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확신하거나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인간은 참 드물다. 오히려 자아 정체성의 혼란, 나아가 자아의 분열과 환멸을 겪고 사는 게 흔한 일이다. 언감생심 이 나라 이 민족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그 연유를 설명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대한민국은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빠른 산업화와 민주주의를 이루었다는 자부심이 강한 나라임과 동시에, 세계 최하위권의 국가지수가 즐비한 부끄럽기 짝이 없는 나라다. 우리의 정신 속에는 늘 자부심과 부끄러움이 혼재해서, 때론 열광(熱狂)하고 때론 냉소(冷笑)한다.

〈식민지 트라우마-한국 사회 집단 불안의 기원을 찾아서〉는 거울과 같은 책이다. 저자가 꼼꼼하고 촘촘하게 찾아낸 식민 치하 사실들과 인간 군상의 모습은 현재의 우리 모습과 자꾸 중첩된다.

식민지민의 삶이란 어떤 것이던가? 더러운 개돼지 취급을 받는 것이며, 스스로를 타고난 열등민(劣等民)이라고 내면화하는 것이며, 일상화된 모욕과 수치를 받아들여 스스로를 이등화(二等化)하는 것이며, 강자를 추종하고 닮아감으로써 자기도 일등민(一等民)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좌절이 거듭되고 폭압적 현실이 오래될수록 약자의 정신과 육체에는 강자(가해자)의 DNA가 이식될 수밖에 없다.

〈식민지 트라우마 -한국 사회 집단 불안의 기원을
찾아서〉
유선영 지음
푸른역사 펴냄
저자는 한국 사회의 ‘빛나는 표면’과 ‘이면의 어둠’을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흐름 속에서 파악한다. 사회 모든 부문에 침투한 권위주의, 부정과 부패, 국가와 제도에 대한 국민의 불신, 학벌주의와 서열주의, 한 인생의 성공이 물질로 환원되는 물질주의, 경쟁 위주의 사교육, 성형 한국의 외모주의, ‘갑질’이 만연한 폭력과 착취. 이 모든 부정적 현상의 뿌리는 생존 불안이며, 거기에서 싹튼, 자기 생명의 불안정성을 해소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이다. 그리고 우리가 ‘민족’이라는 감정공동체로서 겪었던 식민지 경험이야말로 이 거대한 불안과 욕망의 온상이다. 혈통 같고 문신 같은, 그래서 씻거나 지울 수 없는, 몸과 정신에 아로새겨진 이 깊은 상흔은 식민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성공과 실패의 심연(深淵)으로 작동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비극적으로 닮아가듯이 식민의 정신사는 ‘조국 대한민국’에서도 계속된 것이다.

언제라도 삶이 벼랑 끝에 몰릴 수 있고, 아무도 믿을 수 없어서 자식에게 올인하고, 소수자와 약자를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자기를 지킨다고 믿으며, ‘빨갱이’와 ‘쪽바리’를 말함으로써 늘 자신을(우리를) 피해(약자) 영역에 가두고 있다면, 감히 이 책을 민주시민이고자 하는 모두에게 권한다.

기자명 이근행 (MBC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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