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판문점 선언)’은 3개조 13개항으로 이뤄져 있다. 내가 주목하는 조항은 3조 3항이다. “남과 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나가기로 하였다”라는 평화체제 구축 약속이다.

1953년 7월 체결된 한국전쟁의 정전(停戰)협정을, 종전(終戰)협정으로 바꾸는 로드맵에 남북이 합의했다. 판문점 선언 내용에 나온 대로 국제법상 완결은 남·북·미·중 간의 종전·평화협정 체결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핵심 당사자인 남북의 ‘올해 종전 선언’ 합의는 무엇보다 우선적이고 특별하다. 모든 것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번 합의는 북·미 정상 간 핵 폐기, 북·미 수교 협상과 바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남북 간 평화 합의와 크게 다르다.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 역시 획기적인 남북 평화 조항을 담고 있지만 미국에 의한 북한의 체제 보장은 담보되지 않았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북핵 폐기와 북한 체제 보장을 상호 CVID, 즉 ‘완전하고(complete), 검증 가능하며(verifiable), 불가역적인(irreversible) 방식으로 맞교환(deal)하는’ 여정의 출발이다. 원래 CVID는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북핵의 무조건적 선제 폐기(disarmament 또는 destruction)를 주문할 때 쓰던 말이었지만, 이를 네오콘 식으로만 써야 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결코 단기간에 끝나지도, 순탄하지만도 않을 이 북·미 협상을 목표 지점 끝까지 지탱해줄 핵심 축, 척추가 남북 간의 단단한 신뢰다. 그 기초가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어느 정도 다져졌다.

ⓒ한국 공동사진기자단4월27일 남북 정상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하고 있다.

남북 간 신뢰의 요점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두 국가가 서로의 주권·영토·정통성을 확실하게 인정하는 데 있다. 그것이 남북 양국 체제의 핵심이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상호 인정’이라 해도 좋겠다. 이러한 수준의 상호 인정은 정상회담 한 번으로 결코 담보되지 않는다. 핫라인 통화, 올해 가을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 등 남북 정상은 앞으로 더 자주 접촉할 것이다. 개성에 설치될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에 이어 서울과 평양에 남북대표부가 설치되고 북·미 수교가 이뤄지는 정도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상호 인정’의 최소 요건이 될 것이다. 내용적으로는 남북 양국의 법과 제도에서 상대를 부정하고 적대하는 내용을 삭제하고 바꿔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특별한 것은 현실을 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과거 어느 때보다 크고 강하기 때문이다.

그 힘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대한민국의 촛불 민의다. 촛불 민의는 이 나라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소멸시켰다. 기울어진 운동장 탓에 과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 역시 뚜렷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촛불 민의는 북한에 대한 어떠한 환상도 없다. 어떤 식의 통일지상주의와도 무관하다. 남과 북이 서로 위협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상호 번영하면 된다고 본다. 촛불 행동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이 완료된 지난해 3월 말~4월 초 실시된 통일연구원의 〈2017년 남북 통합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에서 뚜렷이 나타난 흐름이다(이 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결과는 ‘평화적 분단’에 대한 선호가 증가했다는 점이다. ‘남북한이 전쟁 없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면 통일은 필요 없다’는 주장에 응답자의 46.0%가 동의한 반면 동의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31.7%였다. 2016년 조사 대비 이른바 평화적 분단 유지에 찬성한 비율은 2.9%포인트 상승했으며, 반대한 비율은 5.6%포인트 감소했다).

이러한 생각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표명한 바 있다.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를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3월21일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 2차 회의에서 한 발언이었다.

〈조선일보〉의 철 지난 트집

〈조선일보〉가 여기에 트집을 잡고 나섰다.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대통령의 의무에 반하는 것 아니냐.… 어떤 경우에도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 통일이 되어야만 진정한 평화가 온다. ‘평화 통일’이 아니라 ‘통일 평화’다”라고. 평소 북한 체제 인정에 강한 거부감을 표방해온 이 신문의 ‘통일 지향’과 ‘통일 평화’가 무슨 뜻이겠는가. 〈조선일보〉의 본심이 ‘통일지상주의’였다는 것, 그리고 ‘통일’이 얼마나 위험한 언어가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철저한 적대주의, 대결주의이고, 바로 기울어진 운동장 심리의 핵심 증상이다. 촛불로 소멸되었음에도 여전히 집착한다.

양국 체제를 간단히 말하면 지금의 한·중 관계 정도의 현실이 남북 간에도 실현되는 상황을 말한다. 한·중이 서로 인정해서 상호 번영하는 길을 선택한 것처럼, 남북 역시 그렇게 살자는 것이다. 북한 역시 그 길을 갈구하고 있다. 소련 해체 이후 북한은 크게 변했다. 일례로 2000년 6월14일 김정일 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과 대면한 자리에서 했던 발언이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완전 통일은 10년 내지 20년은 걸릴 거라고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완전 통일까지는 앞으로 40년, 50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합니다(임동원, 〈피스 메이커〉).”

동구권 붕괴 이후 북한의 목표는 통일이 아니라 생존 보장이었다. 절박했다. 그러나 미국도, 중국도, 촛불 이전의 한국도 이를 보장해주지 않았다. 북한은 이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과 핵 개발로 이를 보장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촛불이 만든 새로운 촛불 한국, 그리고 새로 들어선 촛불 정부가 없었다면 북한의 ICBM·핵 개발과 트럼프의 만남은 진즉 큰 파국을 맞았을 것이다. 한반도 남북의 주요 지점들이 잿더미가 되고 수백만명이 사망하는 끔찍한 사태를 말한다. 군 복무 중 전쟁 시뮬레이션에 참가해본 이들은 모두 잘 아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촛불과 촛불 정부가 그 대파국을 지금껏 막아왔다. 그래서 양국 체제 성립의 가장 주요한 힘이 촛불 민의라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막다른 위기의 순간, 대한민국에 촛불 혁명이 일어났다는 건 진정 기적 같은 일이다. 필자가 한반도 양국 체제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2015년부터다. 가장 어두웠던 순간이었다. 도대체 왜 1987년 민주화의 큰 희망이 이렇듯 어두운 독재의 시간으로 뒤바뀌고 말았는지 여러 번 고통스럽게 복기해보았다. 생각해보면 1960년의 4·19 혁명도 결국 독재로 환원되고 말았다. 한국 사회에 ‘독재가 민주를 회수하는 마(魔)의 순환 고리’가 작동하고 있었다. 4·19 이후 30년, 1987년 6월 이후 30년이 그러했다. 그 ‘마의 순환 고리’를 끊는 유일한 방법은 ‘양국 체제’의 정착에 있다. 양국 체제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담보하고 대한민국에서 ‘독재가 민주를 회수하는 마의 순환 고리’를 영원히 끊는다.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확고한 정착은 북한의 인권 상황 개선에도 분명 선순환 효과를 낼 것이다. 이미 양국 체제의 상황은 시작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 양국 체제로 가는 큰 길을 활짝 열어주었다.

기자명 김상준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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