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그림책이 어느덧 그림책의 한 갈래로 자리 잡았다. 시는 대부분 한 페이지 안에 오롯이 들어가 깊은 호흡으로 이미지와 상념을 퍼뜨리면서 독자의 정서를 증폭시킨다. 그런 시가 열 개 이상의 장면으로 나뉘어 그림과 함께 길게 펼쳐질 때면 또 다른 세계가 떠오른다. 그림 작가가 구현하는 생생한 비주얼 속에 어떤 해석이 들어 있는지, 글과 그림이 무엇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영역을 확장하는지 보는 즐거움을 시 그림책은 선물한다. 서사와 캐릭터가 확실한 동시가 처음에는 주요 소재였지만 이제는 추상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어른 시’도 들어오면서 그림책의 지평을 넓힌다.
같은 말을 다르게 하는 글과 그림
이 시의 중심 명제는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린다, 흔들려 흔들리지 않는다’는 역설, 그러니까 거꾸로 말하기,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기이다. 그림도 이 명제를 따라간다. 글에서 가장 명확한 영상인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 형’이 그림에는 없다.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에는 무성한 가지 대신 여백이 무성하다.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는 어떻게 그릴까? 안 그린다! 그런데도 (혹은 그래서) 나무 따라 조마조마 흔들리던 마음이 이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우직!’ 하면서 균열이 이는 것 같다. 흔들리지 않고 서 있는 나무의 중심을 깊은 뿌리로, 그늘을 다스리며 숨을 쉬는 일을 나뭇잎 한 조각 물고 가는 작디작은 개미로 표현한 것도 일종의 역설로 보인다. 그러면서 나뭇잎의 흔들림은 나무의 흔들리지 않음으로, 나무의 삶은 인간의 삶으로 연결된다.
그렇게 글과 그림은 같은 말을 다른 방식으로 해나간다. 나무의 흔들림, 인간이 결혼하고 자식 낳는 일이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라는 결론에서 글은 멈추지만 그림은 혼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가지에서 솟아나는 새 이파리 대신 낙엽을 보여주는 것이다. 새까만 낙엽, 반이 잘린 낙엽. 명백히 이파리의 죽음이다. ‘이파리 틔우는 일’이라는 글에 그 이파리의 죽음을 보여주는 그림은 역설의 정점이다. ‘스러지려 틔운다, 틔우려 스러진다’는 명제를 전하는 것 같다. 흔들림과 흔들리지 않음이 그렇게 연결되고 삶과 죽음이 잇닿아 있듯, 글과 그림이 그렇게 어울리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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