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해고자들은 사회적 재난의 피해자”
  • 전혜원 기자
  • 호수 549
  • 승인 2018.03.2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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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30일 쌍용자동차 회사 측은 해고자와 희망퇴직자 등을 2017년 상반기까지 채용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노조와 합의했다. 하지만 해고자 167명 중 겨우 37명만 복직했다.
10년을 기다린 전화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에서 일하다 정리해고된 김범철씨(43)는 3월13일 회사로부터 “모레 복직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해고 뒤 일용직으로 일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오던 차였다. 아내는 양복을 곱게 다려두었다.

이틀 뒤인 3월15일 오전 11시, 김씨는 면접장 대신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정문 앞에 섰다. 김씨만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면접 잘 보라”는 노모의 전화를 뒤로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우울증이 심한 아내의 미소를 떠올리며 이 자리에 섰다. 기자회견 내내 면접 참가를 권하는 카카오톡 알림 소리가 이들 휴대전화에 울렸다.

2015년 12월30일 쌍용자동차 회사 측과 재직자 노조(기업노조), 해고자 노조(금속노조 쌍용차지부) 3자는 해고자와 희망퇴직자 등이 2017년 상반기까지 조속히 채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이 3자 합의에 따라 지금까지 해고자 167명 중 37명(22%)이 복직했다. 하지만 2017년 상반기가 지난 이후에도 나머지 복직하지 못한 해고자들의 삶은 바뀌지 않았다.

ⓒ시사IN 이명익3월15일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본사 앞에서 해고자 복직 면접을 거부한 해고 노동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문제를 풀기 위해 53일간 대주주 마힌드라 그룹이 있는 인도에 다녀왔다. 그 뒤 지부와 회사의 실무교섭이 6차례 이어졌다. 해고자 복직 시기를 명기하는 문제로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김득중 지부장은 3월1일 단식에 돌입했다. 2012년 5일, 2013년 21일, 2015년 45일 단식에 이어 네 번째 단식이었다. 지부장 단식 13일째, 회사는 지부에 예고나 통보 없이 대상자들에게 직접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를 돌렸다.

복직하지 못한 130명 해고자 가운데 이번에 면접 전화를 받은 이들은 16명이다. 면접에 응하면 절반인 8명이 채용될 예정이었다. 이들은 전날인 3월14일 밤 2시간30분 동안 논의한 끝에 면접장에 가지 않기로 했다. ‘함께 살자’는 이유였다.

평택항만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쌍용차 해고자 김선동씨(50)는 “우리가 ‘함께 살자’고 10년 가까이 외쳤던 건 해고자들을 단 한 명도 잊지 않고, 놓치고 싶지 않은 심정에서다. 아직 130명의 복직 시기 문제가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16명이 남은 114명을 매장하고, 다시 그중 (뽑힌) 8명이 남은 8명을 매장하라는 것은 ‘의자놀이’를 또 하라는 소리다. 면접에 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회사는 “시장 상황이 유동적이라 (전체 해고자) 복직 시점은 명기하기 어렵다”라는 입장이다. 2015년 12월30일 ‘3자 합의서’에 적힌 인력 수요의 계기는 티볼리 롱바디와 Y400(G4 렉스턴) 양산,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이었다. 이 가운데 신차 생산 조건은 이미 지나갔고 주간 연속 2교대제가 4월2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번에 회사 계획대로 8명이 복직하면 남게 될 122명은 언제 복직이 될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쌍용차 복직 면접만 네 번 봤다는 해고자 이현준씨(49)는 “매번 한 줌의 희망은 더 큰 절망으로 돌아왔다. 딸들이 고2, 고3인데 이번엔 면접 본다는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그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공사장 작업복을 챙겨 입고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시사IN 조남진3월1일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이 2012년, 2013년, 2015년에 이어 네 번째 단식에 돌입했다.
“한 줌의 희망은 더 큰 절망으로 돌아왔다”


해고된 이들이 싸움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2005년 1월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를 인수하기 전부터 기술 유출과 이른바 ‘먹튀’가 우려되었으나 매각이 진행되었다. 약속했던 투자는 이뤄지지 않았다. 2009년 1월 상하이차는 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쌍용차에서 손을 뗐고, 그해 4월 쌍용차는 구조조정 인원을 2646명으로 발표했다. 재직 노동자 37%가 넘는 숫자였다. 1666명이 희망퇴직 등으로 퇴사했고 나머지 980명은 정리해고됐다(이후 노동조합의 파업과 노사 대타협을 거치면서 정리해고 인원은 165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애초 구조조정 인원을 산출한 근거가 된 회계자료가 유형자산 손상차손을 과다하게 계상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2012년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정리해고가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1심과 달리 2014년 서울고등법원은 유형자산 손상차손 과다 계상을 인정하며, 쌍용차 정리해고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갖추지 못했다고 했다. 또 쌍용차가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조건을 어겼다고 판단했다. 해고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항소심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인원 감축 규모가 비합리적이지 않고 쌍용차가 해고 회피 노력을 다했다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판결 뒤 사실상 지렛대를 잃은 해고자 김정욱·이창근씨가 쌍용차 공장 내 70m 굴뚝에 올라 고공 농성을 벌인 끝에 대화가 시작되었다. 2015년 12월30일 합의는 이렇게 대법원이 정리해고 무효라는 희망을 꺾은 뒤 이뤄졌다.

2009년 노동조합은 일자리 나누기 등 해고 회피 방안을 회사에 제시했으나 회사는 2646명 구조조정 인원을 협의 없이 일방 통보했다. 벼랑에 몰린 노동자들이 77일간 ‘옥쇄 파업’을 벌이자 이명박 정부는 대테러 전략에 투입하는 경찰 특공대를 투입했다. 회사와 경찰은 노조에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경찰이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되어 있는데, 지연이자를 합해 17억원에 이른다. 최근 경찰은 당시 쌍용차 과잉 진압에 대한 진상조사에 들어갔지만, 소송이 취하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쌍용차 회사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취하했다).

2009년 이후 해고자와 희망퇴직자, 그 가족 등 29명이 자살과 질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은 이러한 ‘응어리’와 무관하지 않다. 해고 안전망에 대한 투자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미비한 한국 사회에서 해고 뒤의 삶은 곧 낭떠러지였다. 현재 쌍용차 2차 하청업체에서 일하며 이번에 면접 전화를 받지 못한 채 복직을 기다리는 해고자 김갑수씨(48)는 “재취업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지만 희망을 가지고 새로 시작하기엔 충분하지 않다. 이력서에 쌍용차가 들어가면 일단 거부당했던 경험도 두세 차례 있다. 해고는 살인이란 말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 변론을 맡았던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쌍용차는 회사의 기술 유출, 회계조작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게 없다 보니 해고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재난’의 피해자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제 정년을 바라보는 해고자도 적지 않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회사가 다시 대화 테이블에 마주앉은 3월16일 현재 김득중 지부장은 130명의 복직을 위해 16일째 단식 중이다(이날 회사는 일방적 면접 통보에 유감을 표하며 3월17일 별도 면접 실시를 제안했고, 지부는 면접을 보되 남은 해고자 복직을 계속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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