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를 좋아했다. 그래서 컴퓨터공학과로 진학했다. 시도 프로그램도 한정된 언어를 조합해 새로운 문맥을 만드는 일이라고 여겼다. 어려운 책을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될까 싶어 학회에 들어갔다가 당시만 해도 대학가에 흔했던 ‘나쁜 선배’를 만났다. 1999년 5월1일이었다. 처음 참여해본 노동절 집회에서 떠밀려 선두에 섰던 대학 1학년생은 다짐한다. ‘때려죽여도 다시는 이런 일 하지 말아야지.’ 그런데 무대에서 들려온 목소리들이 오래 귓가에 머물렀다. 아직 몰랐던 세상이 거기에 있었다.

홍진훤씨는 그날 이후 ‘집회 덕후’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경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오늘은 무슨 집회가 있는지 살폈다. 무슨 집회인지도 모르면서 ‘오늘은 여기 가보자!’ 하고 혼자 나섰다. 낯선 사람들 틈에 멀뚱히 앉아서 이야기를 듣다가 집에 돌아오는 날들이 이어졌다. 가끔은 학교 가는 걸 잊기도 했다. 경찰과 집회 참가자 사이 충돌은 그때나 지금이나 잦았다. “제가 눈치가 빨랐어요. 쓱, 보니까 카메라 들고 있는 사람들은 뭔가 안전해 보이더라고요 (웃음). 심심하기도 해서 카메라로 집회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시사IN 신선영사진작가 홍진훤씨는 오는 2월 전시-언론 형태로 발행되는 월간 〈프레스센터〉를 창간한다.
사진 외에도 영상, 책 편집, 홈페이지 제작 등 할 수 있는 일을 닥치는 대로 하며 생계를 잇고 20대를 보냈다. 그 모든 일을 할 줄 알았기 때문에 했던 건 아니다. 누군가 이런저런 일을 할 줄 아느냐고 물으면 일단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 툴(tool)을 공부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몇 다리 건너 아는 이로부터 홈페이지 제작 의뢰가 들어왔다. 사진 사이트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사진에 관심 있느냐고 묻는 ‘아저씨’에게 홍씨가 무심하게 답했다. “저도 사진 찍어요.” 그는 홍씨에게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다. 홍씨의 사진을 본 그가 말했다. “우리 홈페이지 그만하고 사진이나 같이 찍읍시다.” 제안한 이는 조성수였다. 한국 보도·다큐멘터리 사진계의 ‘전설’로 불리는 사람이지만, 누군지 몰랐다. 몇 달 뒤 홍씨는 조씨가 운영하는 국제 보도사진 에이전시 ‘아틀라스 프레스’ 소속 기자가 되었다.

홍씨가 찍은 사진은 아틀라스 프레스를 통해 외신으로 팔려 나갔다. 그러던 중 2009년 1월20일 발생한 용산 참사를 거치며 짧은 기자 생활을 정리했다. 사진으로 세상을 고발하고 어쩌면 바꿀 수도 있다고 믿었던 “철저한 포토저널리즘 신봉자”였던 홍씨는 사진 앞에서 처음으로 흔들렸다. “내가 이상한 시스템 안에 들어와 있구나, 그때 처음 짐작했던 것 같아요. 용산에 이틀 동안 갇혀 있으면서 내가 직접 봤어요. 너무 큰 이 사건의 현장을. 내가 보고 느낀 것과 내가 찍은 사진과 이 사진이 언론을 통해서 보이는 게 너무 달랐어요.” 사진은 불행의 스펙터클을 전시하는 용도로 활용됐다. 사진이, 사람들에게 참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보다 참사의 의미를 정의해버리고 ‘여기까지만 생각해라’는 식으로 강요하는 도구로 느껴졌다.

ⓒ연합뉴스서울 종로구 ‘독스’에서 〈프레스센터〉 창간 준비호 ‘송구영신’이 1월14일까지 열렸다. 1954년부터 1999년까지 일간지 신년호의 1면 보도사진을 모았다.
현장이 주는 ‘생각’을 찍는다

“우선은 때려치우자 했죠.” 자발적으로 멈춘 자리에 기자라는 직함 대신 홍진훤이라는 이름을 걸었다. 용산에서 틔운 의심을 강정 해군기지로, 밀양 송전탑으로, 일본 오키나와와 후쿠시마로 이어갔다. 세월호 학생들의 수학여행 일정표대로 제주를 방문하기도 했다. 사진 스타일도 완전히 변했다. 그의 사진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 대신 사람이 떠난 자리를 찍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기에 어디든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찍기보다는 현장이 주는 생각을 찍었다.

“습관 같은 건데,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거기에 제가 없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그래서 보통은 일단 가봐요. 무엇과 무엇이 충돌하고 있고 불화하고 있는지를 보는 게 제 작업의 원천 같은 거라서 최대한 많이 가요. 많이 보고, 많이 듣고, 술도 마시고(웃음).”

지난 10년, 개인 작업을 하는 일만큼이나 많은 기획서를 썼다. 한줌이나 될까 싶은 젊은 보도·다큐멘터리 사진작가들을 모아서 뭐라도 도모하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숨 쉴 구멍’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정형화된 보도사진 말고, 낯설고 이상한 사진들이 어딘가에는 노출돼야 해요. 그런 것들을 보면 분명 깨닫는 게 있어요. ‘아 이렇게 찍어도 되는구나’ 하는. 새로움이라는 것도 여지가 있어야 튀어나올 수 있잖아요. 사진과 관련된 쪽은 아예 ‘대안’이라는 영역이 없어요. 누구도 뭘 해주지 않는데 내겐 필요해요. 그럼 어떡해요. 직접 할 수밖에 없잖아요.”

포트폴리오 공유 사이트 ‘4zine’을 열고 사진작가들을 모았다. 전시 공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동료 김익현 작가와 함께 서울 창신동 꼭대기에 ‘지금여기(nowhere)’를 열었다(현재는 작업실로만 사용한다). 작품 걸 공간이 없을 때는 길거리를 활용했다. 세월호 참사 기록 작업을 해온 사진작가들을 모아 서울 광화문에서 국회까지 4시간16분 동안 각자의 작업물을 들고 걸었다. 도보 전시였다. 사진으로 먹고사는 방식을 궁리하면서 ‘더 스크랩’이라는 사진 페어를 2년째 열고 있다. 옥션이나 갤러리 등 기존 유통 구조가 아닌 새로운 사진 판매 경로를 개척하기 위해서다. 2017년 더 스크랩에는 입장료 3000원을 낸 관람객 약 1600명이 방문해 사흘간 장당 5000~6000원인 사진 5300여 장을 구매해갔다.

2018년에는 시사 월간지 〈프레스센터(Press Center)〉를 창간한다. 재개발로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서울시가 조성한 돈의문박물관 마을의 3층짜리 건물 한 동을 한시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35. 제안받은 공간을 보자마자 ‘저널리즘’을 떠올렸다. “1층이 일종의 쇼윈도잖아요. 옛날에는 신문사 앞에 가면 게시판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게시판 유리막을 사이에 두고 신문을 보던 풍경이 떠올랐어요.”

입주가 결정된 후 전·현직 기자들을 모아 다큐멘터리의 줄임말인 ‘독스(docs)’라는 임시 그룹을 꾸렸다. 월간 〈프레스센터〉는 읽고 소장하는 잡지가 아니라 ‘보는’ 잡지다. 보도사진을 주제로 지면이 아닌 공간을 활용해 전시-언론 형태로 발행된다.

2월 정식 창간을 앞두고 1월14일까지 창간 준비호 ‘송구영신’을 선보였다. 1954년부터 1999년까지 일간지 신년호 1면에서 반복되는 사진과 1999년 12월31일 뉴스 화면을 모았다. “공간이 작기도 했지만, 아카이브해보니 새천년 전까지 사진들이 훨씬 재밌어서 기간을 한정했어요. ‘1월1일자 신문은 왜 뜨는 해 사진으로 시작하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건데 그게 그렇게 오래된 문화가 아니었어요. 독재정권에서는 권력자들의 사진이, 외환위기 직전까지는 경제 발전을 주제로 한 사진이었고 그것이 해 사진으로 이어졌더라고요.” 모아놓고 보니 언론이 어떤 방식으로 이 세계를 축적해왔는지가 한눈에 보였다.

텍스트에 종속되지 않는 보도사진

별도 리플릿을 만들거나 사진설명을 따로 붙여두지 않았다. 다소 불친절한 건 의도했다. 텍스트로 사진이 ‘요약’되기 보다 이미지가 질문하길 바랐다. “신년호 신문 1면이라는데 반복적으로 정치인 사진이 나오잖아요. 사실 그 이상함이 중요하거든요. 이게 언제 무슨 사진이라는 설명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독자가 이미지의 반복을 이상하게 여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종이 지면은 온라인으로, 다시 또 모바일로 축소되고 결국 사라지는 추세다. 종이 위가 아닌 3차원 공간에서라면 어떨까. 홍씨는 이것도 일종의 언론이고, 대안 언론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걸 〈프레스센터〉를 통해 증명해보고 싶다. 그동안의 보도사진은 텍스트의 보조적 성격으로 지면에 배치되어 사건과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욕망을 대리해주곤 했다. 그렇게 단발성으로 소비되는 고만고만한 보도사진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이곳에서 만들어보려 한다. 이미지를 중심으로 텍스트에 종속되지 않는 전시-매체를 만들겠다는 야심은 한국 보도사진의 풍경을 바꿀 수 있을까. 동시대 보도사진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지금 시작됐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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