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2일 스리랑카 전 국방장관 고타바야 라자팍사가 약 4개월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부패 혐의를 받던 그는 출국한 뒤 미국과 스리랑카, 몰디브를 들락거렸다. 범죄 혐의자의 귀환은 화려했다. 귀국 이틀 전 2월10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그의 형이자 전 대통령인 마힌다 라자팍사가 이끄는 신생 정당 스리랑카인민전선(SLPP)이 압승했다. 340개 기초단체 의원 8350명을 선출하는 지방선거에서 SLPP는 의석 44.65%를 차지했다.

2015년 1월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라자팍사 형제는 이번 지방선거 승리로 재기에 성공했다. 스리랑카판 ‘적폐 세력’의 복귀에 이어 2월26일 동부 암파라, 3월 초 중부 캔디 지방에서 반(反)무슬림 폭동이 잇달아 일어났다. 스리랑카는 지금 비상사태에 빠져 있다.
 

ⓒAP Photo마힌다 라자팍사 전 스리랑카 대통령(가운데)이 이끄는 스리랑카인민전선(SLPP)이 2월10일 지방선거에서 압승했다.

2월22일 불교도인 트럭 운전사 쿠마라싱헤가 무슬림 주민들한테 구타를 당한 뒤 3월3일 사망했다. 쿠마라싱헤의 장례식이 치러진 3월4일 반무슬림 폭동이 일어났다. 시위를 주도한 불교 극단주의 조직과 인물의 면면을 보면 ‘계획적인 폭동’으로 보인다. 3월4일 폭동 가담 혐의로 체포된 81명 가운데 일부가 시위를 위해 집결했다. 체포된 아미트 위라싱헤는 최근 급격히 떠오른 불교 극단주의 조직인 마하센 발라카야의 대표다. 페이스북과 유튜브로 극단적인 반무슬림 발언을 일삼은 그는 이날 체포된 뒤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또 동부 중심 도시 바티칼로아에서 온 극단주의 승려 암피티예 수마나라타나는 3월6일 불교도 석방을 요구하며 경찰서 항의 방문을 맨 앞에서 이끌었다. 또 다른 극단주의자 댄 프리야사드는 지난해 9월 남부 마운트 라비나에 위치한 유엔 난민 피난처에서 로힝야 난민들을 협박하고 강제로 쫓아낸 무리와 함께 있었다. 보두발라세나(BBS·불교 수호 군대)의 대표 승려 갈라고다 아트테 그나나사라도 폭동 시작 직전 캔디 지방에 나타났다.

그나나사라는 2004년 2월 승려들이 창당한 극우 성향의 민족유산당(JHU) 소속이었다. JHU는 제도권 정당을 표방한 불교 극단주의 세력이다. 그해 그나나사라는 JHU 후보로 콜롬보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JHU는 물리적 폭력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지만 BBS는 달랐다. 2012년 7월 발족한 BBS는 반무슬림 선동을 일삼으며 폭력 행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국제위기그룹(International Crisis Group) 스리랑카 분석가인 앨런 키넌은 “라자팍사 정권은 BBS를 다양하게 지원해왔다”라고 말했다. 키넌은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라자팍사가 지방선거에 성공함으로써 폭동에 가담한 불교도들을 더 대담하게 만든 효과가 있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경찰의 늑장 대응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된다. 곧 반무슬림 폭도(불교도)들에게 더 호의적인 정치인이 정권을 잡을지 모른다고 계산했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키넌의 분석대로 경찰은 늑장 대응과 방관뿐 아니라 폭동의 피해자인 무슬림들을 구타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인권운동가 루키 페르난도가 온라인 미디어 〈그라운드뷰(Groundview)〉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폭동 지역에 배치된 경찰 특수부대는 무슬림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우리에게 화염병을 던진 것처럼 설정하자”라는 대화를 목격자 증언으로 전했다. 폭동 둘째 날인 3월5일 오후 5시 캔디 지방 암바가할란다에서 벌어진 일이다.

폭력 방관하고 피해자 구타하는 경찰
 

ⓒAFP PHOTO3월9일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 치안 유지를 위해 무장 군인이 배치돼 있다.

스리랑카에는 원래 불교도인 싱할라족이 75%, 힌두·기독교를 믿는 타밀족이 15%, 그리고 무슬림이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무슬림은 동북부에서 타밀족과 어울려 살았다. 그러다 1990년 10월 타밀 반군인 ‘타밀타이거(LTTE)’가 북부 지방 무슬림 7만여 명을 축출했다. 무슬림들이 정부군의 첩보원 노릇을 한다는 이유였다. 이 사태로 타밀족과 무슬림 사이에 골이 깊어졌다.

2009년 라자팍사 정권은 타밀족 반군과 벌인 25년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타밀족 대학살을 낳았다. 내전 승리로 싱할라족 민족주의와 불교 극단주의의 결합이 더 강해졌다. 2015년 대선에서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정부는 ‘소수 종족을 동등하게 대우하겠다’는 공약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타밀족과 무슬림 유권자들이 캐스팅보트 구실을 한 결과였다.

시리세나 정부는 집권 뒤 개혁에 지지부진했고 반무슬림 폭동을 일삼고 있는 불교 극단주의 세력 진압에도 실패했다. 국가비상사태 선포 다음 날인 3월7일 시리세나 대통령의 행보는 이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이날 캔디 지방을 방문해 BBS의 그나나사라를 비롯한 승려들을 만나 불교도의 불만 사항을 들었다. 반면 폭동의 직접 피해자인 무슬림은 한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ICG 분석가 앨런 키넌은 “이 상황은 라자팍사가 주도하는 야권 세력만 강화시킬 뿐이다”라고 평가했다.

고타바야 라자팍사 전 국방장관은 귀국한 뒤 종교 갈등을 더 부추기고 있다. 스리랑카 일간지 〈데일리 미러〉 3월12일자 보도에 따르면 그는 “헌법에만 불교의 우월적 지위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시리세나) 정부는 종교(불교), 문화, 주권 이 세 가지 가치를 잊은 것 같다. 내가 국방장관을 할 때는 불교 지도자들을 초대해 조언을 자주 들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형의 집권 기간(2005~2015년)에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한 공포정치의 장본인으로 악명이 높았다. 형인 마힌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은 지방선거 승리가 확정되자 기자회견에서 “현 정부는 민심을 잃었다”라며 국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스리랑카 정국이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기자명 방콕·이유경 (프리랜서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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