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대0, 9대0, 12대2, 7대0. 프로야구 경기 스코어가 아니다. 국내 주요 사립대학 이사회를 구성하는 남녀 이사 비율이다. 평균 나이를 계산해보았다. 9대0인 대학의 이사 평균 나이는 68세. 7대0인 곳은 67세였다. 80세 기업인 출신 전직 정치인을 지난해 이사로 선임한 대학도 있었다. 30대 후반의 청년이 이사로 등록된 한 대학이 눈에 띄었다. 알고 보니 전 이사장의 아들이었다. 승계 수업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사들 평균 나이가 70대인 어떤 대학은 40대 여성이 이사장이었다. 역시나 오너 일가였다.

남성, 노년층, 기업인·교수·관료 출신 등이 대부분인 이사회 구성은 우리 대학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우연한 기회에 처음 이사회에 가보니 참석한 이사들 모두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들뿐이었다. 전체 이사 중 여성 비율이 10%를 겨우 넘는다. 소수의 여성 이사들이 그날처럼 모두 불참하면 남성 이사들만의 회의가 진행된다.

ⓒ김보경 그림

경험과 학식이 풍부하고 연륜이 깊은 명망가들을 이사로 선임하면서 생긴 결과론적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사회뿐 아니라 대학 내 여러 논의 기구나 의사 결정 그룹에는 남성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전국 131개 대학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직 교수 현황을 보면 15.7%만이 여성이다. 국내 대학교수의 약 3분의 1이 여성인 점을 고려하면 대학 경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보직 교수 중 여성 비율이 지나치게 낮다. 게다가 많은 보직 교수가 60세 전후의 시니어 그룹에 속한다.

문제는 성별과 나이 자체가 아니라, 의사 결정 집단의 동질성과 편중이다. 총장 선출, 솜방망이 징계, 학과 통폐합, 학생 인권침해 등 대학에서 발생한 여러 논란을 들여다보면, 여성·학생·노조 등 여러 구성원의 관점과 견해가 반영되지 않은 ‘그들만의’ 결정이 갈등의 출발점인 경우가 많다. 기업 CEO나 은퇴한 명예교수, 고령의 전직 국회의원 같은 이들이 주를 이루는 이사회에서 여성·학생·노조의 관점이 녹아든 의사 결정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만약 처음부터 노조를 파트너로 삼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함께 대안을 모색했더라면, 대학에서 청소 노동자들을 해고하면서 불거진 논란을 피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대학평의원회가 제 목소리 낼 수 있어야

안타깝게도 많은 대학의 핵심 의사 결정 그룹은 다양한 구성원을 정책 결정에 참여시켜 토론하고 설득하며 타협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대신 경영과 행정, 효율과 성과의 관점이 의사 결정 과정을 지배한다. 몇 년 전 기숙사비 인상 문제가 불거졌을 때 학생들은 그 문제 자체보다 학교 측의 일방적인 업무 추진에 가장 큰 불만을 드러냈다. 답(인상률)이 정해진 협상 테이블의 들러리가 되기보다 처음부터 답을 구하는 과정에 참여하고 논리와 근거가 합당한지 이해하기를 원했다.

최근 고등교육법이 개정되면서 사립대뿐 아니라 국공립대에도 대학평의원회 설치가 의무화됐다. 의결 기구가 아닌 자문·심의 기구지만, 교수·직원·조교·학생·동문 등 다양한 구성단위가 참여할 수 있고 어느 단위도 평의원 정수의 50%를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됐다. 다양한 의견이 표출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된 셈이다. 일부 대학평의원회가 ‘어용 단체’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있지만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았으면 좋겠다.

기자명 이대진(필명∙대학교 교직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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