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2일 서울 동부구치소에 입감된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페이스북을 통해 옥중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명박이 목표다’는 말이 문재인 정권 초부터 들렸습니다. 저를 겨냥한 수사가 10개월 이상 계속되었습니다. 댓글 관련 수사로 조사받은 군인과 국정원 직원 200여 명을 제외하고도 이명박 정부 청와대 수석, 비서관, 행정관 등 무려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검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가히 ‘무술옥사(戊戌獄事)’라 할 만합니다.” 이 전 대통령이 구속되기 이전에 작성해서 측근에게 맡겨둔 이 메시지는 4월9일 오후 2시, 검찰이 그를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한 지 1시간30여 분 만에 페이스북에 공개됐다.

ⓒ이지영 그림
MB의 옥중 메시지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자신의 처지를 조선 시대의 피비린내 나는 당쟁과 숙청에 비유한 ‘무술옥사’라는 말이다. 여론의 방향을 일거에 돌려보고 싶은 의도가 강하게 느껴지는 저 용어를 통해 그는 자신을 정치 보복의 희생자로 윤색한다. 그런데 대중 여론은 물론이고 어떤 정파도 그의 희생자 프레임에 호응하는 기색이 없다. 보수 언론이나 자유한국당은 반색하면서 저 틀을 확대·재생산할 만한데도, 기껏 양념 화제(가십)로 취급하거나 아예 묵묵부답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MB를 비호해주지 않는 보수 세력의 반응을 이상기류로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수 진영의 MB에 대한 냉대는 ‘MB 사용설명서’에 따른 만큼 지극히 정상적이다.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언론인 토머스 프랭크는 이명박 대통령 재임 말기인 2012년 한국에 처음 소개되어 진보 진영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갈라파고스, 2012)는 번역된 지 1년 만에 6쇄를 찍었고, 거기에 힘입어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갈라파고스, 2013),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어마마마, 2013)이 잇따라 출간되었다. 그동안 지은이는 첫 번째 책을 중심으로 언급되어왔는데 여기서는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를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토머스 프랭크에 따르면, 우파 보수가 MB를 비호하지 않는 이유는 그를 감싸면 감쌀수록 우파 보수 전체가 썩은 ‘사과나무’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는 우파 보수가 회생하기 어렵다. 악취가 진동하는 MB의 경제 비리 앞에서 우파 보수가 견지해야 할 최선의 태도는 MB를 우파 보수라는 건강한 사과나무에 열린 한 알의 ‘썩은 사과(a bad apple)’로 간주하는 것이다. MB가 감옥에서 피를 토하듯 외치는 구조 요청 신호를 보수 언론과 자유한국당이 외면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이런 전략은 2008년, 각종 규제 완화로 미국 금융위기를 불러온 미국의 우파 보수 세력이 애용했던 것이기도 하다. 2008년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규율을 제대로 엄수하지 않은 리먼브러더스(썩은 사과) 때문에 생긴 것이지, 자본주의와 우파 이데올로기 (사과나무)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겪은 경제위기는 물론 공화당 정권과 그 주변인들에 의해 저질러진 부정 사건이 있을 때마다, 썩은 사과를 사과나무에서 분리하는 우파 보수 세력의 술수는 미국 대중을 설득하는 데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미국을 들쑤셔댔던 우파 보수의 부정과 실정이 특정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개별적인 썩은 사과의 도덕적 실수 탓이라면, 대체 그들은 얼마나 많은 썩은 사과를 키우고 있다는 것인가?

“진실은 이렇다. 부시 행정부 시절 펼쳐진 환상적인 실정은 우연도, 일부 썩은 사과들의 작품도 아니다. 그것은 ‘정부’에 대한 특정 철학, 즉 진보적인 정부는 비정상에 불과하며 시장은 인간 사회와 이상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상의 승리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우파 보수주의자들만 부정과 실정을 저지른다는 말이 아니다. 부정과 실정은 진보주의자도 똑같이 저지른다. 단, 진보주의자의 부정과 실정은 보수주의자의 줄기찬 구호에 의해 대중에게 잘 알려진 반면, 상대적으로 우파 보수주의자들이 연루된 부정과 실정의 사상적 토대는 아직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 결과 경제적 실정이나 대형 부정 사건을 겪을 때마다 자본주의와 우파 이데올로기는 미국 대중에게 더욱 뿌리 깊게 안착하는 역설이 생겨났다.

정치를 사업과 동일시하는 우파 보수주의자

좌파 진보주의자들은 정치와 정치가를 공적 대의에 헌신하는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국가가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반면 우파 보수주의자들은 정치와 정치가를 사업과 동일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국가나 정부가 존재한다는 것을 냉소한다. 이명박 정권이 표방한 ‘기업 프렌들리’라는 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되는 것처럼, 우파 보수주의 정권은 정부를 기업의 중개 사무소로 생각한다. 이런 정부는 공적 목표나 가치를 확대하는 것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본과 기업을 위한 정책을 펴면서 20%의 이익을 극대화한다. 정치와 정치가를 사업과 동일시하는 우파 보수주의자들의 철학이 그들을 경제적 실정과 부정으로 이끈다. 그 자신을 정치가가 아닌 사업가로 생각했을 MB에게 자원외교나 4대강 사업은 국사(國事)가 아니라 개인 사업이었을 것이다.

우파 보수주의자들의 단골 의제인 감세정책, 규제 완화, 민영화, 복지 축소 등은 그들의 탐욕과 시장친화적 정책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대부분의 분석은 여기서 멈추지만, 토머스 프랭크는 위에 나열한 의제들로 국가(정부)의 손발을 자르고 마지막에는 국가를 말소시키는 것이 우파 보수주의자들의 궁극 목표라고 말한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미국 우파는 대중 앞에서는 자신들이 강한 국가를 대표한다고 선전하면서도 사실은 국가의 밑동에 도끼질을 한다. 그 반대로 좌파는 국가라는 구속력으로부터 개개인이 자유롭기를 바라면서도 실제 정책에서는 국가의 몫을 중시한다. 지은이는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작은 권리마저 빼앗아가는 공화당에 표를 던지는 이유를 몇 가지나 제시했지만, 그 책에 나오는 이유들보다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에 나오는 암시가 더 설득력 있다. 한국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특히 미국에서는 시장에 부정적인 사람에게 곧바로 ‘반체제적·반미국적’ 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대중이 좌파 진보주의자를 경원하는 이유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개인적으로 가장 들어보고 싶은 논평이 토머스 프랭크의 것이다. 그런데 아직 신간 소식이 없다. 낙담하거나, 비관주의자가 되지 않았기를 기원한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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