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생들의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졸업생들을 대표해 명예사관장(학생회장)이 연단에 올라 거수경례를 했다. 지난해 1월27일 열린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대학 졸업식. 학생회장은 의례적인 답사를 하다 갑자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68기 동기 여러분! 오늘 자리에서 꼭 언급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습니다. 졸업식에서 언급하기에는 다소 무겁지만, 우리들에게 가깝게 관련된 사건입니다. 2014년 4월16일 다들 기억하시나요? 바로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날입니다. 이날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진도 앞바다에 수장되었습니다. 온 국민이 가슴 아파했던 이 사고를 우리들은 누구보다 오래도록 기억했으면 합니다. 다시는 이처럼 무책임한 인명 사고가 바다 위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실력은 물론 소명감을 크게 갖기를 바랍니다. 설령 사고가 나더라도 무책임하게 회피하거나 봐주기식 대응을 답습하지 않는 용기와 힘을 기르고 늘 약자의 편에 서서 생각하며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따뜻한 68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답사의 절반 이상을 세월호 참사에 할애한 문원준 학생회장(26). 그는 3등 기관사로 대체복무를 하기 위해 스텔라데이지호에 올랐다. 3월31일 한국인 선원 8명과 필리핀 선원 14명이 포함된 실종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2014년 4월16일. 그날 이후 우리 사회가 바뀐 줄 알았다.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을 되돌아보면 착각이었다. 선사인 폴라리스쉬핑은 사고가 난 지 12시간이 지난 뒤에야 해경에 신고를 했다. 가족들에게는 16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렸다. 베껴 쓰기 경쟁을 하던 언론은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미군 초계기가 사고 직후 찍은 구명벌 추정 사진을 기름띠라고 확정 보도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아직도 거리에 있다. 사고 뒤 9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정확한 침몰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가족들은 동일한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폴라리스쉬핑에는 스텔라데이지호처럼 20년 이상 된 노후 선박이 16척가량 운항 중이다. 실종자 가족들의 주장을 한 귀로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다.

지난 9월 김영미 편집위원이 남미로 현장 취재를 가겠다고 했다. 김 위원은 “한국 기자가 한 명이라도 현장 취재를 했다는 기록이라도 남겨야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우루과이-아르헨티나-브라질-프랑스 4개국을 돌며 67일간 이어진 추적기를 이번 커버스토리에 담았다. 200자 원고지 77쪽 분량이다. 문원준 학생회장의 답사대로 〈시사IN〉은 “이 사고를 누구보다 오래 기억”하고 기록하겠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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