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전교조를 이긴 학부모의 승리기를 보도(위)한 석달 후, ‘정정·반론보도문’을 실어야 했다.

교편을 쥔 여교사가 고개를 숙였다. 학부모 셋은 학교 건물에 붙은 ‘점수 공개’ 종이를 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조선일보 7월2일자 사회면 한 기사에 들어간 삽화이다. 기사에 따르면 고개 숙인 여교사는 ‘전교조 여교사’이다. 기사는 도교육청과 정책 협의까지 맺어 성적 공개를 방해하는 전교조 교사를 물리치고 자녀의 중간시험 점수를 통지받은, ‘학부모 교육권’을 쟁취한 엄마들의 승리기를 담았다. 그래서 기사 제목은 “울 엄마, ‘전교조’보다 세다”이다.

석 달 후 이 기사에 대한 ‘정정 및 반론보도문’이 조선일보에 실렸다. 기사에 언급된 전교조 교사가 성적 공개를 반대한 것은 전교조와 도교육청이 맺은 정책 협의 때문이 아니라 초중등교육과정총론·교육부고시·교육인적자원부령과 같은 ‘법’ 때문이었다는 교사의 반론이 실린 것이다. 이 신문은 또 전교조 교사와 학부모의 다툼이 있기 전 이미 학교가 중간시험 점수를 통지했다는 점에서 애초의 기사가 오보였음을 시인했다. “학부모들이 전교조의 지침에 따라 점수 공개를 반대하는 교사와 싸워 성적을 통지받았다”라는 기사의 핵심이 흔들린 셈이다.

보수 언론의 전교조 공격은 때로 교사 개인의 명예훼손으로 이어진다. 교육 현장에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전교조 교사가 관련돼 있는지를 살피고 꼬투리가 잡히면 크게 보도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왜곡·과장된다. 언론중재위원회 제소를 통해 조선일보의 ‘정정 및 반론보도문’을 받아낸 오 아무개 교사는 “멀쩡히 살아 있는 법과 내 교육철학에 따라 성적 통지를 반대한 것인데, 기사와 삽화에서는 마치 내가 불법을 저지른 양 표현했다. 내가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게 크게 작용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일제고사 백지답안 놓고 ‘전교조 사주’ 논란

최근에는 학생들이 시험에 반발해 백지 답안을 내자 해당 학교 전교조 교사들이 ‘사주 의혹’을 받았다. 10월14일 치러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에서 서울 강남의 한 사립 여중 3학년 학생 중 최소 50명 이상 백지답안을 제출했다. 동아일보 등은 ‘전교조 교사가 담임을 맡은 두 학급에서 백지답안이 많이 나왔고, 전교조 교사들이 백지답안을 부추기는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요지로 보도했다.

‘백지답안 선동 교사’ 중 한 명으로 지목된 김 아무개 교사(39)는 “백지답안은 전교조 담임 학급뿐만 아니라 다른 학급에서도 많이 나왔는데 학교와 교육청, 보수 언론이 전교조를 표적 삼아 사건을 왜곡시킨다”라고 주장했다. ‘부추기는 발언’에 대해서도 “일제고사 시험 전주 금요일에 막 중간고사를 끝낸 학생들이 다음 주 화요일에 또 시험을 치는 게 싫다며 ‘백지 내도 돼요?’라고 아우성치더라. 시험을 치고 싶은 사람의 선택도 존중해주자며, 정 치기 싫으면 부모님의 동의를 구하라고까지 말했다. 그것마저 선동이라 한다면 할 말이 없다”라고 김 교사는 주장했다. 학교 측과 강남교육청은 “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사실관계나 교사 징계 계획을 알려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서울 한 사립 고등학교 노 아무개 교사(47)는 뉴라이트 단체와 보수 언론에 ‘변태 전교조 교사’로 낙인찍힌 후 현재 명예회복 절차를 밟는 중이다. 노 교사는 지난해 3월 만취 상태로 청소년이 보는 앞에서 자위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약식기소돼 1심에서 벌금 50만원 형을 받았다. 그가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점이 일을 키웠다. 당시 보수 신문과 인터넷 언론은 전교조 분회장을 지낸 노 교사의 전력을 들어 전교조를 공격하는 소재로 활용했다.

노 교사는 “만취 상태에서 노상방뇨를 하던 중 지퍼가 고장나 일어난 해프닝이었다”라고 주장해왔다. 송원재 전교조 서울지부장은 “진상조사를 벌여 고장난 지퍼도 직접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목격자들의 진술이 어긋나는 점 등을 감안해 2심 재판부는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최근에는 학교 측의 해임 처분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에서도 복직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이 판결 이후 보수 언론은 또 “음란 교사가 학교로 돌아간다”라는 기사를 썼다. 언론과 인터넷 속에서 노 교사는 이미 ‘확정된 변태’였다.

보수 언론의 ‘전교조 선생님 물어뜯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박춘배 전교조 교권상담국장은 “인터넷 검색창에 ‘전교조’라고 한번 쳐봐라. 전교조 조합원에 대한 명예훼손은 그 규모가 엄청나다. 언젠가 모두 문제 제기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지금 그것에 일일이 대응하기는 무척 버겁다”라고 말했다. 임병구 전교조 대변인은 전교조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 부도덕·파렴치 집단으로 낙인찍는 것이야말로 보수 언론이 노리는 바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라면 교사 개인의 인권은 안중에 없다는 것이다. 임씨는 “전교조 8만 조합원 중 한 명에게 문제가 터지면 ‘전교조 누구누구’라고 하지만 교총 12만 조합원 중에 성희롱 교장이 나오면 ‘교총 누구누구’라고 하지 않는다. 자꾸 이런 식으로 공격하니 잔매에 골병이 드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