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가 그 많은 축제를 만든 까닭
  • 장일호 기자
  • 호수 538
  • 승인 2018.01.0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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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은 굴뚝 없는 산업이다. 관광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나섰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다. 난립하는 축제는 지역 문화를 경쟁력으로 삼기보다 차별성 없는 콘텐츠만 재생산한다.

가수 김창렬씨(DJ. DOC 멤버)의 이름은 ‘창렬하다’라는 조어로 더 많이 불린다. 2009년 김씨가 광고했던 제품이 비싼 가격에 비해 내용물이 부실하다는 점이 지적됐고, 누리꾼들이 이를 두고 ‘창렬하다’라고 말하면서 시작됐다.

최근에는 창렬하다를 대체할 신조어로 ‘평창하다’가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린다. 오는 2월 개최되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바가지 올림픽’이라는 논란에 휩싸이면서부터다. 한 여행업체가 내놓은 1박2일 관람 패키지가 100만원이 넘는 점이나, 수십만원에 달하는 숙박비나 주차비도 도마 위에 올랐다. 12월26일 대한숙박업중앙회 평창군지부와 평창군 펜션민박협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13만~16만원으로 숙박 요금을 책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성난 여론을 진화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17년 해외여행을 떠난 국민은 약 2600만명이었다. 2016년에 비해 400만명 늘어난 수치로 국민 둘 중 한 명이 해외로 떠났다. 한국의 인구 대비 출국률(50%)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같은 현상을 지적하는 기사에 달리는 댓글은 ‘비꼼’ 일색이다. “나도 부자 되어서 (또는 돈을 많이 벌면) 국내 여행을 하고 싶다” “가난해서 해외여행 간다”라는 식이다. 국민들은 같은 돈과 시간이 있다면 국내 여행보다 해외여행의 만족도가 더 높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시사IN 포토2014년 흑자를 낸 유일한 지역 축제는 강원도 화천 산천어축제였다.

관광은 ‘굴뚝 없는 산업’이라 불린다. 관광산업은 주변(숙박·음식·교통 등)으로 번져 경제적 파급효과와 고용 창출 효과를 가져온다. 2016년 7월 문화체육관광부는 관광산업을 국가 7대 유망 사업으로 선정하고 이를 집중 육성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 경제 발전 전략’을 발표했다. 중점 추진 과제는 관광 콘텐츠 다변화, 지역관광 활성화, 관광 인프라 정비였다. 특히 지역관광 활성화는 지역사회에 절박한 이슈다. 인구 감소와 산업 기반이 취약한 중소 도시는 관광산업 이상의 대안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를 극단으로 밀어붙인 경우가 내국인 카지노 출입을 허용한 강원랜드다(34~38쪽 기사 참조).

국내 관광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나섰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다. 외국인 관광객의 재방문 비율은 2012년 41.8%, 2013년 39.7%, 2014년 34.9%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2015년 국정감사). 방문 지역 편중도 심각해, 서울(80.4%)과 제주(18.0%)에 몰려 있다. 국내 관광객 사정도 다르지 않아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관광 총량은 늘었지만 지역 관광은 언급하기도 미미한 수준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업 선정 단계에서부터 잠재되어 있다.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너도나도 관광산업에 나선 결과 지역의 환경 및 문화를 고려하지 않은 천편일률적 관광지가 만들어졌다. 하드웨어 위주의 사업은 타당성 검토 부실로 이어지고, 결국 기존 시설이나 사업과 유사한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건물은 올라가는데 그곳에서 어떤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관리할지에 대한 계획과 구체성이 부족한 식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정치적 목적이나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지역관광 개발사업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지역 간 교통수단 연계성 미흡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강원도 대관령 양떼목장으로 갈 수 있는 버스는 1일 3회, 영월 한반도 지형 선암마을에 갈 수 있는 버스는 1일 2회 운영된다. 이는 국내 관광객이 승용차 위주로 여행하는 비율이 높고(75.5%), 외국인 관광객이 대도시 위주로 다니는 이유이기도 하다. 패키지 형태의 단체관광은 여행 만족감을 현격히 떨어뜨리는 식으로 구성되기 일쑤다. 현지 체류 시간이 짧아서 지역의 매력을 발견하기 어렵고 지역 내 경제 유발 효과도 낮다.

그나마 유적지나 자연풍광 같은 ‘천혜의’ 조건마저 없는 지역은 축제에 사활을 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1996년부터 10년 단위로 실시하고 있는 ‘한국 축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역 축제는 1996년 412개에서 2016년 1136개로 크게 늘었다. 난립하는 축제는 지역 문화 자체를 경쟁력으로 삼기보다 차별성 없는 콘텐츠만 재생산한다. 축제 개최 및 운영에 소요되는 경비는 대부분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며 상당한 예산을 투입한다. 2014년 기준 지역 축제에 투입된 예산은 모두 2914억원이었다. 그중 흑자를 낸 축제는 강원도 화천의 산천어축제가 유일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축제의 95.9%는 ‘관’에서 개최하는 만큼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꾸준하다.

2016년 국회사무처는 축제 유형을 ‘경제활성화 축제’ ‘지역 주민 화합형 축제’로 구분하고, 후자처럼 경제적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축제는 과감하게 없애야 한다고 보고했다. 지역 축제임에도 지역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고 유사 중복 축제가 많으며, 전문성이 부족하고 단순 이벤트 행사로 수렴된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역 주민의 참여는 줄어들고 심지어 주민이 소외되기도 한다. 지역 일자리 창출도 언감생심이다. 지역에서 축제를 열어도 돈은 일부 서울로 흐른다. 지역 축제 컨설팅을 담당했던 전직 홍보대행사 직원의 말은 지역 축제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예산 쪼개서 화장실 고치고 도로 정비하고 해봤자 힘만 들고 티는 하나도 안 나잖아요. 근데 축제는 ‘한 방’이거든요. 한번 하고 치울 수 있으니 깔끔하고…. 지자체는 언론에 기사 한 줄, 사진 한 장 실리는 게 목표예요. 지자체장 업적에 한 줄 추가할 수 있으니까. 예산은 보통 1년 단위이고 1년 안에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에서 ‘역사와 문화의 특이성을 고려하는 축제’가 가능하겠습니까? 이렇게는 앞으로도 불가능해요.”

행사·축제는 재정 비효율적


실제 한국의 축제는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1995년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투표로 선출되면서부터 지역 축제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14년 개최된 축제 중 83%가 1995년 이후에 처음 열렸다. 1995년 이전 시작된 축제는 191개에 불과했고, 1995년 이후부터 시작된 축제는 938개에 달한다.

결국 2016년 4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재정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는 10대 분야 중 하나로 행사·축제를 선정했다. 축제를 통폐합하고 예산을 축소하기 위해 2017년부터 도입된 제도가 ‘축제 예산 총액한도제’다. 물론 그 이전에도 지역 축제를 관리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2009년 ‘관광진흥법’ 제48조의 2(지역축제 등)를 신설했다. 그러나 축제 운영 내용을 정확하게 조문화해두지 않은 탓에 연관된 문화재청·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등 10여 개 부처에 상이하게 적용되었고 체계적 관리에도 실패했다.

지역 관광과 축제에 관해서는 일본을 참조할 만하다. 일본은 지역 축제를 지역 문화의 정수로 보고, 축제를 상품화하는 데 성공한 나라다. 일본어로 축제를 뜻하는 ‘마쓰리(祭り)’는 그 자체가 일본의 관광을 나타내는 대표 브랜드다. 1년 열두 달 각 지역에서 각각 다른 형태로 열리는 마쓰리는 국내외 관광객을 유인하는 주력 관광 상품이다. 1992년 일본은 ‘전통 축제 및 행사를 통한 관광 및 특정 지역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는데, 축제를 규율하는 별도 법제가 총 5장 15개 조항이고 매우 구체적으로 구성돼 있으며 별도의 시행령도 존재한다.

특히 일본의 ‘콘텐츠 투어리즘’은 눈여겨볼 만하다. 이는 관광의 패러다임을 뒤집었다. 지역에 존재하는 문화재(혹은 문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관광객을 모으는 게 아니라, 어떤 이유로든 관광객을 지역으로 오게 한 다음 지역을 보여주는 형태로 확장되고 전환됐다. 일본 역시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 관광이 주력이었으나, 콘텐츠 투어리즘은 지방의 작은 도시들을 새롭게 주목하게 만들었다.

ⓒEPA일본어로 축제를 뜻하는 ‘마쓰리(祭り)’는 지역 문화의 정수이자 ‘일본 관광’의 대표 브랜드다.

이를테면 도야마 현 난토 시에 위치한 애니메이션 제작사는 지역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 작품은 난토 시내에서도 한정된 장소에서만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시청할 수 있는데, 작품의 배경이 된 장소나 명소에서만 플레이되는 식이다. 그 과정에서 관광객에게 미션을 줌으로써 지역 주민을 만나게 하고 소통하도록 전략적으로 기획했다. 한국에서도 정식 발매되며 많은 팬을 보유한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1권 마지막 장에는 아예 배경이 된 가마쿠라와 에노시마 지도가 실려 있다. 가마쿠라는 도쿄에서 50㎞ 떨어진 지역이다. ‘일부러’ 가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지역으로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을 자연스레 유도한다.

신청과 동시에 마감되는 ‘명탐정 코난 미스터리 투어’(이하 코난투어)도 대표적이다. 2001년 처음 시작된 코난투어는 2005~2007년을 제외하고 매년 개최되고 있다. 2012년부터는 외국인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한국인은 2013년부터 신청할 수 있었는데, 그해 4100명이 코난투어에 참여했다. 일단 특정 지역을 무대로 <명탐정 코난>의 새로운 스토리를 개발해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으로 방영하고, 관광객들은 그 내용을 따라 지역을 방문해 미션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관광을 즐긴다. 철도패스(JR패스)가 포함된 투어키트 구입 후, 투어북 내용을 참고해 개최 지역의 관광지를 탐방하며 증언과 증거를 수집해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오는 관광객도 돌려보내는 한국 관광지

이 밖에도 각종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나 캐릭터를 지역 축제와 연계해 활용하거나 애니메이션 속 가상의 축제를 아예 실제 새로운 축제로 만들어버리는 등 일본에서는 다양한 유형으로 실험과 확대가 진행 중이다. 이는 지역이 가진 모든 장소와 대상이 지역의 자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관광과 축제는 익히 알고 있듯이 오는 관광객도 돌려보내는 형편이다. ‘한류’를 탄 드라마나 영화 촬영 장소를 찾아가 봐도 표지판이나 입간판 한두 개 덜렁 세워둔 게 전부인 경우가 많다. 그나마 관리가 되면 다행이지만 대개는 방치하곤 한다. 소문이나 방송을 타고 관광객이 몰려도 문제다. 대규모 외지 자본이 들어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매장이나 고층 숙박업소가 들어서 특색 있는 풍경을 해친다. 전라북도 군산시 경암동 철길마을이 대표적이다. <소중한 날의 꿈> <천년학> <홀리데이> 등 여러 영화의 배경이 된 철길마을은 관광객들이 몰리자 기존 건물의 철거가 진행되면서 옛 모습을 잃었다. 도심에서 떨어진 이곳을 굳이 찾을 이유가 더 이상 없어진 셈이다. 관광객이 몰리면 그 지역 주민들은 교통체증과 소음에 시달리기도 한다. 결국 관광 활성화가 지역 주민의 소득 향상이나 일자리 창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악순환만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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