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가 살아야 민주주의가 산다”
  • 김동인 기자
  • 호수 535
  • 승인 2017.12.1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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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4일 ‘언론 독립, 탐사보도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저널리즘 콘퍼런스가 열렸다. <시사IN> 창간 10주년 기념행사로 연 이번 콘퍼런스에서 다양한 국내외 탐사보도 사례가 소개되었다.
기자가 고생하고 언론이 길들여지지 않을수록 독자는 행복하고 권력을 가진 이들은 불편하다. ‘워터게이트’ 보도로 유명한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진짜 기자라면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이 망할 놈들(Bastards)이 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지’라고 질문해야 한다.” 정부, 유력 정치인, 대자본이 숨기고 있는 진실을 언론이 찾아내기 위해 필요한 것, 바로 언론의 독립성과 꾸준한 탐사보도다.

편집권 독립을 외치며 창간한 <시사IN>은 창간 10주년을 맞아 저널리즘 본연의 가치를 탐색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언론 독립, 탐사보도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열린 ‘2017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이하 SJC 2017)’가 12월4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국내외 탐사보도 전문 기자를 초청해 다양한 경험과 비전을 나눈 이번 콘퍼런스는 탐사보도와 민주주의가 결합한 촛불혁명 1주년을 돌아보고, 어떻게 지속 가능한 탐사보도를 할 것인지 모색하는 시간이었다.

200여 객석이 가득 찬 이번 SJC 2017은 스페인 <엘파이스> 탐사보도 팀장인 호세 마리아 이루호 기자를 비롯해,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의 김용진 대표, <한겨레> ‘최찾사(최순실을 찾는 사람들)’ 팀에서 활약한 하어영 <한겨레21> 이슈팀장, 국내 대표적인 탐사기자로 활동 중인 주진우 <시사IN> 기자가 연사로 나섰다. 방송 스케줄 때문에 무대에 서지 못한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은 JTBC 탐사보도의 기조와 현황, 향후 이어질 고민을 담은 영상을 보내왔다.

ⓒ시사IN 신선영‘<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 첫 연사로 나선 호세 마리아 이루호 스페인 <엘파이스> 탐사보도팀장.
본격적인 행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행사장에는 <시사IN>이 지난 4개월간 취재한 ‘저널리즘 미래를 묻다’ 기획 보도 영상이 상영됐다. 미국 <쿼츠>와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영국 <가디언>, 스페인 <엘파이스>와 <엘콘피덴시알>, 덴마크 <폴리티켄>, 독일 <슈피겔> 등 미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탐사보도 전문 기자와 에디터가 등장해 각자가 가진 생각과 저널리즘 철칙을 밝혔다.

<시사IN> 표완수 대표이사 겸 발행인의 환영사와 더불어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이창호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박영선·신경민·손혜원·김종민·박용진 국회의원,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김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김종욱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 정치권 인사도 이날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의 영상 발제로 본격적인 콘퍼런스가 막을 올렸다. 손 사장은 JTBC의 탐사보도 원칙을 ‘어젠다 키핑(Agenda Keeping)’으로 명명했다. 중요 이슈를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보도하는 것이 JTBC 탐사보도의 핵심이라 설명했다. 손 사장은 그가 뉴스에서 종종 언급하는 “한 걸음 더”라는 기조가 ‘어젠다 키핑’과 맞닿는다고 설명했다. 손 사장은 JTBC의 이 같은 시도가 “다매체 시대에서 TV 뉴스가 살아남는 법과 연결된다”라고 말했다. “하루 종일 인터넷에서 뉴스를 소비하는 시대에 저녁 TV 뉴스를 보는 분들에게 인터넷에서 본 뉴스 수준으로는 의미가 없다”라고 말한 손 사장은 탐사보도가 매체의 브랜딩과 생존 전략으로서 가치 있다고 강조했다.

ⓒ시사IN 신선영호세 마리아 이루호 스페인 <엘파이스> 탐사보도팀장,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 하어영 <한겨레21> 이슈팀장, 주진우 <시사IN> 탐사보도 전문기자(왼쪽부터).
뒤이어 호세 마리아 이루호 <엘파이스> 탐사보도팀장이 첫 연사로 나서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루호 팀장은 스페인 <엘파이스> 탐사보도팀의 성과와 노력을 설명했다. 1976년 창간한 <엘파이스>는 스페인 국내뿐 아니라 중남미 지역까지 취재 대상과 독자층을 넓힌 스페인어권 대표 언론사다. 이루호 팀장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민주주의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스페인 언론계의 특수성을 설명하며, 독재의 잔흔을 쫓아 각종 권력형 비리, 테러리즘을 취재한 경험을 나누었다.

“한국에서도 언론사 간 협업 활발해져야”

특히 이날 이루호 팀장이 발표한 ‘욜란다 살인자의 숨겨진 삶(2013년 보도)’ 사례는 현장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30년 전 욜란다라는 10대 여성을 살해한 범인을 이루호 팀장은 3년간 추적했다. 살인범은 이름을 바꿔 여전히 스페인 경찰청을 위해 일하며, 전산 전문가·첩보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밝혀내 스페인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루호 팀장은 이 보도로 2014년 스페인 국제저널리즘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사IN 조남진‘2017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의 참석자들이 국내외 탐사보도 사례를 듣고 있다.
이루호 팀장의 뒤를 이어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는 최근 탐사보도 분야에서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를 잡은 대규모 데이터 유출 사건과 이를 파헤치기 위한 국제 협업 사례를 발표했다. 과거 KBS 탐사보도팀을 이끌었고, 현재 국내 유일 ICIJ(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회원인 김 대표는 ICIJ의 조세회피처 관련 데이터 유출 사건인 ‘파나마 페이퍼스(2016)’와 ‘파라다이스 페이퍼스(2017)’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각각 2.6TB(테라바이트), 1.4TB에 달하는 엄청난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ICIJ는 자체 DB 검색 툴을 제작했고, 이를 통해 조세회피처에 재산을 숨긴 인물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김용진 대표는 향후 비영리·비당파 탐사보도 조직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동유럽 독립 탐사저널리스트의 모임인 OCCRP처럼 기자로 활동하기 위험한 환경에서도 탐사 정신을 발휘하는 저널리스트가 많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한국에서도 언론사 간 협업이 활발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어영 <한겨레21> 이슈팀장은 촛불 1주년을 맞아 지난해 <한겨레>에 꾸려진 ‘최찾사(최순실을 찾는 사람들)’ TF팀의 구성과 취재를 설명했다. 그는 2016년 9월1일 최찾사가 구성되었고, 현안 대응을 위한 협업과 분업이 필수적이었다고 밝혔다. 일찍 출발해 앞서간 <한겨레>의 보도는 여타 언론사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TF를 구성케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하 팀장은 <한겨레> 보도의 한계도 지적했다. <한겨레>가 박근혜 게이트 취재를 주도했음에도 탐사보도의 성과를 자사 브랜드 향상으로 이끌지 못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탐사보도 경험은 편집국이 상시 탐사보도팀 체제의 필요성을 공유하는 계기가 되었고, 영상과 데이터 저널리즘 등 다양한 분석 및 표현 요소를 활용하는 문화가 정착되었다고 설명했다.

하 팀장의 뒤를 이어 <시사IN> 주진우 기자가 최근 취재하고 있는 ‘MB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2007년 12월 에리카 김 인터뷰 기사를 화면에 띄운 주 기자는 10년간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각종 의혹을 쫓은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며 취재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발표 후반, 주 기자는 ‘MB 프로젝트’에 대중의 관심을 이끌기 위한 다양한 플랫폼 활용 사례를 소개했다. 책 <주진우의 이명박 추적기>를 출간하고, 가수 이승환씨는 ‘돈의 신’이라는 곡을 발표했으며, 해외 계좌 추적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저수지 게임>도 개봉했다. 최근 주 기자는 김어준 총수, 김용민 PD와 함께 팟캐스트 <다스뵈이다>를 시작했다.

ⓒ시사IN 조남진‘2017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에서 축사를 하는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이날 현장에서 각 연사들은 탐사보도 성과를 설명했지만, 한편으로는 녹록지 않은 미디어 환경도 언급했다. 이루호 팀장은 <엘파이스>가 스페인 내에서 상대적으로 튼튼한 언론임을 강조하면서도, “최근 스페인에서도 탐사보도 환경이 악화되었다”라고 말했다. 탐사보도를 하려는 젊은 기자가 갈수로 줄어들고 있으며, 기자들을 향한 테러 위협도 우려스러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하어영 팀장은 최순실 특종 보도 이후, 인쇄 매체와 텔레비전 뉴스 간의 파급력 차이를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고, 주진우 기자는 특종 보도를 하더라도 주요 포털 사이트의 뉴스 편집 과정에서 소외되는 상황을 설명했다. <엘파이스> <한겨레> <시사IN> 등 프린트 미디어는 모두 유료 독자 하락을 체감하고 있다.

현장을 찾은 참석자들의 질문도 쇄도했다. 프로그램마다 연사 발표 30분, 질의응답 20분으로 구성된 이번 콘퍼런스에서 참석자들은 탐사보도에 관한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민주주의 복원 과정에서 독자의 탐사보도에 대한 요구와 갈망이 매우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매체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언론의 독립성과 꾸준한 탐사보도가 절실한 순간임을 현장을 찾은 모든 이들이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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