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니커(운동화) 문화’가 퍼지고 있다. 운동화 한 켤레를 사기 위해 매장 앞에서 밤을 지새우고, 해외 백화점을 찾기도 한다. 중고 거래 시장에서 한정판 운동화는 발매가의 6~7배를 호가한다. 운동화 수십, 수백 켤레를 모으는 이들은 연예인만이 아니다. 착용하지 않고 오로지 컬렉션 용도로만 운동화를 사들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가격이 한 지표다. 지난해 말 나이키는 22만9000원(미국 가격 190달러)에 ‘에어조던 1 오프화이트’라는 한정판 제품을 내놓았다. 중고가는 상상 이상이다. 현재 온라인 중고품 매매 사이트에서 이 제품은 170만원가량에 거래되고 있다. 이 밖에도 나이키·아디다스의 여러 제품이 정가의 2배 가까이에 거래된다. 한 운동화 매장의 직원은 “한정판이 아니더라도 인기 모델이 들어오면 줄을 선다. 1인당 한 켤레씩 제한을 둬도 반나절 만에 동나곤 한다”라고 말했다.

‘캠핑’도 불사한다. 신제품이 출시되기 전날 밤부터 이튿날 매장 영업시간까지 줄을 서서 기다린다. 상품은 선착순으로 구매한다. 해외에서 시작된 문화인데, 한국에서는 대개 ‘출석 체크’ 방식을 쓴다. 매장에 도착한 순서대로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2시간여마다 다시 모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매장 앞에서 계속 기다리던 사람들과 이름을 적고 자리를 비운 사람들이 다투는 일도 벌어진다. 과열을 막기 위해 나이키·아디다스 등 운동화 업체는 한정판 인기 모델을 출시할 때에 한해 온라인 추첨 방식을 도입했다.

ⓒ뉴발란스 제공‘운동화 문화’가 퍼지면서 신제품 출시 때 매장 앞에서 줄을 선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고가 패션 아이템처럼 운동화 시장에도 모조품이 판친다. 타오바오 등 중국 사이트에서는 정품의 4분의 1 가격에 모조품을 살 수 있다. 더러 모조품을 정품보다 약간 낮은 가격에 판매해서 소비자의 판단을 흐린다.

무엇이 이토록 운동화에 열광하게 만들었을까? 기술혁신도 한 원인일 수는 있다. 최근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내놓은 ‘베이퍼맥스’와 ‘울트라부스트’ 모델은 가볍고 편안해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편안한 신발이라고 모두 유행하는 것도, 유행하는 신발이라고 모두 편안한 것도 아니다. 온라인 운동화 커뮤니티에는 고가에 산 운동화의 착용감을 혹평하는 글이 수시로 올라온다. “○○○○ 제품 원래 이렇게 딱딱한가요?” “△△△△△ 신다가 물집 잡혔어요” 따위 불평에 대해서는 이런 답변이 달린다. “불편한 게 맞아요. 그 모델은 감성으로 신는 거예요.”

유명인 마케팅과 레트로 바람이 일으킨 ‘감성’

‘감성’은 크게 둘로 나뉜다. 유명인 마케팅과 레트로 바람이다. 운동화 열풍의 시초는 마이클 조던의 농구화 ‘조던’ 시리즈다. 나이키 사 운동화는 ‘조던의 신발’이라는 아우라를 등에 업고 불티나게 팔렸다. 1980년대부터 나이키가 운동화 시장 매출 1위 기업으로 떠오른 비결이다. 최근 나이키의 입지를 위협한 아디다스의 ‘이지부스트’ 시리즈는 미국 래퍼 카니예 웨스트와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나이키코리아는 ‘베이퍼맥스’의 광고 모델로 빅뱅의 지드래곤을 내세워 화제를 모았다. 고가에 거래되는 운동화들은 대개 유명 스포츠 선수, 연예인과 연관되어 있다.

유명인 마케팅 없이 인기를 끄는 모델들은 대부분 레트로다. 레트로란 ‘복고풍’이란 의미로, 과거 유행했던 패션이 되살아나는 것을 뜻한다. 운동화 회사들은 수십 년 전 인기 모델을 재발매하며 판매고를 쏠쏠히 올리고 있다. 나이키의 ‘에어맥스 95’ ‘에어맥스 97’이 단적인 예다. 이 모델은 1995년과 1997년에 처음 나왔는데, 2015년과 2017년 20주년을 맞아 재발매하며 화제를 모았다. 재미있는 것은, 비슷한 모양에 무게는 줄이고 착용감을 개선한 리메이크 모델들이 상대적으로 인기를 끌지 못한다는 점이다. 운동화를 구매하기 위해 매장 앞에 줄서서 밤을 새울 정도로 관심이 높은 제품은 ‘OG(original)’라는 이름이 붙은 레트로 모델뿐이다.

지난해 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발간한 ‘한국패션마켓트렌드’를 보면 2010년 상반기에 비해 2016년 상반기 운동화 시장은 122.7% 커졌다. 전체 신발 시장 대비 운동화 비중 역시 54.5%로, 2010년의 36.9%에 비해 늘었다.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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