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바람이 거세게 불던 2012년, 지금 활동하는 복지 시민단체의 발족에 참여했다. 당시 여야 모두 복지 확대를 외치는 상황에서 굳이 단체를 만들 까닭이 있느냐며 지인들이 물었다. 정치권이 앞서 나가니 복지 시민단체가 할 일이 별로 없을 거라는 걱정이었다. 정말 당시 정치권의 발걸음은 빨랐다. 야당은 무상급식의 기세를 무상보육·무상의료·반값 등록금으로 확장하며 ‘3무1반’을 내걸었고,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아버지의 꿈이 복지국가였다’며 일찌감치 복지 의제를 공략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새로이 복지 시민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 세금 때문이었다. 갑자기 세상이 바뀐 듯 모두 복지국가를 외치지만 정작 증세 이야기는 안 나왔다. 정치인들을 만날 때마다 제안했다. 복지국가를 주창하려면 시민이 참여하는 증세도 말해야 한다고. 복지와 세금을 결합하는 ‘복지 증세’, 능력에 따라 기여하는 ‘누진 증세’, 이게 정공법이라고.

그러다 어느 날 국회 토론회에서 만난 정치인의 얄미운 질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게도 정치를 모르시냐?”며 시작된 그의 반론은 이러했다. “나도 안다. 복지국가로 가려면 세금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정당은 표로 먹고산다. 증세를 말하지 않는 건 결국 표를 가진 유권자들이 세금 이야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익히 아는 논리였지만 어쩐 일인지 그 순간 무언가에 머리를 맞은 듯했다. 그렇다! 정치권이 증세를 적극 다루기 위해선 시민들이 세금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들이 증세를 불편해하는 건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정치권에만 증세를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시민들이 세금 정의를 감시하고 증세에도 나설 수 있어야 하고, 이를 도모하는 단체도 필요하지 않은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금을 좋아할 시민은 애초에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래도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속한 단체가 발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노인 일자리와 복지를 추구하는 ‘노년유니온’, 개혁적인 사회복지사들이 모인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등 비슷한 문제의식을 지닌 단체들도 생겨나 서로 힘을 보탤 수 있었다.

세금 문제는 ‘정부 신뢰’가 중요한데 박근혜 정부에서 이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다르리라 본다. 촛불혁명으로 등장했고 시민 지지도 높아 이전보다는 ‘정의로운 세금’을 말할 수 있다. 또한 시민들이 복지를 체험하고 있다는 점도 소중하다. 아이가 있는 집은 무상보육을 누리고 올해 9월부터는 아동수당도 받게 된다. 기초연금은 대통령 선거마다 10만원씩 올라 문재인 정부 말에는 30만원에 이를 전망이다. 문재인케어가 시작되면 의료비 부담도 상당히 경감될 것이다. 여러 조사에서 ‘복지가 늘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다’는 응답이 많아지는 배경에는 복지 체험도 한몫을 한다고 판단된다.

 

 

ⓒ연합뉴스추경호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 위원장이 지난 11월 2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조세소위원회에서 정부가 내놓은 '초고소득자' 소득세·법인세 인상 개정안 등 세법개정안을 상정하고 있다. 2017.11.28

 


초과세수를 통한 복지 확대는 일시적 미봉책일 뿐

문제는 정치권이다. 복지에 적극적인 문재인 정부조차 그렇다. 현재 정부가 의존하는 세입 확충 경로는 초과세수이다. 가뜩이나 대선에서 증세 공약이 빈약했는데, 정부 출범 이후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는 아예 초과세수가 핵심 방안으로 자리 잡았다. 이 초과세수의 상당 몫은 개인과 법인의 부동산 양도차익, 건설업과 부동산업의 호황, 지방세인 취득세 증가 등 부동산 시장 활황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고 서민 주거 복지를 강화하는 정책을 편다면 사라질 세입이다. 복지 확대가 제도 개혁으로 실행되듯 복지재정 역시 조세개혁으로 충당돼야 지속 가능하다.

결국 6년 전 과제가 여전히 오늘의 숙제이다. 다행히 이전에 비해 정부 신뢰와 복지 체험에서 긍정적 환경이 조성되었다. 지역사회 시민에 대한 세금 교육, 지출 불신을 타개할 재정 개혁, 미래지향적 증세 방안 등 시민들이 참여하는 세금 활동이 요청된다. 대한민국 복지국가로 향해 가는 ‘아래로부터’의 시민 세금 운동을 기대한다.

 

 

기자명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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