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다시 꺼내게 된 것은 저자의 ‘사소한’ 실천 때문이었다. 사설 무료 학교인 건명원 원장을 맡은 저자는 얼마 전 서강대학교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건명원에서 수업 전, 학생들에게 ‘아직은 이름 붙지 않은 모호한 곳을 향해 부단히 나아간다’라고 강조해왔는데, 이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다시 책을 펴보니 구절구절이 달리 보였다. 마치 출사표를 읽는 기분이었다. 저자는 양현석 YG 대표와 가수 싸이의 성공 비결을 이렇게 꼽았다. ‘자신만의 욕망에 집중한다. 자기 내면에 비밀스럽게 웅크리고 있으면서 불현듯 일어나는 충동질, 자기만의 고유하고 비밀스러운 어떤 힘을 따른다. 모든 큰 성취는 새로운 프레임에 대한 기대로부터 나온다. 번잡스럽고 자잘한 고려나 계산들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감각적인 통찰을 믿고 나가야 한다.’
현재 그의 실천을 완벽하게 설명해주었다.
저자는 지금의 ‘인문학 현상’이 학자들이 아니라 현장 CEO들로부터 기인하게 된 이유를 분석한다. 기업을 진두지휘하는 자리에 인문학 출신을 앉혀야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고, 인문학 출신이라야 변화의 흐름에 부합하는 정확한 의사 결정으로 돈을 더 잘 벌 수 있기 때문에 CEO들이 인문학을 기웃거리게 된 것은 필연이라고 말한다. ‘생과 사’의 경계에 선 CEO들에게는 고도의 더듬이가 있는데 이 더듬이가 딱 짚어낸 게 바로 인문학이라는 얘기다.
기존 인문학자들에게 ‘인문적 통찰력’이 부족한 이유를 제시했는데 설득력이 있다. 생각하는 법을 고민해야 할 인문학자들이, 앞서간 학자들이 남긴 생각을 배우는 데에 빠져, 그들이 남긴 지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억지로 하는 인문학 공부에 다른 사람들이 매력을 발견할 수 없고, 매력이 없는 일에 빠져들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인문학의 시원스러움과 박력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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