.

노조가 파업하면 회사가 오히려 돈을 번다. 2016년 12월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7일간 파업했을 때, 대한항공은 수익성이 떨어지는 국내선 여객을 15% 줄인 반면 국제선 여객은 1%만 줄였다. 국내선 운항을 담당하는 소형 기종인 보잉737 기종은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대한항공의 수송·공급 데이터를 파업 전후 및 전년도 데이터와 비교해보면 파업 기간 중 국내선은 1∼1.5%, 국제선은 3.8∼4.1% 수익성이 증가했다는 분석도 있다(이기일 ·강을영, 〈필수유지업무 제도의 위헌성에 관한 연구〉, 2017).

대한항공 등 항공운수업이 처음부터 필수공익사업이었던 것은 아니다. 필수공익사업이란 그 업무를 멈추거나 그만두면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거나 국민경제를 현저히 저해하고 업무 대체가 쉽지 않은 사업을 말한다(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71조·이하 노조법). 2006년 법 개정 직전에는 철도·지하철·수도·전기·가스·석유정제·석유공급·병원·한국은행·통신만 필수공익사업이었다. 이런 사업장에서 노사 조정이 결렬되면 중앙노동위원회가 직권으로 중재에 부칠 수 있었고, 일단 중재에 회부되면 15일 동안 파업을 할 수 없었다. 중재안이 단체협약과 동일한 효력을 가져 사실상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중재안을 거부하고 파업에 돌입하면 ‘불법 파업’이었다. 공권력 투입과 구속, 해고가 이어졌다. 

‘파업 시에도 운항률 유지해야 한다’

직권중재는 사전에 파업 자체를 봉쇄하는 제도여서 국제노동기구(ILO)가 한국 정부에 1993년부터 13차례나 개선을 권고했다. ILO는 또 철도, 도시철도와 석유사업은 파업권을 제한할 수 있는 ‘엄격한 의미의 필수서비스’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필수공익사업 범위를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노무현 정부는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의 하나로 직권중재 폐지를 추진했다. 2006년 9월11일 민주노총이 빠진 노사정위원회(한국노총·경총·대한상의·노동부)는 직권중재를 없애는 대신 필수공익사업 범위를 넓히고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도입하며, 필수공익사업 파업 시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노사정 대타협’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국회가 2006년 12월 노조법을 개정하면서 항공운수업이 혈액공급사업과 함께 필수공익사업에 포함되었다. 이는 2000년대 초반부터 경영계의 숙원이었던 필수공익사업 확대를 직권중재 폐기와 ‘거래’한 꼴이었다.

ⓒ연합뉴스2005년 12월8일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임금협상 결렬을 선언하며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1999년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 2000년 아시아나 조종사노동조합이 출범하고 2001년 이들이 연대파업을 벌이는 등 단체행동권을 행사하자, 경총·전경련·대한상의 등 재계는 항공산업을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재계 요구는 집요했다. 2005년 7월 아시아나 조종사노조, 같은 해 12월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파업을 벌여 ‘귀족 노조의 이기주의’라는 비난이 극에 달한 것이 결정타였다. 아시아나항공은 파업 25일, 대한항공은 파업 3일 만에 김대환 당시 노동부 장관이 긴급조정에 나서 파업을 종료시켰다. 당시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간부를 맡았던 한 기장은 “파업이 성과 없이 끝나고 언론의 질타가 이어지면서 ‘이러다 필수공익사업 얻어맞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있었다. 나름대로 토론회도 하고 집회도 열었지만 필수공익사업 지정을 막지 못했다. 회사가 필수공익사업 지정을 위해 공을 많이 들인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개정된 노조법은 필수공익사업뿐 아니라 필수유지업무 개념에도 공중의 생명·건강·신체의 안전 외에 ‘공중의 일상생활’이라는 포괄적 개념을 끼워넣었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 ‘공중의 일상생활’은 범위가 넓으니 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을 때, 김성중 당시 노동부 차관은 사실상 항공운수업 때문에 넣은 것임을 인정하기도 했다. 항공운수업 포함에 반대 목소리를 낸 것은 단병호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 정도가 유일했다. 개정 노조법은 2006년 12월22일 국회 본회의에서 167인 중 찬성 152명, 반대 10명(전원 민주노동당 의원), 기권 5명으로 가결되었다.

정부는 2007년 11월30일 노조법 시행령을 신설해 각 필수공익사업별 필수유지업무를 열거했다. 항공운수업 사업장에서는 탑승 수속, 항공기 조종, 객실 승무, 정비 등 ‘일단 비행기가 뜨려면 필요한 14개 업무’가 모두 포함되었다. 민간 항공사와 공항 운영기관의 업무도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필수유지업무란 파업을 하는 경우에도 유지되어야 하는 업무를 의미하는 것이지, 파업을 하지 않는 경우와 똑같이 유지되어야 하는 업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비행기가 뜨지 않는 경우에는 탑승 수속이나 객실 승무 업무를 하지 않더라도 공중의 생명이나 안전에는 전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국제선 비행기를 타는 것이 공중의 일상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노조법은 파업 기간에 필수유지업무를 최소 어느 정도로 운영할지, 어떤 직무에 몇 명이나 배치할지 노사 간 협정으로 정하도록 했다. 이 같은 방식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할 여지를 열어둬 일견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대한항공의 사례는 이런 장치가 이른바 ‘어용노조’라는 현실을 만났을 때 어떻게 왜곡되는지 보여준다. 직원 1만9000명 중 약 1만1000명이 소속된 한국노총 산하 ‘대한항공 노동조합’은 위원장을 간접선거로 뽑고 임금협상마저 사측에 위임해 ‘어용노조’라 비난받는 곳이다(최근 이 노조는 박창진 사무장이 어용노조라고 자신들을 비난했다며 그를 조합에서 제명했다). 1965년 설립된 뒤 단 한 번도 쟁의행위를 하지 않았다. 2008년 1월1일 필수유지업무제도가 시행되자 대한항공은 사측에 협조적인 이 노조와 2008년 6월부터 12월까지 협정 체결을 위한 교섭을 진행했다. 대한항공 사측은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며 2008년 12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서울지노위)에 필수유지업무 수준을 결정해달라고 신청했다.

ⓒ연합뉴스2006년 9월11일 노사정위원회는 직권중재를 없애고 필수공익사업 범위를 넓히는 데 합의했다.

2009년 2월 노동부 관료 2명과 변호사 1명으로 구성된 서울지노위 특별조정위원회 공익위원들은 “심도 있게 논의”한 결과라며 ‘국제선 80%, 제주선 70%, 내륙선 50%’를 필수유지업무 수준으로 결정했다. 국제선의 경우 ‘대체 교통수단이 거의 없고, 장기 스케줄로 예약해 항공사 간 대체도 어려운 데다, 수출입 차질로 국가경쟁력과 국가신인도가 저하되며, 국민이 불편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제주선은 제주도의 필수 교통수단이고 국가적으로 제주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서울지노위 결정으로 필수유지업무 범위가 정해진 뒤, 대한항공의 또 다른 노조인 민주노총 산하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조합원 약 1100명)도 2009년 11월 협정 체결을 위한 교섭을 사측과 진행했다. 사측은 이미 서울지노위에서 정한 운항률을 안으로 들고 나왔다. 

박제성 연구위원은 “운항률을 천편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은 필수유지업무의 본래 취지와 잘 부합하지 않는다. 기본 취지는 파업권과 공익의 조화이므로 공익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노선별 운항률을 다르게 정하는 것이 좀 더 취지에 부합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2010년 3월 서울지노위는 대한항공 노조와 같은 운항률을 조종사노조의 파업 시 운항률로 결정했다. 조종사노조는 재심을 신청했지만 중앙노동위원회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이 상황을 잘 아는 대한항공의 한 기장은 “다른 항공사로 대체가 가능한 노선과 단독 취항 노선을 구분해 승객 탑승률에 근거한 운항률을 제시했는데도 결과는 같았다. 똑같은 사업장인데 다르게 정할 수 없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조종사노조는 사측으로부터 적절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해 정보공개 청구까지 해야 했다.

이렇게 노선별 운항률이 획일적으로 적용되면서 노조의 교섭력은 약화되었다. 전직 대한항공 기장은 “힘 있는 노조라야 교섭도 할 수 있다. 필수공익사업 지정은 머슴의 손발을 잘라 포도청에 묶어놓은 꼴이다. 필수공익사업 지정이 안 되었다면 이번 ‘갑질’ 사태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다른 기장은 “파업해도 욕은 안 먹게 되었지만, 대신 승객들이 우리가 파업을 하는지 뭘 하는지 모르게 되었다”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항공사 파업권을 입법으로 정한 사례 드물어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 기준에서 파업권을 제한할 수 있는 필수서비스에 항공관제 업무를 제외한 전반적인 항공운수사업은 해당되지 않는다. 파업 시 ‘최소 서비스’를 운영하는 경우에도 파업이 효과를 잃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탈리아 등 필수업무에 관한 특별한 입법을 둔 나라에서도 최소한의 서비스를 규정하는 데 그치고 구체적 내용은 노사 단체협약에 맡긴다. 민간 항공사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한국처럼 입법으로 제한하는 예는 찾기 어렵다. 2016년 조종사노조는 국세청에 조양호 회장 일가 세무조사를 청원하는 등 일련의 경영감시 활동을 벌였지만 파업권이 무력화된 상황에서 역부족이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측에서 일했던 강경모 노무사는 “노동조합은 경영진의 잘못과 비리를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 교섭하기 위해서다. 노사 간 힘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항공관제 등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는 업무로 필수공익사업 범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헌법상 보장된 파업권의 침해뿐 아니라, 노동조합이 담당하는 공적인 역할을 고려해서라도 항공운수업 필수공익사업 지정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