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층 빌라가 불안해 근처 단독주택으로 피신했다. 지진이 나면 근처 중학교 운동장으로 가야 하는데 다섯 살, 한 살 아이를 데리고 그 허허벌판에 서 있을 수는 없었다.
경주에 이사 오고 얼마 뒤 지진을 겪었다. 쿵 소리가 나고 천지가 흔들렸는데 규모는 3.2. 그날 우리 가족은 생존 배낭을 싸기로 했다. 현관 앞에 항상 놓아둘 생존 배낭. 다섯 살 윤슬이는 좋아하는 동화책 〈옥토넛 탐험대〉와 색연필을 유치원 가방에 챙겼고, 나는 기타 한 대를, 아내는 둘째의 분유와 이유식·기저귀·비상약·옷가지들을 챙겼다. 거기다 몇 가지 추가하니 우리 집 생존 배낭은 6개.
우리는 아이 둘을 안고 가방 6개를 들고 4층 계단을 바쁘게 뛰어내려와 빌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둔 차로 향했다. 이건 삶이 흔들리는 일이다. 불안은 끝이 없다. 경주 옆 포항. 그곳에도 생존 배낭이 현관 앞에 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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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빛을 따라
그 눈빛을 따라
사진 임종진·글 서효인(시인)
지금은 연락도 되지 않는 삼촌이며 숙모며 하는 동네 어른들이 모여 5공 청문회를 텔레비전으로 보던 날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젊은 그들이었는데, 어린 나에게, 우글우글 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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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선 ‘작은 거인’
다시 일어선 ‘작은 거인’
사진 박김형준·글 김민섭(사회문화 평론가)
고층빌딩 사이에, 나도 선다. 허리를 펴고 너희보다 꼿꼿이 선다. 너희가 내려다보지 않듯 나도 올려다보지 않는다. 그 골목골목마다 내가 있고 우리가 있다. 웃으면서 삶을 볶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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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라져야 하나요
우리는 사라져야 하나요
글·사진 장준희
미얀마 북서부 라카인 주(아라칸 주) 사츄리아 마을에 사는 일곱 살 맘모슈와. 지난 8월26일 소년은 불교도인 라카인족 민병대의 습격을 받았다. 칼로 베인 깊은 상처를 입은 소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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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지막 얼굴
우리의 마지막 얼굴
사진 성남훈·글 문태준(시인)
불이 사그라진다. 바람이 나간다. 혈액의 운행이 멎는다. 한 사람이 그렇게 우리와 이별한다. 파블로 네루다는 시 ‘죽은 가난한 사람에게’에서 이렇게 썼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