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날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었을까요?” 턱수염이 희게 센 쉰일곱의 조종사가 큰 눈을 껌벅이며 말했다. 장애물 없이 하늘을 날고 싶던 제주도 소년은 항공대학을 나와 공군 ROTC로 6년간 복무한 뒤 1991년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보잉 747기를 운전해 제주도, 중국, 동남아시아, 미국, 유럽으로 승객을 나른다. 올해로 조종사 28년차인 이규남 대한항공 기장(57)은 스스로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블랙리스트 1호’라 칭한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을 위해서 대한항공을 변화시켜놓고 가야겠다”라는 생각에 2016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2년간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최근 ‘물컵 갑질’이 불거지기 직전까지 대한항공 내부의 최전선에서 조 회장에게 맞섰다. 조종사노조 위원장으로 재임할 때 언론은 거의 예외 없이 그를 ‘강성’이라 불렀다.

ⓒ시사IN 이명익이규남 대한항공 기장(위)은 2016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2년간 조종사노조 위원장을 맡았다.
위원장 취임 직후 열린 2016년 3월18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 이 기장이 조종사 유니폼을 입고 참석한 것부터가 상징적 장면이었다. 주주총회 참석 이유에 대해 이 기장은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가진 5000만원 상당의 주식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러 갔다. 2015년 영업이익이 8000억원인데도 한진해운 지원, 로스앤젤레스 호텔 건설 등으로 부채 비율을 1000%에 육박하게 만들어 경영에 손실을 끼친 사람들을 이사로 재선임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지창훈 당시 대한항공 사장이 첫 번째 안건인 재무제표 승인을 처리하려 하자 이 기장은 “반대 의견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가 “주주면 유니폼을 벗어라”는 말과 함께 저지당했다. 결국 안건은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이 기장은 뒤이어 처리된 조양호 회장 등 이사 선임과 이사 보수 승인 건에 대해서도 발언을 요청했으나 허용되지 않았다.

이규남 위원장 시절 조종사노조 집행부는 시종일관 회장 일가를 정면 겨냥했다. 회장의 ‘갑질’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한항공 부기장 김 아무개씨가 페이스북에 조종사가 비행 전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글을 올리자 조양호 회장은 “조종사는 GO, NO GO(가느냐, 마느냐)만 결정하는데 힘들다고요? 자동차 운전보다 더 쉬운 오토파일럿으로 가는데. 개가 웃어요”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 기장과 조종사노조는 2016년 5월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조 회장을 고소·고발했다.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되었지만, 우리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라고 이 기장은 말했다.

ⓒ시사IN 조남진5월1일 ‘물컵 갑질’로 논란을 일으킨 조현민 대한항공 전 전무가 강서경찰서에 출석하고 있다.
“우리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

지금 터져 나오는 조 회장 일가의 수많은 위법 의혹에 대해서 조종사노조는 당시 무모할 정도로 목소리를 냈다. 2016년 8월 조종사노조는 조 회장 일가의 탈세 의혹을 제기하며 세무조사를 촉구하는 집회를 국세청 앞에서 열었다가 회사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이 기장과 조종사노조는 한진해운 자금 지원과 가족기업 일감 몰아주기, 진경준 전 검사장에 대한 탈세 무마 청탁 의혹과 관련해 조양호 회장 등 경영진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과 제3자 뇌물공여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조합원을 무더기로 징계한 대한항공과 운항본부장을 고용노동부에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하기도 했다.

해를 넘긴 임금협상을 둘러싸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조종사노조는 2016년 12월22일 마지막 카드인 ‘파업’을 꺼냈다.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은 2005년 이후 11년 만의 일이었다. 2005년 파업 당시 조합원 1340명 가운데 1050명(73.4%)이 파업에 참여했고 운항률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2016년 7일간의 파업은 전혀 달랐다. 2005년 조종사 파업을 계기로 2006년 12월 항공운수사업이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필수공익사업으로 규정되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라 필수유지 업무의 범위를 노사 간 협정으로 정하도록 되어 있다. 결국 항공 노동자들은 파업 기간에도 국제선 80%, 제주 노선 70%, 국내선 50%의 운항률을 유지해야 했다. 2016년 조합원의 20% 정도만 파업에 참여했고, 운항률은 95%를 기록했다. 이 기장은 “평상시에도 전원이 다 비행에 나가지 않는데 80%가 근무해야 한다면 파업은 아무 의미가 없다. 쉬는 날 파업하는 꼴이다. 회사는 파업을 핑계로 국내 적자 노선 편수를 줄여 오히려 이익을 봤다. 이러면 회사가 노동자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2016년 12월22일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이규남 위원장(맨 앞줄 왼쪽)이 조합원들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앞에서 열린 파업 출정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파업이 회사 측에 준 타격은 미미한 반면 ‘1억원 넘게 받는 조종사들이 37%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는 비난은 강력했다. 이 기장은 “조 회장 보수가 그만큼 올랐다는 기사를 보고 상징적 숫자인 ‘37%’를 제시했다. 유가는 초저가이고 승객은 느는데 왜 매년 적자인지, 이익이 어디에서 새어나가는지 본질을 봐달라는 호소였다. 나중에는 요구안을 2%까지 낮췄는데도 회사는 끝까지 1.9% 인상을 고수했다”라고 말했다. ‘1.9%’라는 수치는 조종사를 제외한 승무원, 정비사 등 일반 직원이 속한 한국노총 산하의 대한항공 노동조합(직원 1만9000명 중 약 1만1000명 소속)과 회사가 정한 2015년 임금인상률이었다. 회사는 지난 10여 년 동안 회사에 협조적인 이 노조와 먼저 합의해 임금인상률을 정한 후 이를 그대로 조종사에게 관철해왔다. 그 결과 대한항공 조종사들의 10년간(2005~2014년) 임금인상률은 소비자 물가상승률 평균(2.67%)에도 못 미치는 1.84% 수준이었다(〈항공운송사업 노동자 파업권 제한 실태 및 문제점과 공익침해〉 강경모 노무사, 2017). 이러는 동안 조종사들은 현재 민주노총 산하의 조종사노조(조합원 약 1100명)와 2012년 출범한 독립 노조인 대한항공 조종사 새 노동조합(군 출신 중심으로 조합원 약 600명)으로 나뉘기도 했다.

이규남 집행부는 2년 내내 쟁의행위 상태였고 파업까지 했지만, 이렇듯 지렛대가 무너진 상태에서 벌인 싸움은 상처가 컸다. 단체협약상 비행시간을 초과한 근무를 거부한 기장이 해고되었다. 다른 조합원들도 정직·비행 정지·견책 따위 징계를 받았다. 이 기장 자신도 위원장 취임 직후 고의로 비행 전 브리핑을 지연시켰다는 이유로 부기장으로 강등되었다가 법정 싸움을 통해 기장 자리를 되찾았다. “민항기 조종사는 기장 다는 게 꿈이다. 나는 어떤 처벌을 받아도 이겨낼 수 있는데, 쟁의행위에 참여한 조합원들을 내가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게… 딜레마에 빠지더라.” 이 기장의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결국 조종사노조는 7일간 파업 이후 몇 차례 더 파업을 계획했다가 철회했다. 2015년과 2016년 임금협상은 새로 선출된 조종사노조 집행부가 2018년 2월에야 마무리했다. 협상 과정에서 후임 집행부는 배임과 제3자 뇌물, 부당노동행위로 회사와 경영진을 고소·고발한 것을 취하했다.

그러고 나서 터진 ‘물컵 갑질’ 사태는 2014년 ‘땅콩 회항’ 때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한 대한항공 직원이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을 열어 제보를 받으면서 회장 일가의 갑질과 위법 의혹이 직원들에 의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공권력이 총출동했다. “그동안 회장 일가와 싸우면서 조선시대 왕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기업을 사유화하는 걸 수사기관을 포함해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시정되지 않았다. 늦은 감은 없지 않지만 시대에 부응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라고 이 기장은 말했다.

조종사노조의 현 집행부는 ‘어용 노조’라 비난받는 대한항공 노조와 남북 정상회담 당일인 4월27일 점심시간에 집회를 같이 열었다가 역풍을 맞았다. 단톡방(단체 채팅방)의 직원들은 촛불집회를 계획하며 기존 노조 3곳을 모두 배제하기로 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우리는 아닌데…’ 변명하고 싶지만, 이곳 조합원들도 ‘우리만 싸워서 뭐하느냐’며 지쳐가던 게 사실이다. 대한항공 노조 안에서도 회장 일가를 견제하고 회사를 바꿔보려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후 부당하게 해고당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이겨내지 못했다.”

적금 깨고 집회 준비한 대한항공 직원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대한항공 노조 안에서 노조를 민주화해보려던 노력이 있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7명이 해고되었다. 당시 민주 노조를 만들려던 객실 승무원들은, 십시일반으로 교통비 등을 모아 징계받은 이들을 도왔다. 회사는 모금을 문제 삼아 직원들을 해고했다. 그 가운데 4명이 부당해고임을 인정받았지만 2명은 끝내 복직하지 못했다. 해고되지는 않았으나 각종 인사 불이익을 견디며 회사에 남은 직원들도 있다. 이번에 채팅방을 연 ‘관리자’가 직원들의 돈을 모으는 대신 자신의 적금을 깨 집회를 준비한 것은 이런 ‘전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나오는 가면을 쓰고 집회에 참석하기로 한 것도, 목소리 내는 직원들을 회사가 어떻게 ‘채증’하고 본보기로 불이익을 주는지 학습했기 때문이다.

위원장 시절 회사 쪽 노사협력실 팀장에게 ‘소영웅주의에 빠져 있다’는 훈계를 듣기도 했던 이 기장은 “내가 강골이라서거나 뛰어나서가 아니라 누군가는 해야 했기에 어찌어찌하다 보니 나서게 됐다. 후배들에게 ‘저렇게 해도 안 되는구나’라는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아서 회사를 떠나는 대신 법정 싸움에 전력을 다했다. 그동안 우리가 해온 것들이 가시적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고 이번에 열매를 맺기 바란다. 뒤에서 응원할 수는 있지만 열매에 거름을 묻히기는 싫다”라고 말했다. 액자 속에서 17년 전 이 기장이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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