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포럼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가톨릭대 정신과학교실 이해국 교수는 게임업계의 ‘주적’이다. 게임장애의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경고해온 대표 연구자여서다. 2014년 국회 공청회에서 “마약보다 더 강한 중독이 게임에 있을 수 있다”라고 발언해 업계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게임장애가 국제질병분류 11판(ICD-11) 베타버전에 포함된 이후에는 ‘나당연합군처럼 WHO를 등에 업었다’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 교수를 만나 게임중독과 ICD-11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물었다.


ⓒ시사IN 조남진이해국 교수는 “게임장애가 생체 신호로 측정이 안 되니까 중독이 아니라는 주장은 틀렸다”라고 말했다.
게임장애의 구체적 증상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게임을 많이 한다. 정말 많이 한다. 주말에는 20시간씩 하고, 주중에도 PC방에서 밤새우고. 생활 사이클이 무너지고 신체 밸런스가 깨진다. 게임할 때만 즐겁고 안 할 때는 우울하다. 잔소리하는 부모와 갈등이 심해지고 폭력적 행동도 보인다. 특히 아동과 청소년들은 기본적으로 즉각적 만족에 더 큰 반응을 보인다. 담배나 술, 마약은 여러 제약이 있으니 게임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게임의 자극이 워낙 크다 보니 그 나이에 응당 즐겨야 하는 것을 즐기지 못하고, 앞날을 위해 참아야 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스포츠를 비롯한 여러 여가 활동도 중독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럴 수 있다. 모든 기쁨을 주는 행위·물질은 중독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축구에 중독되기가 쉬울까, 〈피파 온라인 3〉(넥슨의 축구 게임)에 중독되기가 쉬울까? 축구에 중독되려면 우선 사람을 모아야 한다. 연습도 해야 하고 장비도 필요하다. 마라톤? 역시 중독될 수도 있다. 그런데 마라톤에 중독되기는 좀 어렵다. 신체적 고통을 이겨내야 하니까. 접근하기 쉽고 보상이 빠르게 주어진다는 점에서 게임과는 비교가 안 된다.

최근 나오는 게임은 과거의 게임보다 중독성이 강한가?

그렇다. 한국에서 처음 나온 부분유료화(Free-to-Play) 게임이 일례다. 부분유료화 게임은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배포하는 대신 게임 내 상품을 현금으로 판매한다. 전통적 게임들은 한번 CD를 팔면 사용자가 얼마나 즐기든 상관이 없다. 그러나 부분유료화 게임은 사람들이 오래 플레이하고, 지속적으로 아이템을 사야 돈이 벌리는 구조다. 그래서 게임회사들은 중독성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사행성 요소까지 도입했다. 한국의 부분유료화 모델은 전 세계에 퍼지는 중이다. 한국·중국의 게임중독 사례를 두고 ‘에이, 그렇게 심각한 애들이 있어?’ 하던 서구권 연구자들도 관심이 늘었다. WHO가 ICD-11을 내놓은 배경 중 하나다.

ICD-11은 각국 보건 체계에 어떤 영향을 주나?

용어 그대로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 쓰이는 진단 기준이다. 각 항목에 따라 ‘질병코드’를 붙이고, 여기에 맞춰 처방을 내린다. 영역별 전문가 그룹이 세계 공통의 컨센서스(합의)를 바탕으로 만들기에 일반적으로 각 나라들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도 ICD에 맞춰 개정된다. 다만 현행 KCD에는 ICD에 없는 ‘인터넷 중독’ 항목이 있다.

게임장애는 어떤 의미인가?

게임장애는 ‘중독성 행동에 의한 장애’의 하위 항목으로 들어갔다. 일반적으로 질병(Disease)은 명확한 세균·암세포 등이 발견될 때 쓰이고, 장애(Disorder)는 우울증처럼 정신적 기능 이상에 쓰인다. 게임장애는 쉽게 말해 게임을 좀 이상하게 하는 것이다. 48시간을 내리 한다든지, 안 하면 괴로워한다든지. 게임장애라는 용어에는 게임 자체를 비난하는 뉘앙스가 없다. 수면장애(Sleep Disorder), 알코올사용장애(Alcohol use Disorder) 역시 ‘잠 나쁜 놈!’ ‘알코올 나쁜 놈!’은 아니지 않나? 게임장애 또한 게임 이용의 패턴이 비정상적인 상태쯤으로 보면 된다.

기준이 광범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환자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오히려 몹시 보수적인 기준이다. 미국정신의학협회(APA)가 2013년 펴낸 〈정신질환진단 및 통계편람〉 5판(DSM-5)에는 ‘인터넷 게임장애’가 ‘추가 연구 요망 항목’으로 들어갔다. KCD에 기준이 없기에 의료 현장에서는 DSM-5의 척도를 참고한다. 진단 척도 9개 중 5개 이상에 해당하면 인터넷 게임장애로 분류한다. 가령 DSM-5에서는 ‘게임 때문에 중요한 관계·일·교육이나 경력이 위태롭게 되거나 잃은 적이 있다’가 하나인데, 여기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5개를 채우면 질병이다. 그러나 ICD-11에서는 이 부분이 반드시 충족돼야 게임장애로 인정된다. 사실 DSM-5가 비판받은 이유 중 하나가 인터넷 게임장애 기준이 너무 폭넓다는 점이었다.

게임중독은 ‘내성’과 ‘금단현상’ 두 요소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있다.

알코올이나 마약 같은 물질중독은 내성과 금단현상이 핵심 요건이다. 그러나 게임이나 도박과 같은 행위중독은 조금 다르다(ICD-11 베타버전에 함께 등재된 ‘도박장애’ 역시 게임장애와 거의 동일한 기준으로 정의됐다). 오히려 행위중독의 핵심 증상은 조절 불능(Loss of Control)과 우선시(Prioritization)다. 안 하면 괴롭고 더 오랜 시간 몰두하게 되는 것, 그 자체가 내성과 금단현상을 포괄한다. 행위중독은 물질이 체내에 들어오는 게 아니므로 생리적 반응을 검증하기가 어렵다. 생체 신호로 정확히 측정이 안 되니까 중독이 아니라는 주장은 틀렸다.

업계에서는 아이들을 ‘정신질환자로 낙인찍는다’라고 비난한다.

그런 주장이야말로 아주 무섭고 무책임한 말이다. 정신질환자에 대해 스스로 낙인찍고 있다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다. 신체의 병이든 정신의 병이든 문제가 생기면 치료를 받는 게 맞다. 낙인이 실재한다면 정신건강의 문제에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 게 먼저 아닌가? 여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는 낙인찍어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좋게 생각할 수 없는 발언이다.

게임장애가 질병이 된다는 것은 문제를 의료기관에서만 해결해야 한다는 뜻인가?

무조건 병원을 찾을 필요는 없다. 보통은 지역 상담소에서 해소된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유병률 1% 정도로 가늠하는, 정말 심각한 사람들에게는 상담 서비스가 안 미친다. 이들 대다수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아동·청소년이다. 질병코드가 부여되면 가까운 병원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 게임은 경제·문화의 영역뿐만 아니라 보건의 영역에도 속하게 된다. 환경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산업을 어떻게 들여다볼 것인가, 질환에 취약한 계층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등이 수면 위에 떠오른다. 결국 ‘게임장애가 질병인가 아닌가’라는 학문적 의제는, ‘디지털 기술이 유발하는 건강 문제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책임질 것인가’라는 사회적 화두로 번질 것이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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