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이름을 가진 할머니의 삶
  • 사진 안세홍·글 변영주(영화감독)
  • 호수 537
  • 승인 2018.01.08 11:0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4년 중국 무한(武漢·우한)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났다. 무한 인근의 당시 일본군 해군기지에서 강제로 위안소 생활을 했던 할머니들. 일본군은 전쟁이 끝난 후 그들을 방치해 이곳에 그대로 남겼다. 대부분 경상남도가 고향이지만, 한국전쟁 당시 모든 무국적 조선인에게 북한 국적을 취득하게 한 정책 때문에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삶은 밝았다. 중국 정부로부터 제국주의 피해자로 인정받아 지원을 받았다. 한국에 돌아온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에서 국가유공자급의 생활보조금을 할머니들에게 지급한 이후였다. 우리가 할머니들을 대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안세홍이수단 할머니는 과거의 상처로 아이를 낳지 못했다. 선물받은 인형을 아기라고 여겨 한시도 놓지 않았다.
ⓒ안세홍이수단 할머니는 1970년 평양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닿았지만 3년 뒤 연락이 끊겼다. 생전 고향에서 보내온 사진을 소중히 간직했다.
ⓒ안세홍1921년 조선인 이수단으로 태어나 한때 중국 오지에서 일본군 ‘위안부’ 히도미로 살았다. 2016년 중국인 리펑윈(李風雲)으로 생을 마감했다. 향년 95세.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