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원 선거구 획정이 전국에서 진통 끝에 마무리되었다. 핵심 쟁점은 한 선거구에서 ‘기초의원을 몇 명씩 뽑는 것이 좋은가’였다. 기초의원은 지역별로 한 명을 뽑는 국회의원이나 광역의원과 달리 2~4명이 선출된다. 2014년 지방선거까지는 2명씩 뽑는 선거구가 대다수였다.

학계·법조계·언론계 등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한 각 시도 선거구획정위원회(획정위)는 대체로 선거구당 선출 인원을 3명 내지 4명으로 늘리는 안을 만들었다. 거대 양당 중심의 지역 구도를 완화하고 다양한 정치 세력의 진출을 보장하려는 취지였다. 지금은 기초의원을 내부에서 감시하고 이의를 제기할 대안 세력이 없는 게 현실이다. 기초의원 선거구를 정하는 최종 권한은 각 시도의 광역의회에 있다. 획정위에서 안을 제출하면 광역의회에서 의결한다.

2인 선거구는 대체로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에 유리하다. 2014년 서울시 지방선거에서 2인 선거구 111개에서 모조리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과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후보가 각각 한 명씩 구의원으로 당선됐다. 자유한국당은 선거구 크기를 늘려 3~4명을 뽑으면 지역 대표성이 약해진다는 명분을 내건다. 지난해 12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4인 선거구를 확대하는 서울시 선거구 획정위 조정안을 “힘으로 막아라”라고 지시했다.

ⓒ연합뉴스3월20일 노동당·정의당·녹색당 당원들이 기초의원 4인 선거구 확대를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기초의원 선거구 재편과 관련해 언급을 자제했다. 당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자유한국당과 함께 지방의회를 양분하는 수도권과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호남에서는 2인 선거구를 원하는 반면, 지지세가 약한 영남의 시·도당에서는 3·4인 선거구 확대를 원한다. 3월19일 민주당 대구시당은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선거구 쪼개기 시도를 규탄했는데, 3월20일 서울시의회에서는 참석한 민주당 의원 전원이 4인 선거구를 없애는 수정안에 찬성했다.

3·4인 선거구라고 해서 소수 정당 후보가 반드시 당선되는 건 아니다. 같은 당에서 후보를 여러 명 낼 수 있어 3위, 4위를 모두 거대 정당 후보가 차지할 수도 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3인 선거구는 새정치민주연합 2명·새누리당 1명 혹은 새누리당 2명·새정치민주연합 1명이 당선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도 문턱이 낮아지는 건 사실이다. 소수 정당 의원이 1~2명 당선된다면 기초의회에 이질적인 감시자가 등장하는 효과가 있다. 서울시에서 유일한 소수 정당 출신 기초의원인 김희서 구로구의원(정의당)은 “일종의 메기 효과”라고 말했다. “구로구의회에 구의원 개인 사무실을 만들자는 안이 발의된 적이 있다. 의원 16명 중 나만 반대했다. 주민들에게 알리고 그 힘으로 막아냈다. 감시자 한 명만 있어도 확실히 달라진다.”

선거구를 키우는 획정위 안은 광역의회를 거치며 줄줄이 후퇴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기초의원 선거구는 2인 111개, 3인 48개, 4인 0개였다. 이번에 서울시 선거구획정위는 2인·3인·4인 선거구를 각각 91개·53개·7개로 시의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서울시의회는 4인 선거구를 모두 쪼개고 2인 선거구를 늘려 가결했다(위 〈표 1〉 참조). 대구시 선거구획정위도 2인 선거구를 줄이는 대신 4인 선거구를 신설하는 안을 마련했지만 대구시의회에서는 4인 선거구가 0개인 기존 선거구 구성으로 되돌아갔다. 서울시의회는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이 시의원 99명 중 90명이었다. 대구시의회는 자유한국당 의원이 27명 중 21명이다.

광주만 기초의원 3·4인 선거구가 많아진 이유

광주는 예외였다. 기존 광주시 기초의원 선거구는 2인·3인·4인 선거구가 각각 16개·9개·0개였다. 광주시 선거구획정위는 2인·3인·4인 선거구를 각각 2개·17개·1개로 변경해 시의회에 제출했고 광주시의회는 2인·3인·4인 선거구를 3개·15개·2개로 하는 안을 가결했다. 기존 선거구에서 2인 선거구를 13개 줄이고 3·4인 선거구를 큰 폭으로 늘렸다. 왜 광주만 가능했을까?

먼저 시의회 의석수 분포를 보자. 광주시의회 의원은 선거구 획정 조례가 통과된 3월19일 기준으로 민주당이 11명, 민주평화당 6명, 바른미래당 1명, 민중당 1명, 무소속이 2명이다(위 〈표 2〉 참조). 광주시의회의 민주평화당, 바른미래당 의원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될 당시 전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였다. 2016년에 국민의당이 창당하고 다시 민주평화당과 바른미래당으로 갈리면서 당적이 바뀌었다.

이론적으로는 제2당도 3·4인 선거구보다 2인 선거구를 선호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대부분 선거구에서 2위를 할 자신이 있다면, 2인 선거구가 2위 정당에도 분명히 이득이다. 서울시의회 제2당인 자유한국당이 이를 잘 보여줬다. 광주 지역 정계 인사에 따르면 민주당 광주시당은 4인 선거구 신설을 반대했고, 민주평화당 시의원들도 선거구 확대에 적극적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광주의 제2당 민주평화당은 결국 서울의 자유한국당과 다르게 움직였다. 2위를 확보한다는 보장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석 분포와 달리 지역 여론에서 민주평화당은 제2당이 아니다. 3월23일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 광주·전라도 지역 민주평화당 지지율은 1%이다. 민주당(77%)은 물론 바른미래당(6%) 정의당(4%)보다 낮다. 중앙당 차원의 조정도 작동했다. 민주평화당·바른미래당·민중당은 당론으로 3·4인 선거구 확대를 주장한다. 시·도당도 이를 무시하기 어렵다.

중요한 변수는 또 있다. 민주평화당이 정의당과 벌이는 큰 교섭 테이블이 있었다. 두 당은 공동으로 국회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협상을 진행 중인데, 정의당 광주시당은 이 테이블에 광주 기초의원 선거구 문제를 의제로 밀어넣었다. 선거구 확대가 무산되면 정의당 광주시당은 공동 교섭단체를 반대하겠다고 압박해 민주평화당 지도부와 시의회 의원들의 협조를 얻어냈다. 국회에 새롭게 등장한 다당제 구조가 지방의회 기초의원 선거구 협상을 가능하게 한 셈이다.

광주를 제외한 대다수 지역에서는 획정위 안이 사실상 무산되었다. 광역의회에서 의결하는 절차를 없애고 획정위 안 그대로 선거구를 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당리당략으로 얽힌 의회 대신 전문가 집단에게 결정권을 넘겨야 공정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반면 기초의회 선거구 획정권을 획정위에 주면 선출되지 않은 기관이 선출의 규칙을 정하게 돼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는 의견도 있다.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3월22일 원내대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기초의원 선거구를 국회에서 획정하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감시의 눈도 많고 합의제 원리도 더 강한 국회에서의 결정이 광역의회보다는 덜 위험하다는 취지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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