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임명 18일 만에 낙마했다. 금감원 역대 최단기간 재임이다. 4월16일 저녁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청와대 질의에 ‘위법’ 의견을 내놓자, 30분 만에 스스로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

취임식 날부터 논란이 시작됐다. 지난 4월2일 국회 정무위 소속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김기식 원장은 의원 시절이던 2014년 3월, 한국거래소의 비용 부담으로 우즈베키스탄에 다녀왔다”라고 성명을 냈다. 4월10일에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김 원장이 2016년 5월, 국회의원 임기가 사흘 남은 시점에 반납해야 하는 정치 후원금으로 땡처리 외유를 다녀왔다”라고 주장했다. 이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각각 뇌물죄·직권남용죄·공직자윤리법위반죄 혐의 등으로 그를 검찰에 고발했다.

논란이 열흘 가까이 이어지는 동안 청와대는 김기식 원장 유임 의사를 유지했다. 4월9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의혹이 제기된 (김 원장의) 해외출장 건은 모두 공적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며 적법하다. 해임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김 전 원장 본인도 의원 시절 해외출장 세부 일정을 공개하는 등 방어에 나섰다.

ⓒ연합뉴스4월16일 김기식 당시 금융감독원장이 ‘저축은행 최고경영자 간담회’를 마치고 간담회장을 나서자 기자들이 둘러싸며 취재 경쟁을 벌이고 있다.
상황은 후원금 문제가 불거진 뒤 바뀌었다. 4월11일 〈조선일보〉는 김 전 원장이 의원 임기를 마치기 직전 ‘더좋은미래’에 정치자금 5000만원을 후원했다고 보도했다. 더좋은미래는 2014년 출범한 더불어민주당 내 의원 모임이다. 김기식 전 원장은 산하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 소장을 맡았다. 야당은 일제히 그의 행위가 ‘셀프 후원’이라고 비판했다. 4월11일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김 전 원장이 의원 시절 보좌진 6명 퇴직금 명목으로 2200만원을 계좌 이체한 사실을 지적하며 “더좋은미래 5000만원과 함께 총 7200만원이 한꺼번에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이튿날 청와대는 “선관위에 질의해 판단을 받겠다”라고 밝혔다. 다음 날 문재인 대통령은 “문제되는 행위 중 하나라도 위법이라는 객관적 판정이 있거나, 당시 국회의원들의 관행에 비추어 도덕성에서 평균 이하라고 판단되면 김 원장을 사임토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선관위에 문의한 항목은 ①국회의원이 임기 말 후원금으로 기부하거나 보좌 직원들에게 퇴직금을 주는 행위 ②피감기관의 비용 부담으로 해외출장을 가는 행위 ③보좌 직원 또는 인턴과 함께 해외출장을 가는 행위 ④해외출장 중 관광하는 행위였다.

나흘 뒤인 4월16일 선관위가 의견을 내놓았다. ③과 ④ 항목은 ‘사적 경비 또는 부정한 용도로 정치자금을 사용하지 않는 한’ 정치자금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봤다. 김 전 원장에게 적용한다면, 출장 중 인턴 직원과 성베드로 성당에 방문한 사실만으로는 정치자금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셈이다. ②항목은 ‘정치자금의 수수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위법한지 여부는 해외출장의 목적과 내용·필요성·피감기관의 설립 목적과 비용 부담 경위·비용 지원 금액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개별 사례들을 살펴야 판단 가능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연합뉴스4월17일 ‘더좋은미래’ 소속 의원들이 김기식 전 원장과 관련한 선관위 답변에 유감을 표명했다.
선관위가 위법이라고 못 박은 대목은 임기 말 정치자금 처리 문제였다. 우선 선관위는 ①항목을 ‘보좌 직원들에게 보답과 위로를 위하여 금전을 지급하는 것(퇴직금)’과 ‘시민단체 또는 비영리법인의 구성원으로서 특별회비 명목의 금전을 제공하는 것(후원금)’으로 나눴다. 김 전 원장이 의원 시절 보좌 직원들에게 지급한 퇴직금은 ‘통상적 범위 안에서 정치 활동을 위하여 소요되는 경비’이므로 정치자금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봤다. 반면 더좋은미래에 기부한 후원금은 ‘종전의 범위를 현저히 초과하는 금액’으로, 공직선거법 113조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김기식 원장은 사임 의사를 밝혔고 다음 날인 4월17일 청와대가 사표를 수리했다.

먼저 선관위는 김 전 원장의 더좋은미래 후원이 통상적 정치 활동이 아니라고 봤다. 선관위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당내 싱크탱크에 기부하는 일은 공직선거법 112조 ‘통상적인 정당 활동과 관련한 행위’ 15항목에 속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다음 판단은 ‘퇴직금 2200만원’과 ‘후원금 5000만원’이었다. 전자는 ‘통상적 범위’ 안으로, 후자는 ‘종전의 범위’ 밖으로 판단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더좋은미래 단체규약에는 월 회비 20만원, 일회성 연구기금 최대 1000만원이라고 적혀 있다. 이 기준으로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선관위의 논리는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김기식 전 원장과 마찬가지로 홍 장관 역시 19대 국회의원 임기 만료 직전 남은 정치자금 모두를 더좋은미래에 후원했다. 그러나 후원금 액수가 422만원이기에 선관위는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선관위, 지난해 회계 보고 때는 문제 안 삼더니

김기식 전 원장은 ‘선관위 답변에 따라 후원했다’고 주장했다. 의원 시절이던 2016년 3월, 그는 선관위에 ‘더좋은미래에 일시 후원 가능한 금액 제한’을 물었고 ‘해당 단체의 규약에 따라 종전 범위에서 회비로 납부하는 것은 무방하나, 범위를 벗어나 특별회비 등 명목으로 금전을 제공하는 것은 위법할 것’이라는 답변을 얻었다. 그래서 더좋은미래 규약에 따라 종전의 범위 내에서 후원했다는 게 김 전 원장 주장이다. 4월12일 내놓은 보도 자료에서 그는 “당시 선관위 답변의 기본 취지는 해당 단체나 법인의 규약 등에 따라 추가 출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라고 주장했다.

김기식 전 원장은 지난해 1월 이 내용이 들어간 회계보고서를 제출했으나 선관위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청와대 질의를 받은 뒤에야 선관위는 뒤늦게 ‘실수’를 했다고 밝혔다.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4월18일 “회계 보고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선관위가 실수라고 한다면 어떻게 믿고 일을 하겠나”라고 말했다.

입법 취지가 논란거리로 남는다. 공직선거법 113조는 국회의원이나 그 후보자 등이 해당 선거구 안에 있거나 선거구와 연고가 있는 사람·단체에 기부 행위를 할 수 없게 정한다. 후보자의 자금력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막는 조항이다. 더좋은미래 소속 국회의원들은 4월17일 성명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김기식 전 의원은 19대 국회에서 지역구가 없는 비례대표였고 20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입후보하지 않았다. 게다가 국회의원들의 의정 활동을 지원하는 더좋은미래 연구소는 지역구 선거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 헌법재판소 심판 청구와 법 개정 추진을 검토하겠다.”

향후 김기식 전 원장은 검찰 수사를 받을 예정이다. 선관위가 ‘정치자금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본 해외출장 건에 대해서다. 후원금 기부 건은 공직선거법 공소시효가 6개월이기에 처벌 가능성이 없다. 야당은 일제히 청와대 인사 라인을 조준했다.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외에 정의당 이정미 대표 역시 “반복된 인사 실패에 대한 청와대 인사 라인의 철저한 정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4월17일 “민정수석실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관위가 (김 전 원장의 회계 보고 이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기에 다시 까서 봐야 할 이유가 없었다”라고 밝혔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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