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기사를 읽는 당신의 목은 2ℓ들이 생수병 12개 무게를 힘겹게 버티고 있을지 모른다. 목을 60° 정도 아래로 숙이고 읽는 중이라면 분명히 그렇다. 종이든 컴퓨터 모니터든 혹은 스마트폰이든, 무언가를 집중해 쳐다볼 때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목을 혹사한다. 특히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한 2009년 이후 목 디스크 환자는 70만명(2010년)에서 87만명(2015년)으로 늘어났다.

책 〈백년 허리〉로 허리 디스크에 대한 이해를 크게 신장시킨 정선근 교수(서울대학병원 재활의학과)가 후속작을 냈다. 이번에는 〈백년 목〉이다. 2016년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시사IN〉에 연재했던 ‘정선근의 백년 목’을 바탕으로 개념을 더 엄밀하게 다듬고 사례를 보강했다. 정선근 교수와 12월6일 만나 목 디스크의 원리, 통증의 속성, 치료 원칙, 생활습관의 교정에 대해 들었다. 그의 조언에 따르면, 이 기사에 너무 몰입하지 않아야 한다. 지면이나 화면에 코를 박는 자세는 특히 금물이다. 허리를 펴고 목을 편안히 세운 상태로 지면이나 스마트폰을 눈높이로 들고 보자. 데스크톱이라면 이 기회에 모니터를 높이는 게 좋다.

ⓒ시사IN 윤무영정선근 교수는 “디스크는 사실 평생 같이 살아가면서 관리 가능한 병이다”라고 말한다.
목 디스크와 허리 디스크는 무엇이 같고 어디가 다른가?

기본 원리는 같다. 디스크란 건 물렁뼈인데, 척추뼈 사이에 있어서 충격을 흡수한다. 안에는 수핵이라는 말랑말랑한 젤리가 들어 있고 겉은 섬유륜이라는 껍질이 싸고 있다. 허리나 목을 앞으로 구부린다고 생각해보자. 두 척추뼈가 부딪치면서 사이의 물렁뼈를 치약 짜내듯 뒤로 밀어낼 것 아닌가? 이때 디스크 뒤쪽 껍질이 찢어지면서 안의 젤리(수핵)가 밖으로 흘러나가 신경을 건드려 통증을 일으킨다. 이것이 디스크 탈출증이다. 앞으로 구부린 자세가 디스크에 나쁘다. 차이라면, 허리 디스크는 무게를 견디는 것이 핵심 기능인 반면, 목 디스크는 자꾸 움직이는 것이 본 기능이다. 목은 깨어 있을 때나 잘 때나 시간당 600번씩 움직인다.

좋은 자세는 어떤 건가?

사람이 자연스러운 자세로 서면 요추(허리뼈)와 경추(목뼈)가 앞으로 휘어진 C자 곡선을 그린다. 이 두 개의 C 커브를 각각 ‘요추 전만’과 ‘경추 전만’이라고 부른다(위 그림). 이게 디스크에도 가장 좋은 자세다. 이 C 커브 두 개를 유지한다고만 생각해도 중요한 건 다 이해한 것이다. 허리가 무너지면 목도 따라 무너진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해보라. 목이 앞으로 축 떨어지지 않나? 허리를 똑바로 펴면 목도 자연스럽게 C 커브를 그린다.

목을 숙이는 자세는 왜 나쁜가?

바른 자세에서 목 디스크는 머리의 무게만 떠받치면 된다. 5㎏ 안팎이다. 그런데 고개를 숙인 자세에서는 머리 무게에 더해서, 머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는 목 근육의 수축력이 디스크를 함께 압박한다. 60° 정도로 숙이면 디스크가 버티는 무게가 30㎏까지 늘어난다. 25㎏을 추가로 떠받치는 셈이다. 2ℓ들이 생수가 6병 단위로 포장되어 나오지 않나? 25㎏이면 그거 두 묶음이다. 이 논문을 읽고는 지하철을 타기가 무섭더라.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머리 위에 쇳덩어리가 달려 있는 게 보여서 안쓰럽다. 심지어는 목 운동으로 유명한 스트레칭 동작 중에도 사실 목에 나쁜 게 많다. 뒤통수에 깍지를 끼고 목을 구부리거나 턱을 당기는 동작 등이 그렇다.

거북목 자세(허리를 구부리고 목을 앞으로 뺀 상태에서 고개를 든 자세)는 얼핏 보면 C 커브가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다른가?

겉보기에 비슷하지만 전혀 다르다. 거북목 자세는 경추가 C 커브가 아니고 일자로 뻗어 있는 상태다. 거기서 머리만 치켜든 거다. 머리를 잡는 목 근육의 수축력이 더 세게 압박한다. 그냥 숙이는 상태보다 디스크에 더 나쁘다.

모니터를 보는 사무직들은 거북목 자세를 오래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에게는 수렵민 시절에 장착된 ‘몰두 본능’이 있는 것 같다. 무언가에 집중하면 모든 신경이 그쪽에 쏠리고 다른 감각은 사라지지 않나? 그런데 그게 수렵민의 사냥처럼 몇 분 정도라면 모를까, 현대인은 나쁜 자세로 모니터에 몇 시간씩 몰두할 일이 많다. 이건 목에 정말 치명적이다. 자연스럽게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드는 자세의 눈높이에 모니터가 있어야 한다. 노트북이라면 뭐라도 받침대를 써서 높여야 한다. 그리고 ‘몰두 본능’을 좀 자제해야 한다.

ⓒ사이언스북스 제공목 디스크를 악화시키는 전형적인 텔레비전 시청 자세. 이 자세는 후방 섬유륜이 찢어지도록 힘을 가한다.
디스크 탈출증이 환자를 괴롭히는 건 특히 통증 때문이다. 목 디스크의 통증은 허리 디스크의 통증과 어떻게 다른가?

원리는 비슷하고 통증의 양태는 좀 다르다. 디스크가 찢어지면 젤리 안에 들어 있는 세포들이 디스크 밖으로 나오는 순간 죽게 된다. 그러면서 염증이 생긴다. 이 염증이 신경을 자극하면 목부터 어깨를 거쳐 손끝까지, 그러니까 신경 뿌리부터 말초신경까지 통증이 쭉 뻗어나간다. ‘방사통’이라고 부른다. 염증이기 때문에 소염제 치료로 호전된다. 자연치유도 된다. 그런데 목 디스크가 찢어지는 순간과 염증이 생겨 통증이 느껴지는 순간이 시차가 꽤 있다. 사람들은 목을 무리하게 써서 생긴 통증인 줄 모르고 넘어간다. 그래서 상황이 악화된다. 또 디스크가 깨져서 아픈 통증도 있다. 디스크성 통증이라고 한다. 이것도 자연치유가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디스크성 통증은 ‘연관통’이라는 현상을 유발한다. 실제로는 목 디스크가 아픈 것인데 뒤통수, 턱관절, 어깨뼈 등등이 아프다고 느끼는 현상이다. 감각은 척수를 통해 뇌로 올라간다. 이때 몸의 여러 부위에서 온 감각 신호를 모아서 하나의 통로로 전달한다. 목 디스크에서 나온 감각과 승모근에서 나온 감각이 척수에서 같은 통로를 지나다 보니, 뇌는 목 디스크에서 온 통증 신호를 승모근에서 온 신호로 착각하는 일이 생긴다.

목 디스크는 허리 디스크만큼 증상의 전형적 속성이 알려져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목 디스크가 그만큼 증상이 다양하고 목이 원인이라는 걸 알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보자. ‘담 결렸다’는 말이 있다. 어깨 결리고 뻐근하고 고개를 돌리기 힘든 상태를 담 결렸다고 보통 말하는데, 며칠 있다 보면 낫는 경우가 많아서 별로 신경을 안 쓴다. 계속 아프면 한의원에 가거나 한다. 그런데 이게 사실 목 디스크 문제다. 실제로 목 디스크가 근육통과 근육 뭉침을 유발한다. MRI를 찍어도 안 나올 정도로 미세한 상처가 목 디스크에 난 단계다. 이 초기 신호를 알아채고 목을 관리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문제는 이게 근육 마사지를 받거나 한의원을 다니거나 하다 보면 낫는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목 디스크는 원래 저절로 좋아지니까 그런 건데, 정작 환자는 목 문제라는 생각을 못한다. 통증은 사실 축복이다. 몸이 보낸 중요한 신호다. 그런데 그걸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다.

근육 결림이나 뭉침은 아주 흔하게 누구나 겪는다. 그게 사실은 근육 문제가 아니란 말인가?

대부분은 목 디스크 상처 때문에 생기는 부차 현상이다. 전화국 설비가 고장 났다고 해보자. 전화국 직원은 불편한 게 없고 가정집만 불편하다. 여기서 전화국이 목 디스크이고 가정집이 근육이다. 물론 모든 근육 결림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토끼뜀을 해서 다리 근육이 찢어지는 건 목 디스크 문제가 아니겠지. 하지만 목, 허리, 등 쪽의 근육은 찢어질 가능성이 극히 드물다. 오히려 이런 쪽 근육은 주로 뭉친다. 이런 건 대부분 목 디스크 상처 문제다.

통증이 축복이라는 접근법이 신선하다.

방사통이 아주 심한 사람에게 스테로이드 주사를 놓으면 통증이 100에서 10~ 20 정도로 줄어든다. 그러면 환자들이 한 번만 더 놔주면 안 아플 것 같다고 한다. 맞지 마시라 그런다. 그 10에서 20의 통증이 당신 몸을 위해 중요하다고. 나쁜 자세를 하면 아프고 좋은 자세를 하면 사라지는 통증인데, 당신의 자세와 생활습관을 잡아주는 그 귀한 통증을 왜 없애느냐고 한다. 이 진화의 축복인 통증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를 못한다. 목과 허리에서 보내는 신호라는 걸 모르고 엉뚱한 치료를 한다. 그래서 인류가 고생한다.

현실에서는 수술을 권하는 의료인도 많다.

너무 아프니까 수술한다? 그러면 안 된다. 자세를 바로 하고 제대로 된 운동법으로 디스크 추가 손상을 피하면 아무런 치료 없이도 통증은 줄어든다. 통증의 핵심인 염증과 디스크성 통증은 둘 다 자연치유가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통증뿐만 아니라 손상된 디스크 자체도 어느 정도까지는 자연치유가 된다. 디스크의 이런 특징 때문에 사이비 치료가 창궐한다. 뭘 해도 통증은 가라앉으니까 환자는 치료가 효과를 봤다고 생각한다. 물론 수술이 필요한 환자도 있다. 중요한 근육에, 중대한 마비가 호전되지 않고 더 진행될 때는 수술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밥숟가락을 들 수 없을 정도로 팔 근육의 마비가 오는데 그게 점점 심해진다면 수술이 필요한 환자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얼마나 자주 만나나?

1년에 1500명 정도 환자를 보는데 그중 한두 명 될까 싶다. 물론 나(재활의학과)한테 오는 환자는 신경외과 가는 환자보다는 증상이 가벼울 것이다. 요즘은 수술을 하지 않으려는 경증 환자가 부러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니 내 경험이 엄밀한 연구나 통계는 아니다.

디스크 자연치유라는 게 의학계의 정설인가, 논쟁 중인 사안인가?

통증이 자연히 사라진다는 사실은 많은 분들이 동의한다. 찢어진 디스크 자체가 자연 치유된다는 대목은 그 정도 합의는 아니다. 아무도 논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현장 의사들은 크게 관심이 없는 쪽에 가깝다.

디스크는 덩치 큰 의료산업이다. 수술 무용론을 싫어하는 동료도 있을 텐데.

내게 대놓고 나쁜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친한 동기 신경외과의 중에 “너 때문에 수술 환자가 별로 없다”고 농담하는 친구는 있다. 디스크 환자들이 웬만하면 수술을 안 하는 경우는 체감상 늘어나는 것 같다.

자연치유를 강조하다 보니 자연주의 치유 신봉자나 현대 의학 불신론자들이 환호하기도 하더라.

나도 봤다. 황당하지(웃음). 이를테면 한방병원 같은 곳에서 자생요법이라며 얘기하는 치료법을 들어보면 참. 한번은 골프장 경영자가 나한테 골프장에 와서 강의를 해달라고 하더라. 캐디들 월급이 얼마인데 허리 낫는 약이라고 300만원어치 돈 쓰고 다니더라면서. 나는 자연치유를 강조하지만 신비한 자연의 힘이 아니라 과학에 근거한 주장이다.

‘목에 나쁜 자세 리스트’를 그림으로 만들어서 환자한테 보여주더라.

여섯 가지가 대표적으로 많이 하는 나쁜 자세다. 구부정한 자세로 책상에 앉기, 고개 숙이고 스마트폰 사용하기, 고개 숙이고 태블릿 PC 사용하기, 목을 뺀 자세로 일하기, 소파에서 잠자기, 옆으로 누워서 손으로 머리를 받친 채 텔레비전 보기 등이다. 목 디스크에 크게 부담을 주는 자세다. 여기에 높고 딱딱한 베개를 추가하면, 오는 환자들 중 대부분은 하나 이상에 걸린다.

어떤 베개가 목 건강에 좋은가?

목 디스크 환자들은 베개만 제대로 바꿔도 확 좋아진다. 뒤통수 닿는 곳보다 목이 닿는 곳이 높아서 목을 받쳐주는 베개가 좋다. 자는 중에도 경추 전만을 유지시켜준다. 숨 쉴 때마다 같이 움직여주는 베개가 좋다. 그래서 단단한 것보다는 푹신한 게 좋다. 전형적으로 나쁜 베개가 목침이다. 목침 쓰던 옛날 분들이 요즘 사람들처럼 오래 살았다면 목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돌침대 같은 딱딱한 침대는 허리에 나쁘다. 예전에는 허리가 아프면 바닥에서 자라는 말도 많이 했는데, 잘못된 속설이다. 아마 휘거나 푹 꺼진 불량 매트리스가 많던 시절에 나온 말인 것 같다.

잘 때도 경추 전만과 요추 전만을 유지하는 게 핵심이라는 의미인가?

그렇다. 그래서 경추전만을 받쳐주는 베개로 똑바로 누워 자는 자세가 좋다. 잠버릇 때문에 옆으로 누워 자야 한다면 척추가 휘지 않도록 베개 높이를 맞추는 게 그나마 좋다. 너무 낮아도 높아도 척추가 옆으로 휘어서 나쁘다.

디스크 탈출증은 굉장히 치명적이고 무서운 이미지인데, 그걸 깨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책을 쓰고 강연을 다니고 방송에 나가는 이유도 그거다. 디스크는 사실 평생 같이 살아가면서 관리할 수 있는 병이다. 통증과 병에 대한 인식과 이미지를 바꾸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일단 발병하면 치명적인 게 아니라, 이 병에 아주 여러 단계가 있고 통증은 보통 자연치유되며 수술은 극히 드물게 최악의 상태일 때만 하면 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래야 무분별한 수술이나 시술도 줄어든다. 디스크는 걸리면 수술하고 안 걸리면 잊고 사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척추 위생’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우리가 세균 감염을 피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위생을 관리하듯, 좋은 자세와 운동법으로 척추를 관리하는 개념으로 바꿔야 한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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