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동안 비트코인 현상을 애써 ‘찻잔 속의 태풍’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젊은 논객이 암호화폐를 탈집중적인 새로운 사회로 가는 혁명 수단이라고 강조하고, 이어서 청년들이 당국의 암호화폐 규제를 부동산으로 한몫 챙긴 구세대의 공격이라고 비난하는 걸 보면서 달라졌다. “이게 도대체 뭐길래”라는 심정으로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마침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와 크루그먼 교수, 2008년 금융위기를 예언해서 일약 스타가 된 루비니 교수, 최근에는 점잖은 경제사가인 해럴드 교수까지 암호화폐 비판에 나섰다. 암호화폐 가치가 폭락하면서 유럽은행과 국제결제은행의 금융 감독기구 수장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학자들이 암호화폐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의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은 화폐의 일반적 기능을 지니지 못했고, 경제학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추론할 것이다. 무릇 화폐는 교환의 매개, 가치 척도, 그리고 가치 저장의 기능을 갖춰야 한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으로 일반 상품을 구입하기란 매우 어렵다. 몇백%씩 가치가 변동하는 어떤 존재를 가치의 척도로 사용할 순 없다. 현재는 오직 가치 저장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 또한 높은 변동성 때문에 앞날이 밝지 않다.

블록체인이라는 ‘분산 원장 기술’은 획기적 발상이며 암호화폐는 천문학적 투자 자금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모두가 공유하는 암호 장부를 만들어서 시간 순서대로 연결하면 장부 조작도, 해킹도 불가능하다. 누가 검증과 확인의 비용(현재의 암호화폐 발행=채굴은 상당한 인력과 에너지를 요구한다)을 감당할 것인가 하는 무임승차 문제는 새 비트코인이라는 인센티브로 해결했는데 이 또한 천재적이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의 확산에는 예외 없이 투기가 개입했으니 현재의 ‘비이성적 열광’을 그렇게 비난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기술은 보안·투명성의 대가로 속도라는 효율성을 희생시켰다(이른바 확장성의 문제). 퍼블릭 블록체인은 성공할수록, 즉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점점 더 속도가 느려질 것이다. 블록의 크기를 늘리거나 샤딩 등의 대처 방안이 논의 중이지만 현실에서는 암호화폐 공동체가 분열하고 있으며 이미 700종에 이르는 코인들을 쉽사리 하나로 통일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런 억제 요인의 강도에 따라 각 코인의 최적 규모가 결정될 것이고 결국 현재의 열풍도 사라질 것이다.

사실 비트코인 거래란 거래 당사자 장부에 잔고가 있는지, 송금 결과가 정확히 기록됐는지를 확인하는 데 불과하다. 이더리움의 스마트 계약도 주식의 컴퓨터 매매나 선물 거래처럼 특정 기준을 충족하면 자동적으로 계약을 실행하는 것뿐이다. 이들 비용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거래 비용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보안·투명성의 대가로 속도라는 효율성 희생시켜

대기업들, 그리고 정부가 앞다퉈 나서고 있다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프라이빗 블록체인, 즉 특정 개인이나 기관들만 활용하는 데이터 처리이다. 대기업이나 기관들은 자신의 전체 사업 중 일부를 블록체인 기술로 보완하고 있다. 예컨대 삼성은 ‘사물 인터넷’ 사업에서 해킹에 의한 시스템 마비를 방지하는 데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가 가상화폐거래소 폐쇄를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가상화폐들이 동반 급락했다. 2018.1.11

 


블록체인은 여러모로 쓸데가 많은 기술이지만 과장은 금물이다. 예컨대 ‘프로그램 경제(programmable economy)’에서 말하듯이 전 세계 경제를 하나의 컴퓨터 안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처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은 말 그대로 환상일 뿐이며 이 때문에 오히려 신뢰를 잃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블록체인은 기존 시스템(즉 중앙집중화한 신뢰받는 제3자)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이들 제도와 함께 가야 한다. 아무런 신뢰 없이도 수학 프로그램만으로 사회가 돌아갈 수 있다는 ‘이상’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행동/실험 경제학은, 신뢰가 없어도 되는 사회란 환상이며 그 반대로 적절한 제도와 규범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블록체인과 경제학의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

 

 

기자명 정태인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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