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43세인 타니야 클레어런스는 아이 넷 중 셋을 목 졸라 죽였다. 네 살배기 딸과 세 살배기 아들 쌍둥이였다. 세 아이는 모두 근육이 수축되는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혼자 힘으로는 앉거나 먹을 수도 없었다. 사건 당시 남편은 유일하게 장애를 갖고 태어나지 않은 다섯 살 큰딸을 데리고 휴가를 떠나 있었다.
 

ⓒMail Online 갈무리우울증으로세자녀를목졸라죽인
타니야 클레어런스(왼쪽)와 살아남은 그녀의 딸.

집에 남은 엄마는 먼저 자고 있는 쌍둥이를 목 졸라 죽였다. 그러고는 딸을 죽이기 전에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아들 둘을 죽이기도 힘들었지만 딸을 죽이는 것은 정말로 더 힘들다. 아들들이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딸이 잠들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만일 나만 죽어버리고 딸이 남아 아빠와 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면 그건 굉장한 트라우마가 될 것이다. 정말 미안하다. 유일한 위안은 고통스러울 미래로부터 딸을 구하는 것이다.’ 엄마는 아이들 시신 주위에 인형을 가져다 둔 다음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

영국 법원은 중증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돌보다가 지친 엄마가 부담과 좌절을 이기지 못한 끝에 충동적으로 벌인 사건으로 보았다. 이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영국으로 이주해온 부유한 중산층 백인 가족이었다. 남편은 투자은행 중역이었고, 런던 근교의 큰 집에서 살았다. 경제적으로 부족하거나 아쉬울 게 없었다. 장애 아동이 있는 저소득층 가족이 받는 금전적·경제적 혜택을 받지 못했지만, 사회복지사나 장애 아동 전문 의료진의 방문 같은 복지 서비스는 받았다. 집을 방문하거나 아이들을 진료하는 등 이 가족과 접촉한 복지 인력은 무려 60여 명에 달했다. 문제는 이런 광범위한 조력이 있었음에도 사건을 막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이 일어난 뒤 거의 1년에 걸쳐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타니야의 정신 상태는 사건이 발생하기 한 해 정도 전에 이미 좋지 않은 징후를 보였다. 즉, 아이들뿐 아니라 엄마의 정신적 상태에 관한 개입 또한 더 일찍 이루어졌어야 했다.

자살에 실패하고 살아남은 타니야는 정신 상태를 고려한 책임 경감으로 모살죄(謀殺·murder)가 아니라 고살죄(故殺· manslaughter)를 적용받아 감옥이 아닌 병원에 수용됐다(영국 형법은 살인을 모살과 고살로 나눈다. 범행 당시 범의(犯意· mens rea)가 있으면 모살이고, 그런 마음이 없이 사람을 죽게 한 경우가 고살이다). 3개월 정도 지난 후에는 주말 동안 남은 딸과 남편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아이를 죽인 엄마는 흉악한 범죄자가 아니라 조력이 필요한 환자로 보았다.

이 사건과 관련해 남편은 내내 아내를 옹호하고 지지했다. 아내가 아이들을 매우 사랑했고 늘 아이들을 자신보다 먼저 고려했으나 사랑과 헌신 끝에 우울증과 절망만 남았다고 말했다. 남편은 (아이들에 집중한) 사회복지 서비스의 압박이 아내에게 늘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이 비극적 사건이 앞으로 교훈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2014년 영국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잉글랜드 및 웨일스 지역에서 부모에 의해 직간접으로 살해되는 아이가 한 달에 세 명에 달한다고 한다. 부모가 아이를 살해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알코올의존증이나 약물 남용 등으로 아이를 방치하기도 하고 직접 아이에게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아이를 양육하는 게 익숙지 않거나 정신적·물리적으로 힘든 나머지 분노를 폭발시키는 일도 있다. 때로는 부부 관계의 악화가 폭력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떠나간 상대에 대한 복수로 아이를 살해하는 일조차 있다. 아이를 죽이고 나서 자신도 자살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이런 극단적인 선택은 사건을 저지르는 부모 자신의 절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아이를 둘러싼 물리적 여건 못지않게 아이를 양육하는 어른의 정신 상태가 중요하다. 양육비 지급 등 경제적 지원 및 보육 시설·인력에 대한 투자 같은 물리적 지원 문제를 논의하기에도 벅찬 상황에서 너무 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기자명 런던·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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