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목소리로 민주주의 새로 쓴다
  • 장일호 기자
  • 호수 548
  • 승인 2018.03.2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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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언어’를 가지고 나타났다. 그들은 미투 선언 “나도 말한다”를 통해 고통의 원인이 자신이 아니라 사회에 있다는 깨달음과 치유의 순간을 만났다.
‘숭한 짓’의 정체에 대해 이제는 할머니도 말하기 시작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설 연휴 고향에 다녀온 한 회원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 회원의 고향 마을 한의사는 치료를 이유로 여성 노인들을 지속적으로 성추행했다. 할머니들은 쉬쉬해왔던 서로의 불쾌했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이게 그 미투인가 보다”라고 이야기했다. 할머니들의 여든다섯 삶에 처음으로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언어’가 생겼다.

정치·사회·문화 분야를 막론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연일 미투 선언이 이어졌다. 선언은 이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만들었다. ‘미투’는 “나도 당했다”라는 고발의 성격보다 “나도 말한다”라는, 공론장을 만드는 움직임으로 번역해야 옳다. 여전히 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매우 협소하고 척박한 한국에서 사회적 낙인과 2차 피해를 무릅쓰고 뚫고 나온 목소리는 공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시사IN 신선영미투 운동을 상징하는 하얀 장미꽃.
불과 23년 전인 1995년까지만 해도 형법 제32장은 성폭력을 ‘정조에 관한 죄’로 규정했다. 성폭력이 여성 개인의 존엄이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기보다, 그 여성에 대한 남성의 독점권을 위반한 범죄로 간주한 것이다. 이는 이후 ‘강간과 추행에 관한 죄’로 바뀌었지만, 사회는 여전히 성폭력을 정조와 순결의 관점으로 바라봤다. 1997년 9월10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가 대표적이다. MBC는 택시 기사한테 성폭행을 당한 19세 여성 자살 사건을 보도하며 이렇게 마무리한다. “수치스러운 삶 대신 죽음을 택한 이양의 선택은 정조 관념이 희박해진 요즘 세태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고, 1993년 제기된 서울대 교수 성희롱 사건이 5년이라는 지난한 법정투쟁 끝에 1998년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듬해 남녀차별금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에 성희롱 규정이 처음 마련됐다. 법에 여성의 경험과 관점이 반영되기 시작한 이 같은 흐름을 농담쯤으로 치부하고 싶어 하는 ‘백래시(backlash·반격)’ 역시 존재했다. “성희롱하려면 3000만원 있어야 한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는 서울대 교수 성희롱 사건 재판 1심에서 3000만원의 손해배상 선고가 난 것을 비꼬는 말이었다.

ⓒ시사IN 이명익3월8일 서울 명동에서 여성단체 회원들이 미투 운동 지지와 성폭력 근절을 요구하며 행진을 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가 마주한 16가지 질문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 전 반(反)성폭력 운동은 대개 성폭력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지고 무력해진 피해자에 대한 사회의 동정심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의 강고한 분위기도 이를 거들었다. 논문 <성폭력 피해의 특성에 따른 피해자의 성폭력 통념 경험>(김보화·추지현·이미경, 2017)에 따르면 사회에 통용되는 성폭력 통념은 크게 16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피해자 낙인(몸이 더럽혀졌다,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다, 수치심과 자책감에 시달릴 것이다, 인생 망친 것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연애나 결혼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피해자 비난(네가 끝까지 저항했다면 성폭력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성폭력은 네가 유혹하거나 유발한 면이 있다, 네가 남자에게 만만해 보였기 때문에 그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평소 성관계가 난잡하거나 문제가 있는 여자이다) △피해 사소화(남자가 성욕을 통제하지 못해 실수한 것이다, 과도하게 예민해서 피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려봐야 이로울 게 없다, 성폭력 피해를 공개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피해 의심(너도 즐겼을 수 있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오해했을 수 있다, 보복이나 이익을 얻기 위해 거짓으로 신고하기도 한다)이 바로 그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는 적어도 이 16가지 질문 앞에 한 번씩은 마주선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성폭행 피해자인 응답자 235명은 이 16가지 성폭력 통념 중 평균 5.41개를 경험했다. 주로 ‘피해 사소화’에 집중돼 있었다. 성폭력 피해가 아는 사이에서 발생했을 경우로 좁혀보면 피해 자체를 부정하려는 ‘피해 의심’이 더 많이 작동했다. 흔히 성폭력은 낯선 사람이 저지르는 범죄로 인식돼 있지만, 2016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에 따르면 1353건의 상담 사례 중 아는 사람에 의한 피해가 87.1%(1178건)이었고, 모르는 사람에 의한 피해는 7.5%(101건)에 그쳤다.

ⓒ시사IN 신선영2016년 5월19일 ‘여성혐오 살인 사건’ 추모 포스트잇이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를 빼곡하게 감쌌다.
안희정·안태근을 비롯해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미투 운동 역시 아는 사이에서 저질러진 성폭력을 폭로했다. 성폭력에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면식’ 범죄는 피해 경험을 드러내기 더 어렵게 만든다. 특히 피해자가 성인일 경우 “평등한 관계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 작동한다. 이 대목에서 ‘저항했는가’는 사건을 판단하는 주요 잣대가 된다. 2010년 기준으로 성폭력 사건 기소율은 50%를 밑돈다. 성폭력의 법적 판단 기준이 ‘최협의 폭행’, 즉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곤란할 정도의 폭행이 있었는지 여부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어렵게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해도 기소까지 가는 일이 쉽지 않은 셈이다. 이 모든 지뢰밭을 통과해 소송을 진행할 경우 가해자 측에서 걸어오는 무고와 명예훼손 소송은 ‘숙명’이 된다(28~30쪽 기사 참조).

1938년 영국에서 공연된 연극 <가스등(Gas Light)>에서는 남편이 아내의 유산을 가로채기 위해 전등을 일부러 낮추는 장면이 나온다. 아내가 집 안이 너무 어둡다고 말하면 ‘그렇지 않다’라고 반복적으로 말해 아내를 탓함으로써 아내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남편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다. 여기서 유래한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는 용어는 권력과 위계가 작동하는 성폭력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피해자들은 피해를 당하고도 끊임없이 자신을 검열한다.

ⓒ시사IN 조남진2016년 겨울에서 이듬해 봄으로 이어진 ‘촛불 광장’에서 여성혐오 발언을 한 사회자는 사과했다. 위는 2016년 12월10일 광주 금남로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
“나도 말한다”라는 선언은 이 모든 조건과 상황을 뛰어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뤄진다. 침묵은 ‘말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깨졌다. 대중이 서지현 검사를 시발점으로 인식하고 있는 미투 운동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사건’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여자들은 모두 어디에서 왔을까.

2015년 칼럼니스트 김태훈이 쓴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제목의 칼럼이 패션 잡지 <그라치아>에 게재됐다. 페미니즘을 장애에 빗댄 이 칼럼은 당장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온라인상 해시태그 운동으로 이어졌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에서 “내가 페미니스트다”라는 선언으로 넘어가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자칫 ‘화장실 변사체녀’ 사건이 될 뻔했다. 사건은 여성들이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 찾아가 포스트잇을 붙임으로써 의미를 획득했다. 이 공동의 경험은 ‘#살아남았다’로, 다시 그해 10월 ‘#○○_내_성폭력’으로 이어졌다.

이 ‘말하기’가 축적되는 과정에서 익명의 개인들은 동일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타인들을 만났다. 사적인 경험은 ‘다른 주제’로 점차 확장됐고, 이 토대 위에서 여성들의 자기 서사는 저항 담론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 경험을 맥락화하는 과정을 통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게 되었다. 가해자의 이름을 가리면 구분하기조차 어려운, 판에 박힌 듯한 크고 작은 성폭력 피해 사례를 통해 여성들은 고통의 원인이 자신이 아니라 사회에 있다는 깨달음과 치유의 순간을 만났다. 이 과정을 통해 연대할 수 있는 타인의 존재를 발견한 건 큰 수확이었다(<SNS 해시태그를 통해 본 여성들의 저항 실천> 김효인, 2017).

그해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진 광장의 촛불은 여성들의 것이기도 했다. 광장은 여성과 여성 정치인, 여성 대통령으로 환원된 혐오의 언어들이 뒤섞인 페미니스트 정치의 각축장으로 기능했다. 집회에서 여성혐오 발언을 한 사회자가 사과하고, 여성혐오 가사를 담은 노래로는 무대에 설 수 없었다. 촛불은, 탄핵이라는 ‘해일’이 밀려오는데 여성혐오라는 ‘조개’를 줍고 있던, 논란을 만들어낸 여성들의 목소리 덕분에 비로소 민주적일 수 있었다.

ⓒ시사IN 이명익3월9일 성폭행 혐의를 받고 서울서부지검에 자진 출석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운데).
“어린 여자아이는 강력한 여성으로 돌아온다”


일련의 과정은 여성들이 스스로를 더 이상 ‘예비 피해자’ 자리에 놓는 것을 거부하게 만들었다. 기존 성폭력 불안에 대처하는 여성 정책은 여성에게 안전한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을 분리하며 공간 자체를 성별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는 그 ‘선한’ 의도와 관계없이 여성 전체를 통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대책으로 등장한 성별 분리 화장실이 대표적이다. 여성들은 ‘여성들만의’ 공간에서 안전하기보다, 모두가 안전한 공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선정적 보도는 물론이고 성폭력 사건에서 유책 사유를 여성에게 두는 기사에 대한 적극적인 아카이빙과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이 역시 성폭력 사건을 이용해 여성을 두려움에 옭아매고 스스로 검열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대는 배후 없이 나아가고 후퇴함을 반복하며 하나의 ‘정치적 기획’으로 작동했다. 미투 운동은 이 맥락에서 살펴야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 이들은 성폭력 반대 운동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인 성폭력 통념을 극복하기 위해 앞장섰다. 지난 1월16일 미국 체조 대표팀 주치의로 여성 140명을 성추행·성폭행한 혐의를 받아 기소된 래리 나사르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카일 스티븐스의 말 그대로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내려 돌아온다.”

거대한 미투 물결은 당연하다는 듯 백래시를 불러왔다. 방송인 김어준씨는 자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다스뵈이다>에서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첫째 섹스, 좋은 소재이고 주목도 높다. 둘째 진보적 가치가 있다. 피해자들을 준비시켜 진보 매체를 통해 등장시켜야겠다.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다’ 이렇게 사고가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하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미투 운동의 의미를 축소시키고, 피해자를 도구화하는 발언이라는 비판이 따랐다.

강간의 역사를 다룬 기념비적 책인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오월의봄, 2018)에서 저자 수전 브라운밀러는 “여성의 정치는 남성들이 좌우파 세력을 나눠온 전통과는 별개로 독립적으로 작동한다”라고 정의한다. “적이 강간을 하면 그 적이 얼마나 짐승 같은 자들인지 보여주는 증거가 되지만, 우리 편이 강간을 하면 그 사실을 화제로 꺼내는 행위가 정치적 협잡”이 되는 상황에서 강간은 ‘의혹의 영역’으로 강등되어 역사에서 배제되어왔다. “언제나 다른 정치적 동기를 가지고 강간 사건을 폭로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항상 존재하며, 이들은 진실 여부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전망에 따라 강간 사건을 판단”했음을 저자는 역사적 맥락에서 논증해나간다.

성폭력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하는 동안 이처럼 정치적인 계산을 하느라 바쁜 사회는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했다. 병가를 낸 채 검찰 진상조사에 응하고 있는 서지현 검사의 사무실은 무단으로 치워지고, 이름이 지워졌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 김지은씨에 대한 외모 평가가 난무했고, 확인할 수 없는 인성에 대한 지라시가 돌며 ‘2차 가해’ 역시 이어졌다. 얼굴과 실명을 드러내지 못한 피해자들에게는 피해 여부 자체를 놓고 여론 재판이 벌어졌다.

남성 중심 네트워크는 여성들에게 ‘적폐’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2002년 미국 의회 전문지 <더 힐>과 한 인터뷰에서 “구설에 오를 수 있는 행동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아내 외 다른 여성들과 개인적인 교류나 접촉을 하지 않겠다”라고 말한 이른바 ‘펜스 룰(Pence Rule)’이 엉뚱하게 미투 운동에 대한 남성들의 대처법으로 오르내리기도 했다. 성폭력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명분으로 회식 등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일은 여성의 영역을 좁히는 또 다른 차별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펜스 룰은 일터의 권력이 남성에게 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무기’인 셈이다.

이러한 일상의 권력구조는 한 조직의 민주주의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남성 중심의 네트워크는 여성들에게 곧 ‘적폐’다. 정권 교체로 꺼진 듯 보였던 촛불은 젠더 문제로 옮아 2라운드를 예고하고 있다. 정치권력 교체를 열망했던 광장의 촛불은 사그라졌지만, 일상 권력의 분배를 요구하는 촛불은 어쩌면 이제 시작이다. 미투 운동 전선에서 사회가 이뤄야 할 진전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질을 결정하는 새로운 가늠자가 될 수 있다.

2002년 심리학자 데이비드 리색과 폴 M 밀러가 공동으로 쓴 논문 <들키지 않은 강간범들의 재범 및 중복범죄>는 기존 통념을 반박하며 성폭력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높인다. 이들은 1991~1998년 당시 매사추세츠 보스턴 대학 남학생 임의표본 1882명을 선정해, 자원한 이들을 대상으로 ‘아동기 경험과 성인기의 기능’을 연구 주제로 내걸고 조사를 진행했다. 술을 마시고 상대가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는지 여부가 핵심이었다. ‘강간’이나 ‘공격’ 등 단어를 세심하게 피한 질문을 통해 드러나지 않은 성폭력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추가 면담까지 마친 결과 이 ‘드러나지 않은 강간범’들은 자신이 한 행동이 강간이고 자신이 강간범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들의 ‘남자다운’ 성적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다. “왜냐면 그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거든요. 복면을 하고 칼을 휘두르면서 여성을 덤불로 끌고 들어가는 것만이 강간범이라고 말입니다(<미줄라> 원더박스, 2017).”

이 연구가 보여주듯 성폭력은 일상의 얼굴을 하고 있다. 성폭력 가해자를 ‘괴물’로 묘사하는 것은 성폭력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떨어뜨리고 해결을 방해할 뿐이다. 성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 채 저질러왔다. 그러는 동안 피해자는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

3월9일 서울서부지검에 자진 출석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성폭력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성실히 검찰 조사에 임하겠다”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일절 없었다. 같은 날 성폭력 혐의로 소환 조사를 앞두고 있던 배우 조민기씨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조씨의 자살로 한편에서는 ‘미투 운동이 사람을 죽였다’라는 여론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이야말로 1월29일 서지현 검사가 미투 운동에 동참하며 사회에 들려줬던 이야기를 다시 되새겨야 한다. “범죄 피해자분들께, 성폭력 피해자분들께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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