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정선희씨(위)는 “남편과 친구를 잃은 고통에 대해 슬퍼할 시간보다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은 게 슬프다”라고 말했다.
눈을 뜨면 전쟁이 시작된다. 정선희씨(36)는 말했다. “‘세상이 날 버렸어, 정리했어’라고 생각하다가 ‘아니야, 세상에 나가 치유하고 극복해야지’라는 생각이 든다. 두 마음이 아침부터 매 순간 대립하고 싸운다. 지금 이순간도 전쟁을 치른다.” 고개를 숙이면 그녀의 슬픔은 커져만 갔다. 고개를 들면 다른 사람들이 아파하는 게 보였다. 특히 슬퍼하는 어머니가…. 정씨는 “그저 기도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경찰과 사채업자 원 아무개씨는 정선희씨가 말을 바꿨다고 한다.그 어떤 말이 들려와도 나는 기도하는 것, 참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무슨 말을 할 기력조차 없었다. 나는 사채와 관련해 말을 바꾼 적이 없다. 모두 경찰서에 가서 진술했던 내용이다. 그 중에 일부를 〈시사IN〉에 이야기했을 뿐이다. 내가 피해자인데, 정말 아픈 사람인데 해명을 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 슬프다.

경찰은 사채업자가 협박했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한다. 경찰은 사채업자가 “내가 재환이를 보호하고 있다” “내 손을 떠났다. 다른 사람이 보호하고 있다”라고 말한 것은 돈을 받기 위해 한 단순한 거짓말일 뿐이라고 한다. 화요일(9월2일)에 사채업자 한 분이 매니저를 통해 “돈놀이하는 건달이 재환이를 데리고 있다”라는 전화를 걸어왔다. 너무 놀랐다. 큰 쇼크를 받아 울었다. 패닉 상태였다. 주변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냐”라고 전화를 걸었다. 지인들이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다독여주었다. 목요일(9월4일) 사채업자가 다시 매니저에게 전화를 했다. “정선희가 사람을 풀어서 어떻게 하겠다고 하는데 가만히 있지 않겠다. 신문사, 잡지사에 안재환의 모든 것을 폭로하겠다.” 연예인에게 이보다 치명적인 일은 없다. 남편이 실종당했는데 아내에게 남편을 데리고 있다고 하는 말을 그냥 농담으로 받아들이라니…. 내게 그보다 무서운 건 없었다. 그 사채업자 말고도 사채업자들이 당근과 채찍을 들고 나를 압박했다.

남편을 데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왜 신고를 안 했는가.신고하고 싶었다. “형사가 나서야 할 범죄 아니냐. 신고하겠다”라고 했더니 남편 지인들이 말렸다. 남편의 선배 김 아무개씨는 “요즈음 세상에 연예인을 납치하는 게 말이 안 되니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라고 말했다. 물론 연예인 커플이기 때문에 실종 신고를 하면 둘 다 죽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이 무너지면 나도 무너진다. 둘 중 하나는 벌어야 이 문제를 수습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괴로웠지만 숨기며 방송에 나갔다.

(지난 10월17일 서울경찰청 경제범죄특별수사대는 정선희씨에게 조언하던 안재환씨의 선배 김 아무개씨(47)에 대해 고리 사채와 폭행을 일삼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씨는 연 120%의 이자를 받고, 보증인을 폭행하고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김씨가 안재환씨에게 3억9500만원을 빌려주었다고 한다.)

경찰은 정선희씨가 안재환씨의 사채에 관해 알고 있었다고 하는데.나는 몰랐다. 연애한 지 3개월 만에 결혼을 발표했다. 알았다면 결혼 전에 다 수습했을 것이다. 남편은 뻥치는 사람이 아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사람이다. 결혼 전에 내게 남편이 3000만원, 5000만원 빌려 간 적이 있었다. 가게를 경영하면서 단순히 돈을 융통하는 수준이었다. 지난 4월께 동업자와 6억9000만원 상당의 송사에 휘말려 은행 대출이 좀 있는 줄 알았다. 한 번은 “이자 무서운 거 쓰는 거 아니지?”라고 물었더니 남편은 “그럼 그럼, 은행이지”라고 말했다. 그게 전부다. 사채는 아예 모른다. 사채 이야기는 남편이 실종되고 나서 처음 들었다. 사채가 기하급수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무서웠다. 남편에게 사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고, 그런 상상도 못했다. 사채업자들이 계속 만나자고 했다.

경찰은 사채가 아니라 단순 채권·채무 관계라고 하는데.이자가 3부·4부 되고, 제때 못 갚았다고 이자가 원금을 먹으면 그건 나쁜 사채 아니냐? 모르는 여자가 장례식장에 와서 서럽게 울면서 “미안해요” “미안해요” 했다. 누구냐고 했더니 사채업자 이름을 댔다. 너무 무서웠다. 치를 떨다가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갔다.

사채업자 원 아무개씨는 안재환씨의 사채가 25억원 정도 된다고 한다. 실종 하루 전에 5000만원을 빌렸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지 모르겠다. 아내인 나는 잘 모른다. 원씨가 나를 예뻐했다고 하는데 나는 원씨가 누군지도 모른다. 전화 통화 한번 한 적 없다. 남편을 데리고 있다고 한 무서운 사채업자일 뿐이다. 돈을 받아내려고 자꾸 말을 만드는 사채업자 이야기를 왜 언론에서 중요하게 다루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사채 규모도 정확히 모른다. 남편의 지인은 30억~60억원가량 된다고 했다. 경찰서에서 원금이 30억원 정도인데 이자를 합하면 78억5000만원가량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댁 식구들이 검찰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정선희씨와 안재환씨가 같이 납치됐지만 정선희씨가 5억원을 주고 먼저 풀려났다고 주장하는데.세상이 나를 자꾸만 괴물로 만들고 있다. 내가 쌓아놓은 그 모든 것을 물거품이 아니라 마이너스로 만들어버리고 있다. 남편이 웃는 모습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이미 하늘나라로 간 사람 아니냐. 그런데 두 번, 세 번 짓밟고 죽이고 이것도 모자라 해부를 하려 든다. 산 사람도 숨을 못 쉬게 생매장을 한다. 남편이 실종됐을 때 나는 하루에 생방송 두 개를 하고 녹화 방송이 두세 개씩 잡혀 있었다. 내가 납치되면 세상이 다 안다. 어떻게 납치가 가능한가. 시댁 분들이 사채업자와 똑같은 주장과 단어를 되풀이한다. 자식을 보낸 아픔이 있는 시댁 분들, 선의로 돈을 빌려준 사람들도 모두 피해자일 수 있다. 하지만 없는 말을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 나를 희생양으로 삼길 바라는 것 같다. 가슴에 피멍 들어도 입 다물고 싶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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