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이 특별한 지위를 갖게 된 것은 화폐의 어떤 기능을 아주 훌륭하고 독창적으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급결제’다. 지급결제란, ‘내 돈’의 소유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사건이다.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이다. 가장 단순한 지급결제는, 당신이 ‘실물 현금(한국은행권)’을 가게에 들고 가서 음료수나 과자 같은 물품을 구입할 때 벌어진다. 고객과 가게 주인이 현실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보며 실물 현금과 물품을 바꾸는 이 사건에는, 중개인이 필요 없다.

지급결제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사건이 된 이유는, 상당수의 지급이 전자거래 시스템을 통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회사원 A씨는 언제부터인가 실물 현금을 시내의 서점으로 들고 가서 책을 구입하지 않는다. 자신의 B은행 계정에서 인터넷 서점 C사의 D은행 계정으로 송금하면 그만이다. 얼핏 보기엔 A씨와 C사가 직접 거래하는 듯하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A씨가 B은행 계정에 보관 중이라고 생각하는 돈은 실물 현금이 아니다. B은행이 A씨의 입출금 내역을 시간대별로 담은 ‘디지털 숫자’일 뿐이다. ‘A씨 회사로부터 300만원이 입금되었는데, 100만원은 냉장고 구입으로 출금되고, 100만원은 부모에게 송금되어 현재 100만원이 남아 있다’라고 적혀 있다. 일종의 ‘장부’다. A씨가 10만원을 C사로 송금할 때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내 장부의 디지털 숫자에서 10만원을 빼라’고 B은행에 통보하는 것이다. B은행은 우선 A씨 장부의 디지털 숫자가 ‘10만원 이상’인지 확인한다. 잔금보다 더 많은 돈을 송금할 수는 없다. A씨 장부의 잔금은 100만원이므로 ‘10만원 지급’이 ‘승인’된다. 이로써 A씨 계정의 디지털 숫자는 90만원으로 변경된다. 이와 반대로, C사의 D은행 계정 기록에는 10만원이 추가된다. 아직 지급결제 절차가 완료된 것은 아니다. A씨가 B은행에, C사가 D은행에 계정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B은행과 D은행 역시 중앙은행에 계정을 갖고 있다. A씨의 서적 구입으로 시작된 지급결제는, 중앙은행이 B은행의 디지털 숫자에서 10만원을 빼고 D은행의 디지털 숫자에 10만원을 더해줌으로써 완료된다.

ⓒEPA비트코인 등 가상통화를 유사 화폐로 볼 것인지 원자재로 간주할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거래 당사자(가게 주인)를 직접 만나서 실물 현금을 주는 것과 전자결제는 둘 다 ‘지급’ 행위다. 그 절차는 굉장히 다르다. 전자의 거래는 당사자 간에 직접적으로 이루어진다. 후자의 경우에는 ‘제3자’가 끼어든다. 은행과 국가(중앙은행)다. 전자거래 시스템에는 제3자(은행과 국가)의 고결함과 현명함이 요구된다. 제3자는 자신이 관리하는 고객(은행에는 일반 시민, 중앙은행에는 은행) 장부의 디지털 숫자를 멋대로 고치지 않을 정도로 고결해야 한다. 외부의 침입자가 그 기록을 고치려는 시도를 차단할 만큼 현명해야 한다(보안). 시민들이 제3자를 신뢰할 때 시스템 내의 디지털 숫자는 ‘실재하는 가치’로 존재할 수 있다. 현대의 거대한 금융 시스템은 이런 믿음 위에 얹혀 시장경제(거래)를 지탱한다.

비트코인 등 가상통화의 혁신성은, 은행과 국가라는 ‘제3자’의 개입 없이 지급결제를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은행이 지급결제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고객들의 장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장부 독점을 해체하면 어떨까?

특별한 보안장치 없어도 장부 조작 불가능

거래(비트코인을 주고받는)는 관계망 속에서 이뤄진다. 내 장부의 비트코인을 남에게 지급하면, 나의 비트코인은 줄고 그의 비트코인은 증가한다. 내가 가진 비트코인은 과거에 다른 이용자들과 비트코인을 주고받은 결과다. 지급한 사람의 비트코인 개수가 오히려 증가한다면 뭔가 부정한 기록 변조가 발생한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비트코인 시스템은 특별한 방법을 사용한다. 비트코인이 출범한 2009년 1월부터 지금까지 모든 거래 내역을 하나도 빠짐없이 장부로 기록해서 모든 이용자에게 공유하는 방법이다. 그 거래 내역은 시간적으로 그리고 다른 이용자와의 관계 측면에서 톱니바퀴처럼 촘촘하게 꿰어져 있다. 만약 불순한 의도를 가진 침입자가 하나의 이용자 기록(보유 비트코인의 개수)을 고치려면 다른 모든 이용자의 기록까지 바꿔야 한다. 특별한 보안장치가 없어도 장부를 고치기는 불가능하다. 이 장부가 바로 블록체인이다.

ⓒ연합뉴스강남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에 비트코인 사용 안내 입간판이 설치되어 있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의 지급은 어떻게 이뤄질까? 회사원 A씨가 인터넷 서점 C사에 1비트코인(BTC)을 보내려고 한다면, 일단 모든 이용자에게 그 사실을 통보한다. 비트코인에서는 은행 대신 이용자 중 일부가 ‘승인’을 맡는다. 승인에 성공하면 25비트코인을 인센티브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일종의 수학 문제를 자신의 컴퓨터로 돌리면 된다. 프로그램은, 컴퓨터가 계산력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지급 희망자의 비트코인 잔액을 확인 및 승인하고 지급자와 피지급자의 비트코인 개수를 바꿔 기록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같은 승인 작업이 10분마다 이뤄진다. 해당 시점에서 각 이용자의 비트코인 개수가 전자파일로 보관되는데 이를 ‘블록’이라고 부른다. 10분 뒤에는 다른 블록이 만들어져서 앞의 블록에 체인처럼 연결된다.

이렇게 비트코인에서는 은행과 국가의 개입 없이 당사자 간의 지급이 이뤄진다. 전자결제지만, 가게에서 실물 현금으로 물품을 사는 행위와 비슷하다. 자신이 누구인지 밝힐 필요가 없다. 소정 양식의 기록을 넘기지 않아도 된다. 디지털 세계에서는 이런 일이 블록체인 덕분에 처음으로 가능해졌다.

비트코인이 출범한 2009년 1월은 세계 금융위기 직후다. 전 세계가 거대 금융기관들에 대한 불신과 분노로 들끓고 있었다. 각국 정부는 불황 극복 차원에서 통화량을 크게 늘렸다. 이후 5년여 동안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통화량이 3~4배 정도로 증가했다.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조성되었다. 인플레이션으로 통화 가치가 하락하면, 시민들이 법정화폐(달러·유로·엔 등)로 은행 계정에 넣어둘 수밖에 없는 재산의 가치 역시 떨어지게 된다. 국가의 강탈로 해석될 수 있다.

ⓒ연합뉴스비트코인을 비롯해 가상통화를 받는 서울 용산구의 한 레스토랑.
이처럼 국가와 금융 시스템, 즉 ‘제3자’에 대한 반감이 치솟는 가운데 비트코인이 탄생했다. 지금도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수수께끼의 인물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는 현명하게도 비트코인의 발행 총량을 2100만 개로 정해놓았다. 통화량이 제한되어 있는 만큼 비트코인에는 인플레이션도 없을 것으로 보였다. 왼쪽으로는 아나키스트, 오른쪽에서는 국가의 경제 개입을 반대하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이 비트코인에 폭발적 관심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얼리 어답터’들이 자발적으로 비트코인 거래로 ‘제3자 개입 없는 지급결제’를 현실에서 입증한다. 제3자들에게 뜯기던 중개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가상통화가 법정화폐를 대체할 수 있을까

비트코인은 지급결제 기능의 구현으로 ‘화폐의 조건’ 일부를 충족했다. 그렇다면 화폐의 다른 속성은? 예컨대 ‘가치 저장 기능’이 있다. 선진국들의 인플레이션이 우려되고 있었으니 비트코인의 가치 저장 기능은 매우 매력적으로 보였다. 더욱이 은행을 끼지 않고 거래할 수 있으므로 비트코인 소유자의 신원이 감추어진다. 세금을 징수할 수도 없다. 이런 요인으로 수요가 늘면서 비트코인의 가격을 높였고, 가격 인상은 기대를 다시 증폭시켜 비트코인 시세는 꾸준히 상승세를 시현하다가 2017년 중반 이후 폭등하게 된다. 지지자들은 비트코인의 폭발적 인기에서 다음과 같은 담대한 미래를 전망한다. ‘비트코인과 그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은 언젠가 국가(제3자)의 법정화폐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금융거래(시민들 사이의 관계 중 하나)를 중개한다는 명목으로 착취와 간섭을 일삼았던 제3자를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면, 같은 일을 정치와 민주주의에서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 대한 이런 기대를 일단 화폐 측면에서 점검해보자. 비판자들은 비트코인이 컴퓨터 네트워크상에서만 존재 가능한 가상물로 ‘내재적 가치’가 없기 때문에 화폐로 기능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는 점은 원화나 달러화 같은 법정화폐도 마찬가지다. 통화량 가운데 실물 현금의 비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 상당 부분은 시민들의 은행 계정과 은행의 중앙은행 계정에 찍힌 디지털 숫자일 뿐이다. 한국은행권 5만원짜리의 제조비용은 100원 내외다. 5만원권이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대다수의 시민들이 그렇게 믿고 사용하기 때문이다.

다만 법정화폐는 쉽게 믿음을 획득한다. 뒤에 국가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법률적으로 시민들이 법정화폐를 사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놓았다. 세금은 법정화폐로 내야 한다. 국채 역시 법정화폐로 거래된다. 사실상 강제 통용이다. 이런 국가의 강제력을 ‘억압’으로만 간주할 수는 없다. 법정화폐의 사회적 이익이 폐해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예컨대, 시민들이 공식적 금융 시스템에서 법정화폐로 거래하고 재산을 축적해야 세금을 징수할 수 있다. 국가의 통화정책은 주로 은행을 통해 법정화폐 공급량을 늘리고 줄이면서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금융 안정성을 보장하는 기제다. 국가가 통화의 가치를 일정하게 통제해야 시장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다. 만약 한 국가 내에서 여러 통화가 함께 사용되며 서로 경쟁한다면, 상당수의 공공정책이 불가능해진다.

미래 화폐로서 비트코인의 가장 큰 결격 사유는 극심한 가격 변동이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이용자가 지급 승인을 요청하고 대기하는 동안에도 비트코인의 가격은 수십만~수백만원 단위로 오르내린다. 시세 상승 국면에서는 누구도 비트코인으로 상품을 구입하지 않을 것이다(디플레이션). 2비트코인으로 구입해야 하는 상품을 다음 날에는 1비트코인으로 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세 하락 시에는, 상인들이 비트코인을 받고 상품을 판매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1비트코인인 상품을 며칠 뒤에는 2비트코인으로 팔 수 있기 때문이다(인플레이션). 비트코인이 미래의 화폐 자격을 획득하려면, 널리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시민들은 비트코인을 보유하려 할 뿐 사용하지는 않는다. 비트코인의 공급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주장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도 현실에서 입증되었다. 현재는 비트코인 측면에서 디플레이션 국면이다.

ⓒEPA2017년 8월11일 중국 내몽골에 위치한 세계 최대 비트코인 채굴업체 비트마인에서 가상통화 채굴을 위해 수많은 컴퓨터를 작동하고 있는 모습.
혹시 앞으로 비트코인의 가격이 안정될 가능성은 있을까? 회의적이다. 비트코인을 사려는 사람들마저 그 가격이 안정되기보다는 급격히 오르기를 원한다. 시장경제에서 가격이 붙는 모든 것에는 나름대로 ‘현실적 근거’들이 있게 마련이다. 스마트폰의 가격은 그 성능을 기반으로 수요·공급에 따라 움직인다. 증권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느냐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원화나 달러화 같은 통화의 가치는, 그 나라 경제가 얼마나 건실한가에 영향을 받는다. 비트코인에는 그런 ‘근거’가 없다.

글로벌 각국은 지난 수년 동안 비트코인 등 가상통화의 규제 기준을 짜기 위해 골머리를 앓아왔다. 무엇보다 가상통화의 정체를 규정할 수 없었다. 유사 화폐로 볼 것인지 원자재(commodity)로 간주할 것인지도 쉽사리 합의되지 않았다. 감독기관별로 지침을 만들어도 법제화하기가 어려웠다. 미국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이 나라에서는 일단 가상통화가 자금세탁을 통해 범죄나 테러 조직으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거래소 등 가상통화 업체들을 ‘자금 서비스 비즈니스(MTB:money services businesses)’로 등록시켜 관리한다. MTB로 지정된 업체들은 고객의 신원과 거래 내역을 정확히 파악했다가 당국에 제공해야 한다. 위반 시에는 벌금은 물론 폐업까지 가능하다. 그러나 감독기관들 내에서도 의견 차이가 심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비트코인을 기반으로 만든 파생금융상품을 불허했다. 원자재 거래를 감독하는 상품거래위원회(CFTC)는 비트코인을 일종의 원자재로 간주하고 이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선물(先物) 상품을 허용했다. 미국 국세청의 지침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자산(property)이다. 비트코인으로 인한 수익에 자본이득세를 부과하겠다는 의미다.

일본·독일·오스트레일리아 등 다른 국가도 정도는 다르지만 나름의 규제 원칙 아래 가상통화를 제도적 틀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투기로 인한 금융 불안정과 소비자 피해는 방지해야겠지만 자칫 가상통화의 기반인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까지 차단할 수 있다는 우려가 세계 각국의 공약수다. 이런 측면에서 가상통화의 대표적 거래처 중 하나인 한국에서 어떤 ‘합리적 규제 틀’이 제시될지는 세계적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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