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정창수씨는 이 기사에서 참여정부에서부터 이미 소리 없는 감세가 추진돼왔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감세 정책이 노골화하면서 대규모 부작용이 초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국정감사장에 〈시사IN〉이 호명됐다. 지난 10월7일, 국회 정무위원회 산하 국민권익위원회를 상대로 한 국감에서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시사IN〉 제45호(2008년 7월26일자)에 실린 기사 한 꼭지를 거론했다. 정부 감세 정책이 복지 정책을 후퇴시키고 있다고 지적한 기사였다(“감세는 ‘과속’, 서민복지는 ‘역주행’, 위험한 재정 정책”).

공 의원이 문제 삼은 것은 이 기사를 작성한 필자 정창수씨였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공 의원은 정씨가 공무원 신분임에도 과거 몸 담았던 시민단체 이름을 빌려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시사지에 기고함으로써 ‘공무원으로서의 복종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공성진 의원이 문제 삼은 또 하나는 정씨의 ‘전력’이었다. 정씨는 국회의원 비서관을 지내던 2007년 초, 한·미 FTA 협상 관련 기밀문서를 외부에 유출한 혐의로 검찰로부터 ‘불구속구공판’(피고인이 구치소에 가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하되 약식 절차가 아닌 정식 재판으로 하는 것) 처분을 받았다. 이렇게 공무상 비밀누설죄 혐의로 소송이 진행 중인 이를 공무원으로 임용한 데 대해 공 의원은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문제의 기사를 쓴 정창수씨는 시민단체 출신 공무원이다. 1990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학생위원회를 통해 시민운동에 입문했고, 1999 ~2005년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예산감시국장 등으로 일했다. 그 뒤 잠시 국회의원 비서관을 지냈고, 2007년 5월 국민권익위원회의 전신인 청렴위원회 홍보협력단 계약직 사무관으로 채용됐다.
영혼 없는 공무원을 원하는가
정씨가 소송에 걸려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가 계약직 공무원으로 임용되던 때만 해도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전이었다지만, 공무원 계약 규정상 기소된 자에 대해서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그러나 정씨는 〈시사IN〉에 기고한 글을 문제 삼아 ‘복종 의무 위반’ 운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익위에 근무하던 시절도 아니고, 권익위 업무와 관련해 글을 쓴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가 되는 건지 모르겠다”라는 것이다.

기사를 기고한 7월 초, 정씨는 권익위에 있지 않았다(〈시사IN〉이 이를 기사화한 것은 정씨가 기사를 기고한 2주 뒤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른바 ‘초과인력 재교육 대상자’로 분류돼 4월부터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재교육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정씨가 권익위로 복귀한 것은 7월11일. 본래 맡고 있던 반부패 민관 협력(거버넌스) 업무로 돌아간 것이다.

기사 내용 또한 권익위 업무와는 무관하다. 정씨는 과거 시민단체에서 예산 감시 운동을 했던 전문성을 살려 감세 정책을 뜯어보았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씨는 자신이 ‘내부 의견 제출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거창한 비리를 폭로한 ‘내부 고발자’도 아니고 공무원 사회 내부에서 비판적 목소리를 냈을 뿐인 자신을 복종 의무 위반자로 몬다면, 공무원 모두가 상부 지시에 순종하기만 하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돼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1990년대 양심선언으로 유명한 이지문씨(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원)는 “공무원에게도 헌법상 언론·출판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는지, 근본적인 논쟁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래야만 대운하 정책의 모순을 지적한 김이태 박사 같은 이가 공무원 사회에 계속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창수씨는 나아가 공 의원이 자신을 ‘노무현 정부 코드 인사’ 수혜자로 지목한 데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공성진 의원은 “지난 10년간 좌파 정권에 코드가 맞춰진 인사들이 아직까지도 정부 내, 그리고 각 기관에 포진하여 그들의 기득권을 지켜내기 위해 사사건건 이명박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씨 주장에 따르자면,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FTA 관련 문건을 유출함으로써 참여정부에 심한 타격을 입혔던 정씨를 이전 정부가 코드로 감쌀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당시 참여정부 인사로부터 ‘시장자유주의를 부정하는 좌파’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는 정씨는 “지난 정부에서도, 이번 정부에서도 나를 좌파라 하니 난감하다”라고 말했다. 한때 대권에 도전하려는 뜻을 비쳤던 한나라당 의원의 감세 공약을 만드는 데 깊이 간여하기도 했다는 정씨는 “공 의원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하급 사무관에 불과한 나를 여당 최고위원이 좌파라 지목하며 굳이 솎아내려 드는 까닭을 모르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제가 된 기사는 감세 정책이 복지를 후퇴시키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정부 여당이 공무원 기강 잡기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정씨는 “이 정부 들어 하는 일마다 꼬이다 보니 밖으로는 언론 탓, 안으로는 공무원 탓을 하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현 정부가 ‘참여정부 코드 인사’ 의혹을 받는 공무원에 대한 저인망식 훑기 작전을 개시했다는 시각도 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 파견됐던 한 공무원은 “결국 참여정부 때 임명된 기관장급 밀어내기가 웬만큼 마무리됐으니 이제 하위직을 손보겠다는 뜻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FTA 문건 유출자 채용이 ‘코드 인사’?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입 막고 귀 닫는 공무원이 늘어간다는 사실이다. 한 계약직 공무원은 “이명박 정부 초기만 해도 공무원 사이에 ‘세상이 그래도 많이 바뀌었는데…’ 하는 낙관론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관료 사회가 급속도로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하면서 요즘은 의식 좀 있다는 공무원도 납작 엎드린 상태이다”라고 말했다. 한 시민단체 출신 공무원은 “참여정부 때 종부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하던 관료가 종부세 폐지를 브리핑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라며, 정권의 코드에 맞춰 재빠르게 변신하는 고위 공무원들의 행태에 현기증을 느낀다고 했다.

행정학을 전공한 또 다른 공무원은 “지난 10년간 관료 사회가 많이 민주화한 듯했지만 근본 체질까지 변한 것은 아니었다”라며, 이렇게 토대가 허약한 위에 과거로 퇴행이 이루어진다면 그 피해는 조만간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는 종부세 따위 정치권에서 주도한 정책이 논란을 일으키는 수준이지만 1~2년 뒤면 정권 입맛에 맞춰 관료가 입안한 정책이 국민의 삶을 본격적으로 고달프게 만드는 단계에 접어든다는 것이다.

기자명 김은남·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