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정석인하학원의 이사이다. 정석인하학원 산하에는 인하대·한국항공대·인하공업전문대와 인하대 부속 중·고등학교, 정석항공과학고등학교 등이 있다. 인하대 부정 편입학의 당사자가 인하대 운영을 맡은 책임자가 된 것이다. 그 학생은 바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다.
인하대는 ‘제2의 대한항공’이다. 한진 일가의 전횡은 인하대에서도 그대로 재연되었다. 특히 교육의 공공성보다 개인 소유물로서의 재산권을 더 중시하는 한국 사립학교 체제 안에서 조 회장 일가의 ‘갑질’은 더욱 증폭됐다. 부정 편입학, 한진해운 채권 매입, 비민주적 총장 선출, 3남매(조현아·조원태·조현민) 일감 몰아주기 등 해소되지 않고 묻힌 의혹들이 허다하다.
당시 인하대 교수협의회 회장이었던 김영규 전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는 조원태 사장을 ‘부정 편입학생’으로 기억했다. “미국 전문대를 다니다 왔다는데 그 실적이 인하대 전입 조건이 되는가 알아봤다. 학칙상 조건이 아무리 해도 안 됐다. 무조건 입학시키라고 명령받은 교직원들이 엉터리 심사를 한 거다. 당시 이 사안에 관해 학생, 직원들과 함께 기자회견도 하고 그랬다.” 조씨의 부정 편입학 등 학교 측의 전횡에 문제를 제기하며 총장ㆍ이사장 퇴진 투쟁을 벌이던 김 전 교수는 2001년 학교에서 파면되었다가 2003년 대법원에서 ‘부당 해직’ 판결을 받고 학교로 돌아왔다.
김 교수가 학교와 싸우는 동안 조원태 사장은 인하대를 졸업하고 누나와 여동생도 다녔던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은 뒤, 한진 계열사에서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초고속 승진’을 통해 2008년 한진 등기 이사, 2014년 한진칼 대표 이사, 2016년 대한항공 총괄부사장, 2017년 대한항공 사장 직함을 달았다. 누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함께 정석인하학원 이사에도 이름을 올렸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2014년 ‘땅콩 회항’ 사건 이후 이사직을 사퇴했지만, 조양호 회장이 이끄는 정석인하학원은 아들 조원태 사장을 비롯해 이사진 대다수가 여전히 한진 일가와 계열사 측근들로 채워져 있다.
2000년 교통경찰을 차로 치고 달아난 사건, 2005년 70대 할머니 폭행 사건 등 여러 차례 구설에 오른 조원태 사장은 2012년 인하대 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하기도 했다. 2012년 12월14일 인천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인하대가 한진 일가에 ‘일감 몰아주기’ 하는 것을 비판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조 사장은 이들에게 다가가 “내가 조원태다, 개××야, 어쩔래?”라고 말했다. “조금 전에 욕하신 것 맞죠?”라고 묻는 지역 일간지 기자에게는 “너는 뭐야, 이 ××야”라고 대답했다. 자신이 재단 이사로 재직하는 인하대 교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공중으로 날아간 대학발전기금 130억원
이혁재 인하대 총동창회동문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자질 없는 재벌의 대기업 세습도 문제지만 특히 교육 부문에서는 더 막아야 한다. 조원태 사장이 인하대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퇴진 운동을 벌일 거다. 특히 부정 편입한 당사자가 그 학교의 이사가 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인하대 홍보팀 관계자는 “조원태 사장의 부정 편입학은 어디까지나 의혹일 뿐이다. 당시 교육부에서 일부 사안을 지적한 사실은 있었던 것 같지만 진짜 불법적인 게 있었다면 입학 취소 등 조치가 따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교육부 이재력 사립대학정책과장은 “현행 사립학교법으로는 당시 부정 편입학으로 처벌된 사실이 있다고 해도 임원 해직 사유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라고 말했다. 인하대에 제기되는 여러 의혹에 대해 “지금 당장 예정된 건 없지만 앞으로 족벌 운영 관련해 교육부에서 확인할 사항이 있다면 필요 시 지도 감독하고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말했다.
2012년 7월과 2015년 6월 인하대학교는 한 금융 상품에 대학발전기금을 투자했다. 각각 50억원과 80억원 총 130억원을 들인 그 투자 상품은 바로 조양호 이사장이 회장으로 있던 한진해운의 채권이다. 경영난을 겪던 한진해운은 지난해 2월 법원에서 최종 파산 선고를 받았다. 학생들의 등록금과 동문들의 기부로 모은 대학발전기금 130억원도 공중으로 날아갔다.
인하대는 이런 비상식적인 투자가 최 전 총장의 독단적 결정이었다고 주장한다. 인하대 홍보팀 관계자는 “만약 재단의 지시가 있었다면 재단 산하의 다른 학교(한국항공대학, 인하공업전문대 등)도 한진해운 채권을 사지 않았을까? 단순히 우리 학교가 판단을 잘못해서 투자에 실패한 거다”라고 말했다. 정석인하학원 이사진은 지난해 12월 투자 실패 책임을 물어 최 전 총장을 직위 해제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혹이 남아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인천시 교육감 후보로 출마한 최 전 총장은 인천 지역 인터넷 언론 〈인천in〉과 한 인터뷰에서 130억원 손실의 책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립학교 재단에서는 모든 예산 집행과 결산에 재단의 승인이 따른다.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투자한 기금이 손실되었는데,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기에 내가 책임을 진 것이다. 그러나 그 세부 내용은 현재 일일이 말씀드리는 것이 적절하지 않고 세월이 가면 아시게 되리라 생각한다.” 지역 시민단체 인천평화복지연대는 “재벌이 사학 재단을 어떻게 사금고로 전락시키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라고 말했다.
‘깨알같이’ 수익 챙기는 조 회장 일가
인하대는 또한 조 회장 일가의 ‘수익 창출’ 창구이기도 하다.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인하대병원) 1층 외래 접수·수납 창구 바로 옆에 커피 전문점 ‘이디야’가 입점해 있다. 가게 영수증에 찍히는 점주 이름은 ‘조에밀리리’,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미국 이름이다(이디야 커피는 5월2일 조 전 전무가 운영 중인 인하대병원점·소공점 두 곳에 대해 가맹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6월30일까지 매장을 철수하기로 했다). 인하대 인트라넷 사업권은 조원태 사장이 대표이사이던 한진정보통신이 따냈고, 인하대병원 주차장 관리와 지하 매장 임대, 리모델링 등은 조양호 회장과 조현민 전 전무가 대표이사인 정석기업이 맡았다. 대학과 병원 등 비영리 법인에서 발생하는 수익 상당 부분을 조 회장 일가가 ‘깨알같이’ 챙기는 것이다.
인하대에서 중도에 물러난 총장은 최순자 전 총장만이 아니다. 2008년 홍승용 총장, 2011년 이본수 총장, 2014년 박춘배 총장도 4년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특히 홍 전 총장이 사표를 내게 된 경위에 대해 인하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가 전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당시 이사 중 한 명이었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자신이 추천하는 교수를 임용하지 않았다며 홍 총장에게 서류를 던지고 막말을 했다. 조양호 회장의 친구이기도 한 홍 총장이 충격을 받아 자리에서 물러났다.” 인하대 교수회는 지난 4월26일 성명서에서 “역대 총장을 비롯한 보직 교수들로부터 법인 인사들을 만나고 나면 말할 수 없는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는 진술을 수없이 들을 수 있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최순자 전 총장이 직위 해제된 이후 인하대 총장 자리는 아직 공석이다. 새 총장을 선출해야 하는데 교수회와 이사회의 이견이 좁아지지 않고 있다. 인하대 정관에 따르면 총장 후보 추천위원회는 법인 이사 5명, 교수 4명, 외부 인사 2명 등 총 11인으로 구성된다. 지금까지 외부 인사 2명은 늘 법인 측에서 위촉하다시피 해 결과적으로 이사회 측 인사가 과반을 차지했다. 인하대 교수회는 외부 인사 가운데 최소한 1명은 이사회 위원과 교수 위원의 합의로 위촉하자고 이사회 측에 제안했다. 답은 아직 오지 않았다. 김명인 인하대 교수회 의장은 “총장 후보 추천위원회 위원 한 명을 공동으로 선임한다고 해서 큰 변화가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만약 이를 받아들인다면 이제까지의 비민주적 관행을 조금이나마 고쳐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김 의장은 “특히 대학이라는 곳은 더 높은 기준의 민주적 규범과 문화가 요구되는 곳인데, 이제까지 인하대에는 총수 중심의 독단적이고 권위적인 한진그룹의 기업 문화가 그대로 전이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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