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까지 갈 길 남은 ‘완전한 비핵화’
  •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 호수 555
  • 승인 2018.05.0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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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한반도 평화 무드에 유화 기조로 돌아섰다. 그러면서도 최대 관심사인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여전히 의구심과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기색이다.

“한국전쟁은 끝날 것! 미국과 위대한 미국 국민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27일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 ‘올해 안 종전 선언’ 등을 합의한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공식적으로 보인 첫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좋은 일이 벌어지곤 있지만 오직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이다”라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이날 백악관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회담하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남북 정상회담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다가올 북·미 정상회담에서) 해결책이 나올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정중히 회담장을 떠날 것이다”라며 거듭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주요 미국 언론은 회담 성과를 대서특필하면서도 판문점 선언에 포함된 ‘완전한 비핵화’란 문구에 주목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남한에도 더는 핵무기가 허용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완전한 비핵화’란 문구는 워싱턴에 경종을 울릴 것이다”라고 전했다. CNN은 “이번 선언으로 비핵화에 관한 북·미 견해차가 더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판문점 선언은 한반도 비핵화를 가리키는 만큼 미국 전략자산의 이동이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북측 처지에서 ‘완전한 비핵화’란 북핵 제거 외에도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공 철회도 가정하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1년 11월 남한에서 전술핵을 모두 철수했지만 핵우산은 계속 제공해왔다.

ⓒ백악관 제공3월 말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왼쪽)가 김정은 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물론 이런 우려를 시기상조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 국무부 정보조사국(INR) 동북아 실장을 지낸 존 메릴 박사는 <시사IN>과 인터뷰하면서 “향후 북·미 정상회담에서 다시 불거질 수도 있지만 현 단계에서 ‘완전한 비핵화’의 뜻을 확대 혹은 억지 해석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와 관련해 좋은 의도를 드러낸 만큼 구체적인 실현 방도는 나중에 협상을 통해 마련하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도 6월 초로 유력시되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하는 한편 비핵화의 범위와 시한 등에 관해 최대한 진전된 문구를 담으려고 총력을 기울일 것 같다. 미국은 대북 핵협상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온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원칙’을 합의문에 관철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합의문에는 트럼프 행정부 임기 내 비핵화 실현을 위한 구체적 방법론, 즉 로드맵까지 담으려 할 것이다.

이처럼 미국이 굳이 정상회담 차원에서 비핵화 로드맵에 집착하는 데는 이전과 같은 북한의 합의 번복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의도가 짙다. 즉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상대로 구체적 합의문을 도출해, 북한의 이행을 100% 담보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워싱턴 조야에 널리 깔린 북한 불신론이 작용한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이후 2012년 북·미 윤달 합의(Leap Day Deal)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북·미 양국 혹은 한국과 중국·일본·러시아까지 포함하는 6자회담 참가국과 여러 차례 합의하고도 북한이 번번이 합의를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빅뱅’ 방식 vs ‘단계적·동시 행동’ 방식

이와 관련, 스탠퍼드 대학 부설 아시아태평양문제연구소 부소장을 지낸 댄 스나이더는 일본 <동양경제신보>에 최근 기고한 글에서 “미국은 이후 북한과의 비핵화 협정이 다소 불만족스럽더라도 북한 문제 관리 차원에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미국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믿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유사시 북한에 결정타를 가할 수 있는 군사력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증강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북한이 어느 순간 비핵화 협정에 트집을 잡으며 핵실험 및 장거리 탄도미사일 실험을 재개하면, 즉각 압도적 군사력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스나이더 전 부소장은 <시사IN>과 인터뷰하면서 “내가 접촉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꽤 높은 직급(at a very high level)이다. 또한 그 사람만이 비슷한 견해를 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정보 당국 고위 인사들의 말을 인용해, “북·미 정상회담이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UPI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이 3월28일 시진핑 국가주석(맨 오른쪽)과 정상회담을 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북한과 미국 양측의 입장을 보면 벌써부터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즉 비핵화에 관한 양측의 개념 정리에서부터 범위와 방법, 완결 시점에 이르기까지 난제가 수두룩하다. 특히 핵심 관심사인 비핵화 방법 및 시기와 관련해 미국은 가급적 트럼프 행정부 임기 내에 모든 일정을 끝내고 싶어 한다.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이 과거처럼 북한과 단계별 보상이 아니라 일찌감치 비핵화 합의를 끌어낸 뒤 상호 양보안을 제시하는 ‘빅뱅’식 접근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북한은 정반대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지난 3월28일 중국을 방문해서도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단계적·동시 행동’ 방식을 설명했다. 국무장관 지명자 자격으로 3월31일~4월1일 북한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당시 CIA 국장)와 회담하면서도 북한은 이 같은 기조를 강조했다고 알려졌다.

2013년에도 북한의 한 관리가 미국 측에 ‘북한이 1차로 핵 개발 활동을 동결한 뒤 2차로 핵 프로그램을 불능화하고, 마지막으로 핵을 폐기한다’는 3단계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또한 매 단계에서 미국이 상응하는 경제적·외교적 양보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행정부 임기가 2020년까지임을 감안할 때 ‘비핵화 속전속결’을 추구하는 미국의 ‘빅뱅’ 방식과 북한의 ‘단계적·동시 행동’ 간에는 차이가 크다.

게다가 미국은 ‘빅뱅’ 방식을 적용하면서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CVID 원칙을 고수할 태세다. 워싱턴의 저명한 외교 통상 정보지 <넬슨 리포트>의 크리스 넬슨 편집인은 “북한이 보유한 핵융합 물질 제거와 핵 생산시설의 해체까지 포함하는 비핵화를 이루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이라는 게 (북한을 수차례 방문한) 핵물리학자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의 견해다”라고 밝혔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를 총지휘하는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4월27일(현지 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외무장관회의에서 기자들과 만나 “판문점 선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밝힌 완전한 비핵화 목표에 고무됐다. 우리는 김 위원장이 합의의 일부로 어떤 새로운 약속을 했는지 이해하고자 이 선언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불과 지난해까지 북한과 전쟁이라도 할 것처럼 으르렁대던 미국은 김 위원장의 핵 동결 선언과 이번 남북 정상회담으로 급속히 무르익고 있는 한반도 평화 무드에 유화 기조로 돌아섰다. 그러면서도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최대 관심사인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외교·안보 당국자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의구심과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기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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