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의 미국 진출이 연일 온갖 지면을 메우고 있다. 그 시작은 작년 가을 ‘빌보드 200’ 차트의 26위 진입이었다. 빌보드 ‘톱 소셜 아티스트’ 수상,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퍼포먼스에 이어 미국의 간판 토크쇼들을 차례로 순회하고 있다. 최근에는 빌보드 ‘핫 100’ 28위에 올랐다. ‘빌보드 200’과 ‘핫 100’은 빌보드의 중심축으로 다른 차트와는 그 무게가 확연히 다르다. 특히 40위권 이내는 통칭 ‘톱 포티(top 40)’라 불리며 미국 주류 시장의 트렌드와 직결되는 실질적 히트로 간주된다. 연말에는 ABC의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에 참가한다. 이 모두는 미국 현지 정상급 스타들이 따내는 배지들이다. 방탄소년단은 케이팝(K-POP)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점을 기록한 뒤 금세 매번 갈아치워 버리고 있다.

그에 비해 국내에서는 의아한 목소리도 많다. 케이팝을 다루는 음악평론가나 저널리스트라면 누구나 ‘방탄소년단이 왜 인기냐?’는 질문을 끝없이 받아온 지 1년이 넘었다. 아이돌 그룹의 코어 팬덤과 대중 사이에 온도 차가 있는 것이야 흔하다.

ⓒAP Photo11월19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2017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방탄소년단이 공연하고 있다. 이 시상식에서 케이팝 공연이 펼쳐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장 크게 갈리는 이유는 아마도 이들의 리얼리즘일 것이다. 데뷔 초기 통칭 ‘학교 3부작’이라 불리는 세 장의 음반(2013~2014)은 학생의 삶을 주제로 했다. 답답한 학교 생활이나 입시, 막연한 꿈 등의 주제가 등장했다. 〈상남자〉 (2014)에선 교복도 입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H.O.T., 젝스키스를 경험한 이들에겐 낯익지만 이제는 드물어진 기호들이었다. 성인이 된 이들이 이제는 편안하게 ‘그저 예쁜 것’을 즐기고 싶어 할 때, 낯익음은 낯간지러움이 되기도 했다. 반면 다른 이들에겐 신선했다. 국내에선 2015년 한 인터넷 매체 설문조사에서 ‘초통령’ 1위에 꼽힌 일이 있다. 2014년 북미 지역 케이팝 컨벤션인 ‘케이콘’에서 예상을 뛰어넘은 열광적 반응을 얻고, 해외 케이팝 팬덤 내에서는 이미 엑소와 동급의 인기를 구가하기 시작했다.

힙합 아이돌은 종종 힙합의 진정성이나 날것을 콘텐츠 속에 끌어들인다. 이때 방탄소년단의 선택은 ‘힙합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그런 인물이 실제로 할 법한 말들로 내용이 채워졌다. 너무 구체적인 나머지 패딩 점퍼(‘등골 브레이커’), 2학년 진급(‘2학년’)을 소재로 하거나, “여자들은 방정식 우리 남자들은 해”(‘호르몬 전쟁’)처럼 졸업하면 잊어버릴 교과목 언어를 쓰기도 했다. 멤버들의 출신 지명이나 방언도 뚜렷하게 드러냈다. 역시 한때 ‘아이돌 좀 파봤다’는 이에겐 자칫 ‘좀 잘하는 지망생’처럼 여겨질 리스크도 있었다.

SNS 활용해 리얼리티 쇼처럼 중계

그것이 아이돌 콘텐츠와 자연인의 전기적 서사를 긴밀하게 엮어 함께 제시해, 좀 더 큰 몰입감과 현실감을 제공했다. 이어진 통칭 ‘화양연화 연작’ (2015~2016)에서 절망에 빠진 청춘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식도 정확히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 “논현동 3층”의 “17평” 연습실에서 “연말 시상식 선배 가수들 보며 목메”고(‘이사’), 땀내 나는 작업실에 갇혀 있으며(‘쩔어’), 사랑의 좌절 앞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저 달리기만 한다(‘RUN’). 당시 소위 ‘중소 기획사’ 출신의 덜 인정받은 아이돌이라는 측면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대목들이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에 대해 모두가 이들의 팬덤인 ‘아미(ARMY)’를 반드시 언급한다.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방탄소년단의 출연을 알린 문구가 “아미, 이뤄졌어(ARMY, It’s happening)”였을 정도다. 이른바 ‘화력’이 유달리 폭발적인 아미는 SNS를 기반으로 한 느슨하지만 뜨거운 연대체다. 그리고 물론 이는 방탄소년단이 아미와 SNS 공간을 공유하며 유대를 강화하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이제는 아이돌 콘텐츠의 핵으로 부상한 네이버 ‘V 라이브’가 2015년 론칭 당시 ‘비교적 쉬워서’ 방탄소년단을 섭외했다는 뒷이야기는 유명하다. 12월1일 현재 678만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방탄소년단의 V 라이브 채널에는 30개월간 영상 약 400편이 등록됐다. 5년 전 개설된 유튜브의 방탄TV (BANGTANTV) 채널은 775편이다. 팬들에게는 끝없는 즐길 거리가 제공된다.

그 안에 담긴 것은 다른 아이돌들의 ‘예쁜 모습’이나 정돈된 인사말이 아니다. 출근하듯이 게재되는 영상들은 방탄소년단의 삶을 리얼리티 쇼처럼 보여주고, 그 안에서 멤버들은 요즘 좋아하는 음악이나, 진지한 사안에 대한 의견을 들려주기도 한다. 래퍼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방탄소년단은 이 표상을 SNS 활동에서도 구현한다. 음반의 리얼리즘이 SNS를 통해 확장되는 셈이다. 방탄소년단 콘텐츠에 최적화된 길이다. 아이돌이라면 누구나 SNS 활동을 하지만, 방탄소년단의 그것이 유난히 큰 파급력을 지니는 이유다.

이들의 방송 출연이 적은 것을 두고 팬덤에서는 중소 기획사의 설움이라고도 한다. 이들의 뉴미디어 친화성은 방송이라는 ‘꿩’에 대한 ‘닭’에 불과하지 않다. 스마트 기기에 익숙한 세대, 그리고 국내 방송에 접근성이 낮은 해외 팬들을 정면 겨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쩌면 올드 미디어인 텔레비전이나 신문·잡지가 방탄소년단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도 일부는 이곳에 있을지 모른다.

방탄소년단은 긴 서사이다. ‘학교 3부작’에서 래퍼를 꿈꾸던 고등학생이 처절하게 노력해 인정받는 이야기가 〈윙스(Wings)〉 앨범(2016)까지 이어진다. 빌보드 수상을 기점으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탄다. ‘DNA’는 케이팝의 유전자를 지닌 채 영미권 보이그룹으로 태어난 듯하며, 그래서 영미권 보이그룹에겐 없는 송곳니가 ‘마이크 드롭(MIC Drop)’에서 드러난다. 아이돌의 음반 한 장이 타이틀곡 콘셉트를 담은 단행본이라면, 방탄소년단의 디스코그래피는 열 권 넘게 아직 연재 중인 자전적 장편소설인 셈이다(거기에 매우 수북한 뒷이야기가 온라인 부록으로 제공된다). 그것도, 케이팝 아이돌이 미국의 정상에 선다는 과격하게 스펙터클한 이야기로서 말이다.

‘방탄소년단이 왜 인기냐?’는 질문은 사실 잘못됐다. ‘〈방탄소년단〉이라는 작품을 어디부터 감상하면 좋으냐?’가 되어야 한다. 이에 답하기 위해 〈화양연화 pt.1〉 앨범(2015)을 권하고 싶다. 감성적이면서도 귓가에 남는 멜로디가 파워풀한 비트와 조합되어 가요로서도 훌륭한 ‘아이 니드 유(I NEED U)’가 타이틀곡이다. 깊은 생각 없이 신나게 즐기거나 느긋하게 들썩이기 좋은 곡들, 이후 이어질 무거운 세계와 접점이 되는 곡도 수록됐다. 꽤 들을 만하다고 느낄 즈음이면 다음 에피소드들을 플레이하게 될 것이다. 이 일곱 소년의 이야기와 그 스케일이 대체 어디까지 아득하게 뻗어 나갈지 궁금해하며.

기자명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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