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 빼곤 다 졸았던 박근혜 결심공판
  • 김연희 기자
  • 호수 552
  • 승인 2018.04.1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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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피고인이 징역 24년에 벌금 180억원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4월 박 피고인이 재판에 넘겨진 이후 1년 만에 나온 판결이다. 1심 재판부는 18개 공소사실 가운데 16개를 유죄로 인정했다.
“박근혜 피고인을 징역 24년 및 벌금 180억원에 처한다.” 4월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박근혜 피고인에 대한 1심 선고를 내렸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강요, 삼성 정유라 승마 지원, 문화계 블랙리스트, 청와대 문건 유출 등 18개 혐의 가운데 16개가 유죄로 인정됐다(왼쪽 인포그래픽 참조). 지난 2월 최순실씨 1심 선고와 닮은꼴 판결이었다. 형사합의22부는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의 재판도 담당했다.

‘박근혜·최순실 법정중계’라는 이름으로 107회 공판을 지면에 담은 〈시사IN〉 기자들이 다시 모였다. 여기에 같은 법정을 취재한 다른 언론사 소속 기자도 방담에 참여했다. 솔직한 방담을 위해 닉네임을 사용했다. 닉네임은 ‘박근혜 어록’에서 따왔다.



바쁜벌꿀: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판결이었다.

비선은대박:어떤 선고가 내려질지 거의 답안지가 나와 있었다. 박근혜 피고인의 혐의 18개 중 13개가 최순실씨와 공범 관계였다. 최순실·박근혜 피고인 재판부가 같았다. 같은 재판부가 판결을 내린 만큼 공범 관계인 혐의에 대해서는 동일한 판단이었다.

유죄의기운:최순실씨는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박근혜 피고인은 25년 정도 선고될 줄 예상했다. 딱 내 예상에서 1년이 깎였더라.

바쁜벌꿀:본인은 충분히 가혹하다고 여길 거다. 항소심과 최종심에서 일부 형량이 줄어들 수 있는데 1심 판결대로라면 2041년에 출소한다. 2041년이면 박 피고인이 아흔 살이다.

비선은대박:판결 직후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가 박근혜 피고인 나이였다.

자괴감뿜뿜:
삼성 경영권 승계 작업을 부정한 청탁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도 똑같았다. 최순실씨가 설립하고 장시호씨가 운영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삼성이 16억2800만원을 지원한 건 무죄가 났다. 제3자 뇌물수수죄는 ‘부정한 청탁’이 확인돼야 범죄 요건이 성립된다. 예상했지만 여전히 아쉽다.

유죄의기운:김세윤 부장판사가 1시간40분 동안 판결 취지를 쭉 설명했다. 처음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었다. 워낙 조리 있게 말해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왔는데 삼성 경영권 승계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명은 좀 알아듣기 어렵더라.

자괴감뿜뿜:그 부분은 판결 이유에 자세히 기재했다면서 간략하게 넘어갔다. 이해는 간다. 검찰 공소장에서도 삼성 승계 작업 부분이 제일 복잡하고 분량도 많다.

ⓒ그림 우연식2017년 5월23일 공판 당시 박근혜·최순실 피고인(왼쪽에서 두 번째, 네 번째)은 사진 취재와 방송 촬영 때문인지 긴장한 듯 보였다(위).
바쁜벌꿀
:박근혜 피고인은 선고 때도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자괴감뿜뿜:그것도 예상했다.

바쁜벌꿀:법정에서 지켜본 피고인 박근혜는 어떤 사람처럼 보였나?

유죄의기운:지난해 5월23일 첫 공판이었다. 그날 박근혜 피고인을 보고 놀랐다. 구속 중이니 부스스한 상태로 나왔는데, 그때만 해도 뭐랄까 위엄 같은 게 엿보였다. 고고한 자세가 몸에 배어 있다고 해야 하나.

자괴감뿜뿜: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비하하는 의미로 그녀를 ‘공주’라고 부르는데, 첫 재판 때 풍기는 분위기를 보고 이 사람은 실제로 한평생 왕족 마인드로 살았구나 싶었다.

비선은대박:나는 5월25일 두 번째 재판부터 들어갔는데 그때는 이미 총기를 잃은 상태였다(웃음).

유죄의기운
:첫 공판 때 사진 취재와 방송 촬영을 허가해서 긴장을 유지한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보여지는 이미지에 최적화된 인물 아닌가.

자괴감뿜뿜:맞다. 첫 공판 이후 빠르게 무너졌다.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자기 재판이 아닌 것처럼 앉아 있곤 했다. 졸 때도 있었고.

ⓒ시사IN 신선영4월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인근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비선은대박
:평소와 달리 감정을 드러낸 적이 있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인데 졸지도 않고 매섭게 쳐다봤다. 유진룡 전 장관이 2014년에 “나쁜 사람”이라면서 문체부 공무원 경질을 지시했다고 폭로하지 않았나. 그런 악연 때문인지 유영하 변호사가 증인 신문하는 태도도 신경질적이었다.

자괴감뿜뿜
:그 재판 때 유영하 변호사가 “지금 반말하는 겁니까” 하고 유진룡 전 장관한테 소리를 빽 질렀다. 그 순간 박근혜 피고인이 빵 터졌다. 크게 웃었다. 방청석에 있던 박사모도 같이 웃었다. 그 대목을 통쾌하게 여긴 것 같다.

유죄의기운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가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도 한번 그랬다.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이 ‘VIP(대통령)가 말 사주라고 한 것인데 세상에 알려지면 탄핵감’이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그때 박근혜 피고인이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 한동안 웃음을 참지 못했다. 너무 뜬금없는 타이밍에 터진 웃음이라 방청석에 있던 박사모까지 순간 얼음이 됐다. 이해가 안 됐다.

유죄의기운:최순실씨는 정반대였다. 최씨는 증인에게 자주 질문하고 적극적으로 임했다. 반면 박근혜 피고인은 첫 공판에서 판사가 직업을 묻자 “무직입니다”라고 답한 이후 한동안 법정에서 입을 열지 않았다.

비선은대박:최씨가 이례적이었다. 최후진술을 제외하면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이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법리적으로 불리한 내용이 나올 수 있으니까.

바쁜벌꿀:최순실씨도 박근혜 피고인만큼 말을 못하긴 한다. 그런데 사람을 코너로 몰아붙이는 재주가 있더라. 최순실 피고인이 증인한테 자주 한 질문이 “저 만난 적 있어요?”였다. ‘나랑 모르는 사이면서 왜 다 아는 것처럼 나한테 불리한 얘기를 하냐’ 이런 뜻이었다.

유죄의기운:박근혜·최순실 피고인이 나란히 앉아 있으니 최씨가 왜 비선 실세인지 알겠더라. 최씨는 주도적이고 박근혜 피고인은 수동적이고.

자괴감뿜뿜:검찰 수사로 드러난 세월호 7시간 의혹도 딱 그렇지 않나. 4월16일 오후 2시15분에 최씨가 청와대 관저에 와서 회의를 한 후에야 대통령이란 사람이 움직였다.

유죄의기운:정호성 전 비서관이 증인으로 나와서 그런 말을 했다. “대통령께서는 가족도 없고 24시간 국정에만 올인하신 분”이라고. 그때 유영하 변호사도 울고, 박사모도 울고 법정 분위기가 숙연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10시20분까지 침실에서 안 나왔다니 그마저도 거짓말이었다.

비선은대박:박 피고인이 유영하 변호사한테 “내가 임기를 못 마치고 나올 줄 알고 휴일도 없이 일만 했나 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2014년 4월16일은 수요일이었다. 휴일에 일하고 평일에 쉬었다는 건가.

바쁜벌꿀:박 피고인은 지난해 10월 구속영장이 추가 발부된 이후 계속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사선 변호인도 사퇴해 중간에 국선 변호인이 맡았다. 그 이전에도 재판을 받는 피고인 측 태도가 썩 바람직하지는 않았다.

비선은대박:사실 박 피고인이 재판을 보이콧하고 ‘아무말 대잔치’였던 사선 변호인이 사퇴한 뒤 재판 진행이 원활해졌다. 나만 그렇게 느꼈나(웃음).

자괴감뿜뿜:나도 공감. 박근혜 피고인 사선 변호인단은 재판을 지연시키려고 했다. 다른 국정 농단 재판에 출석했던 증인을 꼭 이 법정에 다시 불러 신문해야 한다고 했다. 그 바람에 한때 증인 목록이 300여 명까지 불어났다. 박 피고인 보이콧 이후 증인 신청을 여럿 철회했는데도 최종적으로 증인신문이 138차례(중복 증인 출석 포함)나 이뤄졌다.

유죄의기운:
유영하 변호사가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진술조서, 공판조서를 모두 부동의한다고 할 때마다 재판부 탄식이 들리는 것 같았다(웃음).

비선은대박:변론도 법리 다툼보다는 대중에게 호소하는 식이었다.

바쁜벌꿀
:박근혜 피고인 국정 스타일과 비슷하다. 정해진 시스템을 무력화시키고 비선 실세에게 의지해 국정 운영을 하다가 이 사태에 이르게 된 것 아닌가. 특검 수사와 헌법재판소 탄핵소추 심판에도 사실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자괴감뿜뿜
:추가 구속영장이 발부돼서 사선 변호인이 총사퇴할 때는 정말 심했다. 유영하 변호사가 울면서 변론했는데 자극적인 단어만 골라 썼다. “저희 변호인들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과 피울음을 토하는 심정을 억누르면서 더럽고 살기 가득한 이 법정에 피고인을 홀로 두고 떠난다”라고 말했다.

유죄의기운:
그날 박사모도 소란을 피웠다. 재판 끝나고 법정을 나오면서 유영하 변호사 말을 들으려고 기자들이 따라붙었다. 박사모 회원들이 “기자들 죽여버리겠다”라면서 미친 듯이 따라왔다. 유영하 변호사는 기자들 피하려고 뛰고, 기자들은 박사모 무서워서 뛰고.

자괴감뿜뿜:지난해 박근혜 피고인이 검찰 출석하던 날, 삼성동 사저 앞에 있었는데 취재고 뭐고 잘못하다가는 압사당하겠다 싶을 정도로 박사모 회원들이 많았다. 이번에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 앞에는 기자들밖에 없었다.

바쁜벌꿀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떡 돌리는 사람도 있었다. 구속 축하 기념으로.

비선은대박
:박근혜 피고인이 탄핵 이후 사저에 돌아왔을 땐 한동안 그 골목이 붐볐다. 취재진도 많고 지지자도 많아서. 그 앞에 있던 칼국숫집, 중국집, 치킨집은 때 아닌 특수였다. 기자들끼리 박근혜 피고인 탄핵으로 드디어 창조경제가 꽃피었다고 했다.

유죄의기운:
정호성 전 비서관 재판 때 화장실에서 그의 누나와 우연히 마주쳤다. 법정에서 정호성 전 비서관이 다 자기 잘못이라고 하는데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누나가 “오래 모셔왔던 분이니까 당연하죠”라고 하더라.

비선은대박
:그런데 정호성 전 비서관이 최순실씨에게 청와대 문건을 유출했고, 검찰 조사 때 다 털어놓았다. 그래서 기자들끼리, 울면서 검찰에 다 분다고 했었다(웃음).

자괴감뿜뿜:이재만 전 총무비서관도 최근 전 국정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원 특수활동비 잔고까지 챙겼다”라고 진술했다. 박근혜 피고인은 “이전 정부부터 관행으로 알았고 구체적 액수나 사용 내역을 보고 받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문고리 3인방도 각자도생의 길을 걸은 셈이다.

바쁜벌꿀
:1년 남짓 취재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공판 장면이 있나?

비선은대박:지난 2월27일 결심공판. 검찰 논고문이 인상적이었다. 역사에 남을 재판이라서 그런지 공들인 티가 났다. 따로 리허설도 했다고 한다. 검찰 측 의견 진술이 30분 만에 끝났는데, 그 이상 가면 집중력이 흐려질까 봐 시간을 맞췄다고 하더라.

유죄의기운
:나도 그날 공판이 기억에 남는다. 좀 다른 이유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상한 재판이었다(웃음). 김세윤 재판장 빼고는 다 졸았다. 웃음을 참으려 고개를 돌렸는데 옆에 있던 박사모도 졸고 있었다. 정작 피고인은 결심공판에 나오지도 않고. 뭔가 박근혜 재판을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장면 같았다.

자괴감뿜뿜
:나는 아직도 이것이 무슨 사건인지 정의 내리기가 어렵다. 박근혜 정권이 권위적이고 무능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이 정도까지 국민을 속일 수 있을까, 국가 시스템을 무력화할 수 있을까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바쁜벌꿀
:박근혜 피고인은 끝까지 어떤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자괴감뿜뿜
:추가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나서 박 피고인이 직접 의견서를 읽었다. 법정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길게 얘기했다. 그 이후에는 재판을 보이콧하며 출석하지 않았으니까. 그때 “언젠가는 반드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믿는다”라고 했다. 그전에도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지난해 3월12일 청와대에서 나와 사저에 들어갈 때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쪽지를 대신 읽었다. 그사이 생각의 변화가 전혀 없는 거다.

바쁜벌꿀
:자꾸 무슨 진실이 밝혀질 거라고 하는 걸까.

자괴감뿜뿜:‘국정 농단 말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리가 더 있다’는 뜻 아닐까(웃음).

유죄의기운
:맞는 말이긴 하다. 국정원 특수활동비 유용과 공천 개입 사건 1심 재판이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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