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 선언으로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언론과 경제학자들이 다른 나라의 보복 조치에 따른 무역전쟁 위험을 경고하자 그는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다. 승리는 ‘누워서 떡 먹기’다(Trade wars are good, and easy to win).”
무역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관련 국가들이 피해를 본다. 국가마다 경쟁적으로 관세를 올리는 과정에서 모두가 가난해진다. 역사적으로 증명된 명백한 사실이다. 문제는 ‘누가 피해를 덜 보느냐’인데, 그 행운의 나라가 미국이라는 보장은 없다. 물론 고율 관세로 수입 철강의 가격이 폭등하면, 미국 내 철강기업들의 매출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해당 부문 고용도 늘어날 수 있다. 다만 그 효과가 얼마나 크고 오래 지속될지는 절대다수 전문가들이 회의적 의견을 표명한다.
우선, 미국 철강 산업은 이미 많은 노동자가 필요하지 않다. 경제 전문지 〈블룸버그〉(3월3일자)가 미국 노동청 통계로 추정한 바에 따르면, 미국 철강 산업에 고용된 노동자는 지난해 10월 기준 14만1000여 명이다. 다만 이 가운데 5만7000여 명이 일하는 공장은 직접적으로 철강을 생산하지 않는다. 다른 기업이 생산한 철강을 매입한 뒤 다른 제품으로 가공하는 사업체다. 결국 ‘트럼프 관세’로 이익을 얻는, ‘철강 직접 생산’ 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는 약 8만4000명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30년 동안 철강 부문의 미국 노동자 수는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2002년 3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수입 철강에 최대 30% 관세를 부과하는 극약처방으로 이 부문의 고용 실적을 높이려 시도했다. 그러나 당시 10만7000여 명이던 철강 산업 노동자는 이후에도 계속 줄어들어, 부시 대통령이 관세 부과 명령을 철회한 2003년 12월에는 9만7000여 명으로까지 떨어졌다. 철강 산업 고용 하락은, 수입 철강 탓이라기보다 철강 생산이 더욱 효율화·자동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블룸버그〉는 풀이한다.
더 큰 문제는, 철강을 중간재로 사용하는 다른 산업의 고용 실적이 훨씬 더 큰 규모로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수입관세로 철강 가격이 오르면, 철강을 중간재로 사용하는 미국산 자동차·기계·건설·가전·에너지 부문 생산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기업 재무 상태가 악화되면서 국제경쟁력이 추락한다. 증가한 비용 중 일부를 소비자들에게 전가하면 가격 인상으로 매출이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철강과 알루미늄 산업 외의 일자리가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 미국 노동청 산업별 고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조립 금속 제품 부문은 140만명, 기계류는 110만명, 자동차 및 부품 산업은 95만명이다. 철강 산업 8만4000여 명(알루미늄 산업은 5만9000여 명)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3월6일자에 “(트럼프 관세가 시행되면) 해당 산업들에서는 일자리 3만3000개가 늘어나지만 그 외 산업의 고용은 17만9000여 개 줄어든다”라는 내용의 컨설팅 업체(트레이드 파트너십)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했다.
EU는 공화당 지역 수출품에 보복관세
이는 다른 국가의 무역 보복을 감안하지 않은 수치다. 해외 업체의 미국 투자가 저해될 수도 있다. 미국 지역신문인 〈샬럿 옵서버〉 3월2일자에 따르면, 스웨덴 가전 업체 일렉트로룩스는 2억5000만 달러를 투자해 테네시 주의 생산시설을 확장하려던 당초 계획을 보류했다. 주요 중간재인 철강 가격이 오를 경우, 굳이 미국에서 생산할 필요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보복 조치를 감안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국제무역 질서를 관장하는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따르면, 미국 같은 선진국은 제멋대로 관세를 올리거나 신설할 수 없다. 이번 조치는 오직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면 특정 수입 제품을 골라 무역 제재를 할 수 있다’라는 내용의 미국 국내법에 기반한 것이다. 수입 철강으로 미국 철강 산업이 몰락하면 가장 중요한 기간재인 철강을 생산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논리다. 다른 나라들은 미국 ‘국내 논리’가 국제무역 규범을 위배하고 있다고 WTO에 호소할 수 있다.
그러나 WTO가 결정을 내리는 데는 적어도 수십 개월이 걸린다. 미국이 패소해도 트럼프 행정부가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굳이 WTO에 제소하는 복잡한 방법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 각자 나름의 논리를 만들어 미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쪽이 편하고 화끈하다. EU가 가장 먼저 구체적인 보복 안을 내놓았다. EU는 이미 모터사이클, 버번위스키, 청바지 등 일부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천명했다.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의 주요 제품을 겨냥했다. 트럼프 관세가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있는 만큼 적절한 보복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 모터사이클 브랜드 할리데이비슨은 폴 라이언 하원의장(공화당)의 지역구인 위스콘신 주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 버번위스키 산지인 켄터키 주에서 선출된 미치 매코널 의원은 상원 공화당 원내총무다. 폴 라이언 의원이 다른 공화당 소속 의원들과 기자회견을 열면서까지 트럼프 관세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트럼프의 관세 부과 명령은 대통령이 서명하고 15일이 경과한 뒤 효력이 발생한다. EU가 보복관세를 강행하고, 미국이 다시 이에 대응하면 글로벌 무역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보호주의 정책을 주도해온 ‘무역 매파(trade hawk)’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무역전쟁과 관련된 여러 우려들을 “엄살(over-reacting)”로 매도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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