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건강검진 시즌이다. 나도 받았다. 별달리 이상이 없겠거니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검진에 임했다. 이번에는 대장 내시경이라는 큰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으나 나름 성실히 넘어섰다. 나이를 잊은 채 살고 있으나 마흔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자꾸만 건강을 고려하게 되고 그 덕에 건강하기 위해 챙겨야 할 건 챙긴다. 그즈음 부서 회식을 했다. 술잔을 앞에 두고 있자니 저절로 건강검진이 화제가 되었다. 금주와 금연을 이미 수년째 권유받아온 이부터 헬스와 수영으로 몸을 만들어온 이까지 모여 있으니 대화는 자연히 이미 버린 몸, 앞으로 버리게 될 몸, ‘너는 아직 젊구나’ 늙어가는 신체와 질병이라는 고비를 허허실실 긍정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하듯이 술은 마실 수 있을 때 마셔야 하고 노는 것도 힘이 있어야 논다며 회식 자리는 늦도록 이어졌다. 건강하고자 했던 대화들은 직장 생활의 애환으로 바뀌었다가 학창 시절 추억담으로 흘러갔다. 젊은 시절에 건강하지 않았던 이들이 없었다.

얼마 뒤 건강검진 결과 보고서가 하나둘 도착했다. 우리 부서의 3분의 2는 대체로 꾸준한 운동이 필요한, 뻔한 몸들이었다. 내가 받은 의사의 판정 소견은 이러했다. ‘요추 추간판 탈출증, 발적성 위염, 골감소증, 고지혈증, 영양평가 부족, 신체 강도 허약, 근육량 부족, 체지방률 비만….’ 소견을 확인하고 나자 내년에는(내일이 아니다!) 기필코 운동하자는 마음이 생겼다. 동료들과 소견을 공유했다. 표준에 다가선 몸과 표준에서 멀어진 몸과 드물지만 표준을 넘어선 몸들을 가지고 우리는 산다. 점점 거북목이 되어가고, 내장 지방으로 무거워지며, 지방간 수치는 높아지는 ‘앉은뱅이 사무원’들의 몸이란 이토록 한결같다. 사무원이 되기 전 우리 몸은 얼마나 생활력이 강했던 걸까. 그때는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식사를 때우고 아르바이트하며 밤낮으로 몸을 혹사해도 힘이 넘쳤더랬다. MSG의 힘이었으나 그래도 기운찼다. 점차 생활에 지는 몸이 되어가는 동료가 말했다. “우리 같은 몸들은 다시 태어나는 게 빠르겠는데요.”

ⓒ시사IN 윤무영서울의 한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있는 직장인들.

다시 태어날 수 없다면 다시 태어나기 위해 애는 써보기로 했다. 식단 조절을 위해 그날 장바구니에 채소와 과일과 버섯과 두부, 멸치 같은 것들을 평소보다 더 담았고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인간이고자 선식과 두유와 우유와 몸에 좋은 시리얼을 샀다. 장바구니가 무거워질수록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잠시지만 이런 기분이 또한 지금의 몸으로 내일을 살게 하는구나 싶었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던 이가 중얼거렸다. “며칠이나 갈까.” 그러게, 건강검진의 효능은 며칠이나 가는 걸까. 어쩌면 많은 이들에게 연말 건강검진이란 1월의 작심삼일을 준비하기 위한 해프닝 같은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 “그래도 회사에서 종합검진을 해주니 좋네” 의료보험 지역가입자인 민호씨의 말은 환기하는 바가 있었다.

건강 앞에서 참 사회적인 인간들

‘직장인 건강검진 시즌’이라는 테두리 속에 포함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나 또한 오랫동안 그런 노동자였다. 자신들의 무지외반증을 전시하면서까지 건강권을 보장하라고 외친 백화점 판매 사원들이나 연말이면 공연 연습에 더 힘써야 했던 간호사들과 취업률 저하 때문에 학교로 복귀하지 못하고 학교 밖에서 목숨을 잃은 현장실습 고등학생 노동자 모두 건강을 챙기는 삶보다는 염려하기만 하는 삶을 사느라 바빴을 것이다. 그들에게 건강검진이란 무슨 의미였을까.

연말이면 나와 내 가족과 친구, 동료들의 건강을 염려하고 챙기게 된다. 건강 앞에서 우리는 참 사회적 인간인 셈이다. 사회적 차별과 혐오와 불안의 경험 등은 어떻게 우리 몸을 아프게 하는 걸까. 모든 노동자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건강검진이 아니라, 해서 득이 되는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다는 건 건강의 평등을 시작하는 일일까, 아픔의 평등을 시작하는 일일까.

기자명 김현 (시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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