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윤씨(32)는 유능한 프리랜서 기자였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AP 통신에 한국 문화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썼다.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 고성 비무장지대(DMZ)까지 혼자 도보로 여행하며 남긴 한국 여행기, 사우나 여성 세신사들을 심층 인터뷰한 뒤 쓴, 삶과 몸에 대한 기사가 주목을 받았다. 또 한국·중국·타이·라오스를 오가며 만든 탈북자 관련 다큐멘터리는 미국 HBO에 방영되기도 했다. 최씨는 외신기자 통역을 도맡을 정도로 영어도 잘한다. 그녀는 삼성에서 일하기도 했다.
앞날이 쨍쨍하던 최씨는 기자도, 삼성맨도 걷어차고 성인용품 전문점, 엄밀히 말해 섹스 토이 가게를 열었다. “만 서른이 되면서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죠. 사람들이 섹스를 좀 더 바르게 즐기고 살면 한국 사회가 이렇게 후지지는 않을 거예요. 성적 즐거움은 물론 성에 대한 질문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어요.”
꼭 자기 이름을 걸고 성인용품 가게를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국립대학 교수인 아버지도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부모님도 ‘왜 하필 우리 딸이’라면서 안타까워하셨어요. 서른 정도 되면서 더 이상 내 인생의 언저리에 머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기자일 때보다 몇 배 행복했어요.”
성인용품 사업은 잘되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지점을 낼 정도로 성장세도 가팔랐다. 성공한 사업가로 거듭난 최정윤씨는 꿈을 찾겠다며 사업에서 손을 뗐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겠다며.
“한국에선 ‘웃긴 아이’였는데 미국 유학 시절 얌전한 동양인이 되어버려 정체성에 괴리가 컸어요. 우울증이 깊어져 사회 공포증·대인 공포증이 생겼죠. 우울할 때마다 인생의 모순을 날카롭게 짚어내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며 위로를 받았어요. 언젠가는 꼭 스탠드업 코미디를 직접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최씨는 무명 코미디언들과 함께 작은 무대에 서고, 스탠드업 코미디의 본고장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떠돌며 경험을 쌓기도 했다. 최씨는 스탠드업 코미디에 대한 책도 쓰고, 자신의 이야기를 1인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리겠다는 계획도 있다. “어느 때보다 행복해요. 물론 기자 시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요. 내 자신에게 솔직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최씨에게 아버지의 반응을 물었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큰 소리로 웃으셨어요. 어쨌든 의미 있는 일을 한다고 응원해주시더라고요. 성인용품 가게를 할 때보다는 덜 창피해서 그러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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