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5월은 정말 뜨거웠다. 이미 3~4월부터 기획된 ‘전두환 군사독재 타도’를 위한 시위와 농성, 타격전을 쉴 새 없이 이어나가야 했다. 비장했지만 두려웠다. 많은 사람들이 적(敵)과 아(我), 윤리와 패륜, 민족과 반역을 강렬하고 단순명료하게 가른 그의 문장에 의지하며 결의를 다졌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자가 수천 동포의 학살자일 때 양심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할 곳은 전선이다 무덤이다 감옥이다.” 유신 정권에 맞서 투쟁하다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시인 김남주가 몰래 내보낸 시(詩) ‘학살’의 일부분이다.
김남주는 마르크스주의자답게 인간과 사물을 철저히 물질주의적이고 계급적 관점으로 읽어야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진실에서 ‘적’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다. 이들에 대한 ‘무기의 비판’을 통해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 김남주와 ‘우리들’ 앞에 놓여 있었다. “길은 내 앞에 놓여 있다. 여기가 너의 장소 너의 시간이다. 여기서 네 할 일을 하라.”(‘길’)
그렇다! 김남주는 저항 시인이라기보다 혁명가였다. 1988년 말에 석방되자마자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목도해야 했던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나는 김남주로부터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떠올린다. 피할 수 없는 ‘인간 조건’에 대항하기 위해 성실하고 과감한 행동으로 자기 삶의 극대치를 실현해버리는 사람들.
〈조국은 하나다〉는 1988년에 출간된 김남주의 세 번째 시집이다. 이미 절판되었지만, 이 책에 실린 시의 대부분은 2014년 출간된 〈김남주 시전집〉 등 다수의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내달려 전진하고 기다려 역습하고 피투성이로 싸워야 할”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승리하고 패배하면서 빵과 자유와 피의 맛을 보아야 할”(‘동지여’) “창창한 나이”의 청년들에게 김남주의 시를 간곡히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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