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 평양에서 성조기가 휘날릴 수 있을까? 뜬금없는 질문이 아니다. 북·미 정상회담에 응한 지 닷새 만에 국무장관을 강경파인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갈아치운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은 미국 연락사무소의 평양 진출을 은밀하게 추진해왔다는 증언이 나왔다. 폼페이오 국장이 이끈 CIA가 국정원과 함께 대북 접촉 창구 구실을 해왔던 만큼 북·미 간 연락사무소 설치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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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주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국제관계학부 석좌교수(국제코리아재단 상임의장)는 “북·미 외교 채널 가동에 관여하는 고위 관계자로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표면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강력하게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연락사무소 설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증언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 2월 중순 뉴욕을 방문해 북·미 외교 채널 가동에 관여하고 있는 고위 관계자와 만났다. 이 관계자는 “현재 워싱턴과 평양 사이에 연락사무소 교환 설치를 위해 채널이 가동 중이다. 북·미 관계는 지금 표면에 드러난 것이나 알고 있는 정도와 달리 상당히 깊숙이 (대화가) 오가고 있다. 잘하면 금년 안에 연락사무소가 들어갈 것이다”라고 이 교수에게 귀띔했다. 이 교수는 매년 세계 주요 도시를 돌며 한반도 관련 국제 세미나를 개최하는데 오는 10월 평양에서 세미나를 열기 위해 이 고위 관계자를 만났다. 이 교수가 이런 증언을 들었을 때는 북·미 간에 냉기류만 흐를 때였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던 펜스 부통령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나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모습이었을 뿐 이면에서는 북·미 간에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 교수에 따르면 2월10일로 예정되었던 펜스-김여정 면담이 무산된 뒤 오히려 북·미 간 접촉이 뉴욕을 중심으로 본격 진행되기 시작했다. 북·미 접촉의 중심에 워싱턴과 평양에 상호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자는 의제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트럼프는 북한과 관련해 역대 정권이 하지 못한 일을 자신이 반드시 이루겠다는 목표가 강하다. 현 시점에서 그 목표는 바로 평양에 미국 연락사무소를 세우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왜 ‘비핵화’가 아니고 ‘연락사무소’일까? 지난해 트럼프 정부 출범 이래 북한 비핵화는 대북정책에 관여하는 미국 고위 관료들의 지상 과제였다.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북·미 접촉이라는 말도 꺼내지 말라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비핵화가 간단히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전격 발표된 뒤 대북 업무에 종사했던 미국의 전직 관료 및 전문가들은 언론 기고나 인터뷰를 통해 “북한 비핵화는 당장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목표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입을 모아 주장했다. 예를 들어 제임스 도빈스 전 국무부 차관보는 의회 전문지 〈더힐〉 기고문에서 “검증 가능한 비핵화는 미국의 협상대표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달성 불가능한 목표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김정은이 아무리 비핵화에 동의한다고 해도 그 합의가 완전히 검증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그가 든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규모와 장소, 그리고 무기급 핵분열 물질의 보유량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설령 북한이 아무리 많은 무기를 포기했다고 해도 얼마만큼 무기가 남았는지 알 방법이 없다.” 도빈스 전 국무부 차관보의 이 같은 지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국 특사단에게 비핵화 용의를 밝힌 뒤에 나온 것이다.
 

ⓒAP Photo2000년 조명록 당시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과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의 회담 모습.

그렇다면 목표를 현실화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미국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의 개발을 중단하고 가동 중인 핵시설을 폐쇄하는 동결 조치를 의미한다. 북한이 이런 조치만 내려도 당장 미국 본토가 안전해지고 실험 중단이나 핵시설 폐쇄만으로도 북한의 핵 능력 증강 속도를 늦출 수 있다. 또 북한이 더 이상 핵보유국 주장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핵확산금지조약(NPT)의 근간을 유지할 수 있다. 최근 미국 내에서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제기된 논의의 상당 부분은 바로 도빈스 전 국무부 차관보가 제기한 내용과 비슷하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의 실패한 협상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거듭해왔다. 그가 말한 과거의 실패한 협상이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았다. 다만 그가 북한 비핵화를 역대 어느 정부보다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여졌을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그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일까? 그 부분이 바로 최근에야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그가 추진하려는 방식 역시 당장 비핵화를 이루겠다는 게 아니다. 먼저 북한 핵을 동결하고 평양에 연락사무소 설치를 시작으로 외교 관계를 체결한 뒤 이를 발판으로 비핵화를 추구해간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그동안 북한 비핵화를 말로만 떠들어왔지 무엇을 근거로 추진할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다. 즉, 추진 주체가 불분명했다. 미국이 언제까지나 중국이나 유엔에 의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연락사무소를 먼저 (북한에) 진출시키고 비핵화를 추진해 미국이 한반도 문제의 이니셔티브를 확실하게 쥐겠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다”라고 이창주 교수는 설명했다. 이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국을 반전시킬 ‘최대 카드’로 이 문제(연락사무소 설치)에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북한 문제는 잘못 건드렸다가 성과가 없으면 국내 정치적으로 치명타이다. 연락사무소를 먼저 하고 비핵화는 장기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 측은 연락사무소 설치 논의가 한창이었던 2000년 사례를 집중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10월 조명록 당시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과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은 워싱턴과 평양을 교차 방문했다. 올브라이트 장관의 평양 방문은 1994년 제네바 합의문에서 연락사무소 얘기가 처음 제기된 이래 우여곡절을 겪은 이 문제를 매듭짓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1994년 제네바 합의문에는 ‘북한의 흑연감속 원자로와 관련 시설을 동결하고 궁극적으로 해체하는 대가로 미국은 경수로 원자로를 제공하며 북·미 양국 정치경제적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를 추구한다’고 되어 있다. 쌍방의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 문제는 통신 및 금융거래, 무역 및 투자 제한 완화 뒤에 이을 조치로 거론됐다.

평양 연락사무소 설치 변수는 미국 의회

이 합의는 2000년 당시 조명록-올브라이트가 합의한 북·미 공동 코뮤니케에서도 재확인된다. 공동 코뮤니케에는 “1994년 10월21일부 기본합의문에 재확인된 원칙들에 기초하여 불신을 해소하고 상호 신뢰를 이룩하며 주요 관심사들을 건설적으로 다루어나갈 수 있는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기로 합의하였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상호 관심사에 대한 진전이 이루어질 경우 양국 관계를 대사급으로까지 격상해나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하면서 이런 로드맵이 수포로 돌아갔다.

트럼프의 대북정책은 ‘최대의 압박과 최대의 관여’로 상징된다. 그동안 강력한 군사적 압박과 경제제재를 축으로 ‘최대의 압박’ 정책만 주로 부각됐다. 반면 ‘최대의 관여’는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북·미 외교 채널이 본격 가동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내용은 대북 특사단의 백악관 방문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의 설명을 듣고 45분 만에 북·미 정상회담을 결정한 것처럼 알려졌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미 북·미 간 뉴욕 채널이 복원되어 그쪽으로부터도 관련 정보를 전달받았고, 정의용-맥매스터 채널로도 사전에 북측의 메시지가 전달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숙고할 시간이 충분했다는 것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 연락사무소를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는 우리 측이 이를 권유하는 과정에서 알려졌다고 한다. 우리 측이 북한 비핵화가 당장은 어려우니 연락사무소부터 설치하는 게 어떤가라고 제안하며, 한국은 4월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평양 연락사무소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하자 미국 역시 오래전부터 그런 계획을 가져왔다고 밝혔다고 한다.

트럼프 정부가 연락사무소 설치를 두고 북한과 합의를 해도 실제로 설치될지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한다. 바로 의회 변수 때문이다. 1994년 제네바 합의도 그 이듬해 의회의 반대로 사문화되다시피 했다. 지난 북·미 관계가 증명하듯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변수로 인해 연락사무소 설치 논의가 벽에 부딪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성과가 확실할 때까지는 대북 압박과 제재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밀어붙일 가능성도 높다. 1994년 10월의 제네바 합의도 그보다 앞선 6월 북폭 위기의 산물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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