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8일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 공동대표인 허영주·허경주씨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오매불망 기다려온 사람들이 이날 입국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심해 수색 전문가인 데이비드 갈로 박사와 윌리엄 랭 박사이다.

지금은 타이태닉호의 유물 및 잔해 관리업체인 ‘RMS 타이태닉’ 선임고문을 맡고 있는 데이비드 갈로 박사는 한때 미국의 유명한 우즈홀 해양연구소 소속으로 CNN 방송에도 자주 등장한 전문가다. 윌리엄 랭 박사는 현재 우즈홀 해양연구소 첨단이미지·시각화연구실장이다. 이들은 에어프랑스 447편 추락 사고 조사와 블랙박스 회수, 타이태닉호 탐사, 2015년 침몰한 미국 화물선 엘파로호 블랙박스 수거 등 굵직한 심해 수색 사고를 맡아 진행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은 이들을 한국에 초청하기 위해 지난 몇 달간 고군분투했다.

ⓒ시사IN 신선영4월19일 ‘스텔라데이지호 심해 수색장비 투입 검토 공청회’가 국회도서관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허경주 가족대책위 공동대표, 데이비드 갈로 박사, 윌리엄 랭 박사.

정부는 지난 4개월 동안 실종자 가족들과 TF를 꾸려 ‘스텔라데이지호에 대한 심해 장비 투입’을 검토해왔다. 가족들은 침몰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남대서양 심해 3000여m에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 수거를 원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심해 수색과 수거 프로젝트이다 보니 부정적 의견이 더 많았다. 국내에는 심해 수색 경험이 있는 전문가도 거의 없다. 기술적으로 이것이 가능한지 혹은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정보 자체가 부족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제대로 된 검토를 위해서 두 사람을 초청하자고 주장했다.

 

4월18일 저녁 허영주·허경주씨가 두 사람을 만났다. “블랙박스를 수거하면 침몰 사고 원인을 확실하게 알 수 있나요?”라고 허영주씨가 묻자 윌리엄 랭 박사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당연합니다. 블랙박스 안에는 사고 당시 선원들의 대화와 항로, 배의 상태를 알 수 있는 데이터가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사고 원인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어요. 바다 밑에 가라앉은 선체 한 조각 한 조각이 사고 원인을 말해줍니다. 그걸 모두 분석하는 포렌식 조사를 진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블랙박스 수거는 당연히 필요하고요.”

영주씨는 블랙박스 수거가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물었다. 이 질문에 데이비드 갈로 박사가 답했다. “어둡고 깜깜한 심해에서 우리는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 그동안 많은 사고를 해결해왔습니다. 사실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한 곳보다 더 깊은 심해에서도 우즈홀 해양연구소 팀은 훌륭하게 블랙박스를 수거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이들의 대답을 듣자 영주씨는 궁금증이 풀린 듯 표정이 밝아졌다.

윌리엄 랭 박사는 심해 촬영 전문가이다. 각종 최첨단 장비로 심해를 촬영해 블랙박스 수거 등을 돕는다. 그는 심해 촬영과 수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부연 설명을 했다. “심해 깊은 곳에 들어가면 사고 선박이나 비행기가 마치 나에게 무언가 말을 해주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이를 카메라로 촬영하고 3D로 복원해 정확한 위치와 정보를 제공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무인로봇 팀이 선박이나 비행기 선체 조각 또는 블랙박스를 인양해 사고 원인을 분석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확보합니다.”

갈로 박사는 2009년 5월 승객과 승무원 228명을 태우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프랑스 파리를 향해 출발했다가 추락한 에어프랑스 447편 사고의 공동 탐사 책임자였다. 에어프랑스가 추락한 지점의 수심은 3000∼6000m나 되었다. 수색이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정부는 우즈홀 해양연구소에 도움을 청했다. 갈로 박사가 이끄는 팀은 ‘레모라 6000’이라는 로봇 잠수정까지 투입해 2011년 7월 심해 3900m 지점에서 가로×세로×높이가 40×20×20㎝인 블랙박스를 찾아냈다.

ⓒ시사IN 신선영실종자 가족들은 스텔라데이지호를 상징하는 오렌지색 점퍼를 입고 ‘국회 공청회’에 참석했다.

그는 또 2012년 타이태닉호 잔해들의 위치를 전체적으로 담아낸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100년 전인 1912년 침몰한 타이태닉호 잔해가 반경 5~8㎞ 범위에 흩어져 있었는데, 자율 무인잠수정 등을 동원해 이들 선박의 잔해 상태를 한눈에 볼 수 있게끔 지도를 완성한 것이다. 두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눈 허경주씨는 “가족들의 생사 확인을 바라는 우리에게는 심해 수색만이 단 한 번의 기회일 수 있다”라며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다음 날인 4월19일 데이비드 갈로 박사와 윌리엄 랭 박사는 국회 공청회에 참석했다. 외교부와 해양수산부, 박완주 의원 등이 주최한 ‘스텔라데이지호 심해 수색장비 투입 검토 공청회’에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참석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스텔라데이지호를 상징하는 오렌지색 점퍼를 입고 방청석에 앉았다. 이날 갈로 박사와 랭 박사는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들려주었다. 

심해 3000m, 블랙박스 수거 가능한가

 

공청회에서도 단연 관심사는 심해 3000m 지점에서 블랙박스 수거가 가능한가였다. 랭 박사는 자세히 답변했다. “블랙박스 수거는 가라앉은 배가 직선으로 똑바로 있다면 훨씬 쉽다. 그런데 배가 침몰하면 보통 똑바로 서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스텔라데이지호는 침몰 과정에서 배가 두 조각으로 부러졌다고 하는데, 1980년 오키나와 남동해상에서 침몰한 영국 선박 더비셔호도 비슷했다(1997년 랭 박사는 49일 동안 수중 로봇을 투입해 심해 4000m에 가라앉은 더비셔호 사진 13만7000장을 찍어 사고 원인을 분석한 바 있다). 배가 빨리 침몰할수록 깊이 들어가는데, 스텔라데이지호 잔해가 (심해에서) 다방면에 퍼져 있지 않을까 예상된다. 그래도 상부 구조가 어딘가에 있다면 수색 뒤 블랙박스를 회수하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3시간에 걸친 열띤 공청회는 종합토론으로 마무리되었다. 종합토론의 좌장 서주노 한국해양대학교 교수는 이렇게 말하며 공청회를 끝냈다. “블랙박스만 수거한다고 모든 게 규명되느냐? 그건 아니다. 블랙박스 수거는 침몰 원인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오늘 공청회에 나온 미국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도 않다. 이번 공청회를 통해 스텔라데이지호의 심해 수색장비 투입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지난 1년간 거리에 있었던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다. 허경주씨는 “정부는 사고 초기 가족들에게 심해에서 블랙박스 수거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수거 기술 자체가 없다고 했다. 그 불가능하다는 일이 이번 공청회에서 ‘가능하다’로 바뀌고 있다”라고 말했다. 갈로 박사는 “우리가 이번에 한국에 온 것은 가족들 때문이다. 인도주의는 우즈홀 해양연구소 팀이 추구하는 과학의 가치다. 스텔라데이지호의 경우도 인도주의 차원에서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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