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완익 ‘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회적 참사 특조위·2기 특조위)’ 위원장은 ‘과거사 전문 변호사’로 통한다. 2004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고 2006년부터 4년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 겸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제주 4·3희생자 유족회’ 법률지원단을 비롯해 일본 전범기업들을 상대로 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을 이끌기도 했다.

ⓒ시사IN 이명익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활동을 시작한 건 2014년 대한변호사협회 세월호 참사 특별위원회 소속으로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특별법(가족안)’을 만드는 데 참여하면서부터다.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 특조위·1기 특조위)’에서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박근혜 정부의 방해로 특조위가 무력화되는 걸 지켜봐야 했다. 위원 임명부터 시행령 제정, 예산 배정까지 어느 하나 수월한 과정이 없었다. 당시 여당 몫으로 특조위에 들어온 위원들이 해양수산부의 지침에 따라 활동하고 있는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정부의 조직적인 방해가 있었다는 사실은 최근 검찰 수사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검찰은  3월29일 세월호 특조위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기소했다. 세 사람은 앞서 구속된 김영석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 윤학배 전 차관에게 세월호 특조위 활동을 방해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새로 출범한 사회적 참사 특조위는 세월호뿐만 아니라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함께 다룬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안전사회 건설과 관련된 제도를 개선하며 피해자 지원 대책을 점검하는 업무’ 등을 수행한다. 활동 기간은 조사 개시일로부터 1년이고, 1년 더 연장할 수 있다. 이른바 ‘2기 특조위’다. 세월호 4주기를 앞두고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 있는 사회적 참사 특조위 사무실에서 장완익 위원장을 만났다.  

위원장으로 선출된 소감이 궁금하다. 5명의 상임위원 중에서 위원장을 선출한다. 국회의장이 한 명 추천하고 여야가 각각 두 명씩 했는데 여당 추천 상임위원을 위원장으로 하기도 그렇고 야당 추천자를 하기도 그렇지 않나. 암묵적으로 국회의장 몫을 위원장으로 선출하는 걸로 되어 있지 않았나 싶다. 과거 세월호 특조위의 경우는 희생자가족대표회의에서 추천한 상임위원이 위원장이 되는 걸로 정치적 합의가 되어 있었다. 책임감이 크다.

ⓒ연합뉴스3월29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사회적 참사 특조위’ 황전원 위원(오른쪽) 사퇴를 촉구하며 막고 있다.
지난 1기 특조위에 몸담았을 당시 아쉬움이 있었을 것 같다.아쉬움이 많았다. 정부가 시행령을 제정하거나 예산 짜는 과정을 비롯해 활동기간을 7개월 잘라버리는 것도 지켜봤다(세월호 특조위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세월호 특별법 발효 후 7개월이 지난 2015년 8월이었지만 당시 정부는 특별법이 발효된 2015년 1월1일부터 1년6개월을 계산해 2016년 6월30일자로 특조위를 해산하라고 통보했다. 예산 역시 2015년 8월에야 확정된다). 설마설마했는데 최근 검찰 수사 결과를 보니 박근혜 정부 해양수산부 장·차관이 개입했고 박근혜 청와대의 방해 지시도 있었다. 나도 잘 아는, 파견 나와 있던 공무원들이 그런 지시에 따랐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에도 4년간 있으며 공무원들을 지켜봤다. 친일파 재산을 국가에 환원시키는 역사적인 일에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하던 모습만 보다가 다른 모습을 보니 더 안타까웠다. 이것도 그나마 강제수사를 하니 밝혀진 거다.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의 7시간 혹은 대통령의 7시간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 때 수사권과 기소권을 강조했던 게 그 이유다. 아쉬움이 많지만 더 잘했어야 했다. 지난 1기 특조위에 비해 2기 특조위의 권한이 강화된 것은 아닌가? 강화하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은 것 같다. 조사관들에게 수사권을 주는 조항이나 특검 후보자를 위원회에서 추천하는 조항이 논의 과정에서 빠졌다. 이전과 달리 특검을 요청할 경우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가 3개월 내에 안건 심사를 마쳐야 하고, 기한 내에 못 마치면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도록 했는데 회부된다고 해서 꼭 통과된다고 볼 수는 없다. 분위기상 특조위에서 특검을 요청하면 받아줄 것으로 생각되지만 어쨌든 표결이라는 절차가 있다. 이 외에 기존 수사 기록이나 재판 내용을 받아볼 수 있게 되었는데 수사 절차를 거친 내용을 다시 조사할 권한은 없다. 권한이 강화된 것보다는 과거와 분위기가 달라진 게 크다.
ⓒ시사IN 신선영‘사회적 참사 특조위’는 세월호 침몰 원인을 밝히기 위해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와 실무 협의를 할 수 있는 조직을 구성했다.
앞으로 어디에 주력할 계획인가?
2년 동안 어디까지 손을 댈지 목표와 계획을 세워야 한다. 지금 세월호 참사만 이야기되고 있지만 가습기 살균제 참사도 아주 큰 부분이다. 일부는 수사가 진행됐고 공정위에서도 조사했다. 자료를 받아봐야 진행 상황을 알 수 있다. 일단 피해자가 특정되어야 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아봐야 한다. 피해자 지원이 중요할 수도 있고 진상 규명도 그 나름으로 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침몰 원인도 아직 밝혀진 게 없다.검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에 대한 행적이 나왔다. 사회적 참사 특조위에서도 여전히 이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이 중요한가?7시간 자체보다는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는 국가가 구조에 실패했다는 맥락을 보는 게 중요하다. 직접적으로는 구조에 나선 해경이 제대로 못했다. 지휘계통으로 올라가면 결국 정부의 구조 체계가 실패한 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은 그 일부다.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게 구조 실패의 한 요인이 될 수는 있겠지만 더 많은 잘못이 있었을 것이다. 검찰 수사는 대통령 보고 시간이 몇 시였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왜 구조를 못했는지,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는 밝히지 못했다. 이번 특조위에서는 이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검찰 수사에서 청와대의 방해 사실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박근혜 정부 해양수산부 장·차관, 비서실장 등의 이름이 나왔다. 이들의 지시로 특조위 활동을 방해한 공무원들의 이름은 가려졌는데 누군지 대충 짐작이 간다. 1기 특조위 활동 당시 해양수산부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들이다. 짐작은 가지만 구체적인 역할은 각자 다를 텐데 그 내용이 궁금하다.

그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미인가?

형사적 처벌과 또 다르다. 형사처벌은 범죄 구성요건에 따라서 하는데 진상 규명은 조금 더 폭넓게 봐야 한다. 조사할 부분이 있으면 추가로 해서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총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처벌이 목적이라기보다 밝히는 자체에 의미가 있다. 지난 세월호 특조위는 정부로부터 독립된 국가기구였다. 그런데 활동을 못하게 막은 거다. 박근혜 정부가 활동 기간도 크게 줄였다. 최소한 국무회의가 예산을 의결한 2015년 8월4일을 시작일로 봤으면 더 많은 조사를 진행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2017년 2월까지를 활동 기한이라고 하고 보고서 쓰는 기간을 3개월로 두면 2017년 5월3일까지다. 4월에 선체가 인양됐다. 만약 당시 5월까지 활동 기간이 인정되었다면 (탄핵·대선이 이어진) 당시 분위기로 봐서는 특조위 활동이 연장되었을 수도 있다. 1기 특조위 사람들은 일부를 빼고는 뿔뿔이 흩어졌다. 선체가 올라오면서 감당이 안 되니까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이 갑자기 만들어졌다.정부의 방해도 있었지만 조사관의 역량 문제, 파견 공무원과 비공무원 간 갈등 같은 다양한 문제가 있었다.새롭게 조직되는 기구는 그런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외부에서 일자리 갖고 있던 사람들이 좋은 의도로 들어와 일하더라도 그 뒤에 복귀한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고 정부 부처를 조사하는 일이라 조사 업무를 파견 공무원한테만 다 맡길 수도 없다. 같은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해도 누가 했느냐가 중요할 수 있다. 당시 조사관으로 과거사위원회에서 온 분도 계셨고 다양한 분들이 오셨던 것 같다. 조사관 교육이 필요하다. 지금 교육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 또 당시엔 피해자들의 조사 신청도 200건 넘게 들어왔는데 그분들한테 결과를 통보해야 하니 그걸 우선적으로 처리했다. 겹치는 것도 있고 위원회를 거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정작 조사를 하려고 보면 시간이 다 지나 있었다. 큰 그림을 먼저 그리고 들어갔어야 했다. 모든 걸 하자는 건 지양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어디까지인지 봐야 한다.조사 범위는 늘었는데 인원은 그대로다.

엄밀히 보면 5명이 늘었다. 지난 세월호 특조위 때는 상임위원을 포함해 120명이었고, 이번 사회적 참사 특조위에는 상임위원을 빼고 120명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도 있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반으로 줄었다. 지난 세월호 특조위와 선체조사위 내용을 잘 이어받아 효율적으로 해야 할 것 같다. 2014년 특별법을 만들 때 시행령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국회의원 중에서 뜻있는 분들이 좋은 법안을 제출해 특별법을 만든다 하더라도 조직을 결정하는 건 시행령인데 그건 정부가 하니까 방해가 있지 않나 생각했다. 그래서 아예 특별법에 120명으로 못을 박았다. 그렇게 했는데도 지난 정부가 일단 90명으로 시작하고 6개월 뒤에 30명을 더 뽑자고 했다. 지난해 박주민 의원이 특별법 개정안을 낼 때 150명으로 했으면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법 통과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여론이 있었다. 예산 범위 내에서 추가로 채용할 수는 있다.세월호 선체조사위와는 소통하고 있나?

4월5일 목포에 찾아갔다. 선체조사위와는 논의해야 할 부분이 많다. 침몰 원인이 확실히 밝혀지면 그 부분과 관련해 사회적 참사 특조위가 더 할 게 없다. 곧 활동 기간이 종료되는데 그때 관련 내용을 이관받아야 한다. 실무 협의를 할 수 있는 단위는 구성했다. 5월에 조사위 활동이 끝나도 보고서 작성 기간이 있으니 그동안에도 계속해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예정대로 5월에 선박 직립이 되면 침몰 원인을 밝히는 한편 안에 미수습자가 있을 경우 수습도 해야 한다.사회적 참사 특조위가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는 시점은 언제일까?

최근 전원회의에서 직제와 시행령을 논의했는데 이에 더해 예비비가 확정되어야 한다. 별정직 공무원들을 뽑기 위한 채용공고를 낸 뒤 아까 말했던 교육에 들어갈 거다. 파견직 공무원도 받아야 한다. 지난 세월호 특조위를 경험한 분들 입장에선 서로 불신이 있으니 그것도 깨나가야 한다. 조직을 갖춘 뒤 무엇을 해야 할지 논의가 끝났을 때 첫 조사를 개시하려 한다. 그렇다고 그 시기를 너무 뒤로 잡으면 안 될 것이다.지난 세월호 특조위를 세금 도둑으로 몰았던 황전원 상임위원의 복귀에 대해 유족들이 반대하는데.

국회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 거라 내가 말하는 건 적절치 않은 듯하다.가습기 살균제와 세월호 참사를 함께 조사하는 데서 오는 어려움은 없나?

융통성 있는 조직을 만드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가습기 살균제와 세월호 참사 원인 진상 규명도 해야 하고 제도적으로 부족한 부분에 대해 대안도 세워야 한다. 그런 한편 피해자 지원책도 마련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진상 규명이 우선된다면 다른 분야 인원도 그쪽으로 동원해 같이해야 한다. 거꾸로 원인 규명이 되어서 다른 분야의 보강이 필요하면 진상 규명 분야 인력을 거기에 투입할 거다. 제한된 인원이지만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과거사 관련 경험이 특조위 활동에 도움 되나?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 겸 사무처장을 하면서 전형적인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되었다. 4년간 있으면서 공무원 조직이나 행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아왔다. 그새 바뀌어서 잘 모르는 부분도 있지만 일에 대한 두려움은 적다. 도움이 많이 될 거다. 내가 하기 나름이다.지난 세월호 특조위에서 어려움을 겪었는데 또다시 맡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있다면?

전에는 나이가 많은 분들과 일을 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나 ‘위안부’ 할머니 같은 생존자도 있고 4·3이나 한국전쟁의 경우 유족분들이었는데 대부분 나이 많은 어르신이다. 그런 분들과 일을 하니까 오히려 내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관심 분야니까 선택적으로 한다는 게 있었다. 이번에는 동시대의 유족들이다. 그분들이 요청하니 거절할 수 없었다.장 위원장에게 세월호 참사란 어떤 의미인가?

과거사 쪽 일을 많이 했는데 세월호 참사가 과거사인지 현대사인지 모르겠다. 과거사라고 했던 것들도 어찌 보면 현실의 문제일 수 있는 거고, 세월호 참사도 현실의 문제지만 어떻게 보면 조금 과거사가 된 것 같기도 하고 헷갈린다. 어쨌든 한국에서 일어난 문제이고 그것들이 이어져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여건이 달라졌다. 각오도 다를 것 같다.

이제는 방해 때문에 잘 못했다는 말을 할 수 없다. 못하면 욕먹어야 한다. 조직을 추슬러 내부 융합부터 이루고 난 다음, 할 수 있는 게 뭔지 찾아나서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교육이 중요하다고 본다. 두 참사에서 특조위의 역할이 무엇일지 생각 중이다. 세월호 특조위 때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당시 무얼 놓쳤는지도 되돌아보고 있다. 어쨌든 결과로 말씀드려야 한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