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가을 대통령선거 유세가 한창일 때, 공화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는 “장벽을 세우겠다!”는 말을 연설마다 추임새처럼 넣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거대하고 아름다우면서도 강력한 장벽을”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설치해서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겠다고 공언했다. 지지자들은 그때마다 환호했다. 이민자들의 나라이자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인 ‘멜팅폿’이라는 미국 교과서의 설명이 무색할 만큼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민자들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결국 트럼프가 당선했다. 당장 “거대하고 아름다우면서도 강력한 장벽”을 건설하는 데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건설 예산 문제, 환경영향평가를 생략하려는 행정부에 대한 사법부의 견제, 민주당의 거센 반대로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은 세워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가 반이민자 정책 속도를 늦춘 것은 아니다. 트럼프 취임 첫해 가장 많이 쏟아진 속보는 행정부가 내놓은 이민자 정책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국민 대다수가 무슬림인 7개 나라 국적자들의 미국 입국을 90일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시리아 난민의 미국 입국도 무기한 연기시켰다. 지난해 9월에는 부모를 따라 어릴 때 불법으로 입국한 80만명에 이르는 소위 ‘드리머(Dreamer)’들에게 미국 내에서 법적인 보호를 허용한 다카(DACA·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 프로그램)를 폐기했다. 기억조차 희미하던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와 미국인으로 자라던 청년들이 부모의 나라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AP Photo2017년 10월 미국 맨해튼 트럼프타워 앞에서 이민자 권익 옹호 단체 회원들이 다카(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 프로그램) 폐지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민자와 이민 관련 이슈는 미국 정치의 핵심이다. 불법 이민자를 법적으로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민자가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정도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과연 이민자들이 미국인 일자리를 빼앗아가는가 아니면 오히려 성장동력이 되는가, 이민자가 증가하면 종교와 문화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등은 하루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미국 언론의 단골 소재이자 열띤 토론 주제다.

미국뿐만 아니다. 유럽에서도 난민과 이민자를 둘러싼 견해 차이는 기존 정치 체계에 균열을 일으키며 갈등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학계에서도 이민을 둘러싼 다양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누가 이민을 지지하고 누가 반대하는지, 어떤 이민정책이 경제적으로 효율적인지, 이민자의 정치적 성향과 이민자 증가가 각 정당의 선거 전략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등 연구 주제는 다양하다.

이민자 증가가 선거 전략에 미치는 영향

미국에서 이민자 문제가 정치의 핵심적 갈등으로 떠오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 역사를 살펴보면 과거에도 이민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다양하게 불거졌다.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이민은 1880년대 시작되어 1920년대 중반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그러다 1920년대 미국 내에서 경제 불평등의 심화, 자국민 우선주의, 인종차별주의가 증가하면서 미국 의회는 남유럽과 동유럽 이민자 수를 줄이기 위해 나라별 쿼터를 지정해 이민자를 받았다. 외국인이 미국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던 비율은 1910년대 14.7%에 달하다가 1970년대가 되면 4.7%까지 떨어졌다(아래 〈표 1〉 참조).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이민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1960년대부터는 아시아와 남미 출신 이민자 수가 유럽 이민자 수보다 더 많이 늘었다. 미국으로 오는 이민자 구성이 바뀐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1965년 제정된 ‘이민과 국적법(Immigration and Nationality Act of 1965)’이다. 이 법안으로 1921년에 도입한 출신 국가별 쿼터가 없어졌다. 대신 미국에 가족이 있는 경우 이민 우선권을 주는 방식으로 이민정책이 변했다. 동시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이민자를 제한하고 서유럽 이민자들에게 우선권을 주던 관행도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1910년 전체 이민자 중 2%에 불과하던 아시아 이민자의 비중이 2009년에는 28%로 늘었다. 중남미 국가들로부터 이민자 수는 같은 시기 더 큰 증가 폭을 보였다.

미국 내에서도 이민자들의 정착과 관련해 지역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2014년 기준 캘리포니아 주는 전체 인구의 27.1%가 이민자이지만, 웨스트버지니아 주 주민 가운데 이민자는 1.4%에 불과하다. 실리콘밸리나 보스턴, 피츠버그와 같은 지역에는 고학력 이민자들이 모인다. 텍사스나 애리조나 주와 같은 지역에는 교육 수준이 낮은 이민자들이 모여들고 있어서 지역별로 이민자들의 사회 경제적 차이도 두드러진다.

이민자에 대한 민주당과 공화당의 태도는 2000년대 초반까지 거의 비슷했다. 양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큰 차이가 없었다. 1994~2016년 ‘이민자가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각 당 지지자들이 얼마나 지지하는지 조사한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큰 차이를 보이기 시작한다(위 〈표 2〉 참조). 2001년 9·11 테러를 거치면서 이민자에 대한 공화당 지지자들의 지지는 소폭 하락한 뒤 비슷한 추세를 이어왔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경우는 2010년 이후 이민자에 대한 지지가 전폭적으로 증가했다.

아시아계 미국인인 아시안 아메리칸들의 투표 행태를 보면 이민정책을 둘러싸고 왜 양당의 태도가 큰 차이를 보이는지 알 수 있다. 현재 미국에서 아시안 아메리칸은 가장 빠른 인구 성장세를 보이는 그룹이다. 가장 최근의 미국 인구통계조사에 따르면 2010년 미국에 들어온 이민자 가운데 아시아계는 36%로 31%를 기록한 히스패닉보다 많다. 현재 미국에서 아시아계는 전체 인구의 5%를 차지하는데, 2050년이 되면 그 비율이 8%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캘리포니아 주는 유권자의 12%가 아시아계다. 상대적으로 고학력과 고소득, 종교와 가족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아시아계 이민자 혹은 아시안 아메리칸의 특성은 공화당 지지자들의 특성과 많은 부분 겹친다. 그래서 아시아계의 공화당 지지는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실제로 1992년 대선에서 아시안 아메리칸 유권자의 55%는 공화당을 지지했다(아래 〈표 3〉 참조). 20년 뒤 아시안 아메리칸 유권자들은 공화당보다 민주당을 더 지지한다. 2016년 대선에서는 아시안 아메리칸 유권자의 75%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알렉산더 쿠오 교수와 공저자들은 최근 아시안 아메리칸들의 이러한 투표 행태 변화 원인을 ‘사회적 배제와 정치적 정체성-아시안 아메리칸들의 정파성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밝혔다(〈Social Exclusion and Political Identity: The Case of Asian American Partisanship〉). 저자들은 논문에서 ‘공화당 정치인들이 이민자를 배척하는 정책을 지지하고 백인과 소수 인종에 대한 차이를 부각시켜 아시안 아메리칸 유권자들이 미국 사회에서 자신들이 배제당하고 있다고 느끼면서 투표 행태가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고학력·고소득과 같은 사회 경제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아시안 아메리칸 유권자들이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지지를 옮겨 가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 이후 이민 문제를 둘러싼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의 정책 기조 차이는 유권자들에게 더 뚜렷이 부각되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일부 공화당 당원들이 미국 내 일자리 문제와 이민자의 유입을 연관 지으면서 트럼프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이민자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반(反)이민 정서가 퍼졌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제조업 분야 종사자들은 교육 수준이 낮은 이민자가 유입되면서 자신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더 커졌고 범죄도 늘었다고 믿고 있다.

소수자 배제 정책은 갈수록 공화당에 불리

데이터는 다른 ‘증언’을 한다. 미국 내 범죄율은 지난 30년 중 가장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또 최근 브루킹스 연구소의 보고서를 보면 미국에 온 이민자 가운데 대학을 졸업하거나 대학원 학위를 지닌 고학력 이민자의 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저학력 이민자의 수보다 더 많다.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주요 원인은 이민자가 아니라 생산 공장을 인건비가 싼 해외로 이전하는 기업과 생산공정 자동화 때문이라는 논문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런 연구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와 공화당 정치인들은 반이민 정책을 굽히지 않는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공화당 정치인들의 근거가 약한 주장을 그대로 믿는다. ‘표’가 되다 보니 공화당은 반이민 정책을 거두지 않는다.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공화당이 반이민 정책을 얼마나 고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2010년 백인은 미국 전체 인구의 65%, 히스패닉은 16%, 그리고 아시아계는 5%를 차지했다. 2050년이 되면 백인의 비율은 46%로 줄어든다. 대신 히스패닉의 비율은 30%, 아시안은 8%에 이르게 된다. 백인의 비율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백인과 백인이 아닌 인종 사이 갈등을 부각시키거나 소수자를 배제하는 정책은 정치적으로도 공화당에 불리할 것이라고 데이터는 보여준다. 최근 공화당 의원들이 이민 관련 미국 법 개정에 적극 참여하는 것도 이러한 위기감과 무관하지 않다.

많은 미국인들은 고학력 전문직 이민자를 선호한다. 하지만 이들을 얼마만큼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민주당의 경우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인 진보적 백인 유권자와 히스패닉 유권자들을 고려할 때, 공화당이 지지하는 고소득·고학력 이민자를 우선으로 하는 이민정책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이렇게 이민자를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받아들일지 미국 사회가 합의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캐나다나 오스트레일리아처럼 교육 수준이나 기술이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새로운 핵심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반면 가족 간 재결합이 개인의 경제적 활동과 동기 부여에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므로, 가족의 미국 정착 여부를 바탕으로 한 기존 이민정책을 고수해야 한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올해 11월 중간선거, 그리고 2020년 미국 대선에서 이민자 문제는 더욱 주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기자명 유혜영 (뉴욕 대학 교수·정치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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