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문화시설이 서울보다 3배 윤택해?
  • 이상원 기자
  • 호수 538
  • 승인 2018.01.09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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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문화시설 통계가 발표되면 지역 언론과 지자체가 들끓는다. 각 지자체의 인구 대비 시설이나 문화시설 수 등 기준에 따라 문화 격차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책 빌리기, 미술관에서 전시 보기, 문예회관 음악회 감상하기, 주민센터 강의 듣기 등. 이 일정의 무게가 누구에게나 같지는 않다. 주된 변수는 거주지다. 한나절 걸리는 ‘일상’으로 여긴 이는 서울시민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하루를 통째  로 써도 소화하기 어려운 ‘여행’으로 보는 이들은 대개 지방 소도시에 산다. 문화시설이 수도권 대도시 위주로 편중되어 있어서다.

문화 격차는 통계에서 확인된다. 2017년 10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의당 송기석 의원은 “문화기반시설이 수도권에만 집중되어 있다”라고 주장했다. ‘문화기반시설’은 도서관·박물관·미술관·문예회관·지방문화원·문화의집을 묶어 이르는 용어다. 2017년 1월 기준, 전국 문화기반시설의 36.3%는 수도권에 있다. 서울에는 미술관 39곳이 있는데, 6개 광역시(인천·부산·대구·광주·대전·울산) 미술관 수를 다 합쳐도 28개밖에 안 된다. 지자체 단위로는 차이가 더 극명하다. 229개 시·군·구 가운데 수도권 12개 지자체가 문화기반시설 보유 상위 20위 안에 든다. 하위 20개 지자체 중 17개 단체는 비수도권에 있다. 1위인 서울 종로구에는 64개 문화기반시설이 있다. 229위 인천 옹진군에는 1개, 공동 224위 5개 지자체에는 각각 3개씩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영화관 없는 시·군·구 역시 66곳에 이른다.

예술 활동의 격차는 더 극명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가 펴낸 〈2015 문예연감〉은 매해 전국 예술 활동을 분석한 자료다(아래 〈표 2〉 참조). 문예연감의 ‘예술활동지수’ 항목은 문학·시각예술·국악·양악·무용·연극 6개 분야의 지역별 실행 건수를 비교했다. 기준점인 서울을 600으로 놓았을 때, 최하위인(세종 제외) 충북의 예술 활동은 그 40분의 1에 불과하다. 2위와 3위를 차지한 경기도와 부산 역시 서울의 4분의 1, 6분의 1 수준이다. 서울에 특히 몰린 분야는 문학 출판이었다. 전체 문학 출판 가운데 72.5%가 서울에 집중됐고, 경기·인천을 더하면 90% 이상에 이르렀다.

그런데 두 자료 모두 ‘지역별 인구 대비’로 따지면 묘하게 바뀐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7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에 따르면, 인구 100만명당 문화기반시설 수는 제주, 강원, 전남 순서로 많다. 최하위는 부산이 차지했고, 서울은 6위로 낮은 편에 속한다. 예술 활동도 그렇다. 〈2016 문예연감〉에서 문예위는, 예술활동지수 항목을 ‘인구 10만명당 문화예술 활동 건수’ 항목으로 대체했다. 기존 예술활동지수 방식으로 따졌을 때 서울의 5%를 겨우 넘긴 제주는, 10만명당 수치 면에서 서울에 필적한다. 보고서는 이 수치에 따라 제주를 “문화예술 활동을 양적으로 풍족하게 누리고 있는” 지역이라고 쓴다.

매해 발표되는 문화시설 통계에 지역 언론과 지자체는 들끓는다. 2017년 조사가 발표되자 부산·경기 등 인구 대비 문화기반시설 수가 낮은 지역의 일간지들은 ‘문화시설 턱없이 부족’ ‘문화 불모지’라고 썼다. 반면 인구 대비 시설이 많다고 발표된 지역의 언론들은 ‘수도권 중심 통계’ ‘착시 현상’이라고 비판했다. 이 지역은 인구 대비 통계 대신 문화시설 총수 통계를 근거로 문화 격차를 지적했다.

인구를 감안해 가공한 통계가 지역 간 문화 격차를 정확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문화시설의 특수성 때문이다. 학교나 병원, 소방서와 달리 문화시설은 포화되는 일이 드물다. 설령 가득 차더라도 문화 서비스는 그 질이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전시시설은 찾는 사람이 많아야 가치가 유지된다. 그래서 이런 시설은 되도록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을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인구 기반 통계를 근거로 ‘강원도의 문화시설은 서울시의 3배 이상 윤택하다’고 주장할 수 없는 이유다.

‘수요’와 ‘접근성’을 만족하는 통계를 내려면

지역 주민의 ‘체감’에 가깝게 통계를 내려면 여러 요소를 따져야 한다. 2015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펴낸 ‘지역 특성을 고려한 문화기반시설 배치 방안 연구’는 예시가 될 법한 시도를 했다. ‘입지지수(positioning index)’라는 수치를 고안한 것이다(아래 〈표 1〉 참조). 현존 문화기반시설의 서비스 범위, 지역 인구와 연령대, 지자체의 재정의존도를 일정 비율씩 감안해, 어디에 어떤 시설을 확충해야 할지 산출했다. 단순 통계에는 빠진 ‘수요’ 문제와, 인구 대비 통계가 놓치는 ‘접근성’ 문제 모두 어느 정도 해결이 된다. 이 방식에 따르면 문화기반시설을 최우선으로 확충해야 할 지역은 강원·전남·경북 지역이었다. 반면 부산이나 광주 같은 일부 광역시는 사정이 조금 나았다.

문재인 정부의 문화 정책은 문화 격차 해소에 방점이 찍혔다. 2017년 7월 발표된 100대 국정과제에는 ‘지역과 일상에서 문화를 누리는 생활문화 시대’가 들어갔다. 같은 시기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한 토론회에서 “문화는 삶 그 자체이며, 지역 문화가 곧 문화 전부다”라고 연설했다. 지난 12월7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문화비전 2030’ 8대 정책의제에도 ‘지역  문화 분권 실현’이 포함됐다. ‘문화 융성’이라는 허울 아래 단편적 진단만 반복해온 지난 정부와 달리, 이 정부가 정확한 분석을 바탕으로 각론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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