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그로 인한 이별은 인간사에서 피할 수 없다. 그걸 알면서도 남은 사람들은 어김없이 비탄에 빠지곤 한다. 이별 후 슬픔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괴물에 붙들린 사람들은 어떤 시간을 보내는 걸까. 폴 하딩의 장편소설 〈에논〉을 통해 상실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지나오는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일별할 수 있다.

폴 하딩 지음
민은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미국 동부 소도시 에논에서 가족과 행복하게 살아가던 찰리는 어느 가을날 아내한테 긴급한 전화를 받는다. “케이트가 죽었어. 차가 쳤대. 그래서 애가 죽었어.” 아내는 하나뿐인 딸의 죽음을 알린다. 찰리는 끝도 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빠지고, 제 한 몸 가누지 못하는 그에게 지쳐 아내는 친정으로 떠나버린다. 

그 뒤 이어지는 이야기는 찰리가 겪는 고통의 절절한 기록이다. 찰리는 진통제를 남용하고 술을 마시며 “목을 조이는 울화를, 눈을 휘젓는 살인적 고통을, 코에서 타오르는 유황을, 귀에서 울부짖는 허리케인을” 잊으려 애쓴다. 그럴수록 딸에 대한 기억은 더욱 선명해진다. 약에 취한 찰리의 눈앞에 죽은 케이트가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지독한 우울증에 빠졌던 찰리가 차츰 일상으로 복귀하는, 느리고 지난한 과정은 애도의 어려움을 통렬하게 보여준다. ‘찬란한 슬픔’을 그려내는 생생하고 처연한 미문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기대만큼 인기를 끌지 못했다. 추측하건대, 어린 딸을 잃고 밑바닥까지 무너지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독자들이 마주하기가 감정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이 책이 궁극적으로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상실을 끌어안고 다시 살아갈 힘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필멸의 존재는 이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어제를 기리며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영원히 끝날 수 없는 애도라고 말이다.

기자명 손예린 (문학동네 편집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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