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바람은 법원도 비켜가지 않는다. 촛불혁명의 영향은 국민 중심의, 시민 중심의 법원을 요구한다. 이에 걸맞게 새 대법원장도 취임했다. 하지만 지금은 법원 개혁·사법 개혁이 제대로 될 것인가를 걱정해야 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첫째, 법원 개혁이 너무 조용하게 법원 내부에서만 진행되고 있다. 법원 개혁이라면 국민적 관심사다. 국민과 함께 시민과 더불어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법원의 개혁을 가장 바라는 것은 재판을 받는 국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원 개혁기구 구성에 법원 외부 인사는 없다. 법관들만으로 개혁을 추진 중인 것이다. 개혁 과제가 법원 중심으로 제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좋지 않은 신호다. 그 결과 개혁이 거의 진행되고 있지 않다. 실제로 진행된 것은 ‘판사 블랙리스트’ 재조사뿐이다.
 

ⓒ연합뉴스김명수 대법원장은 새 대법관 후보자로 법원 고위직 출신을 임명 제청했다.

둘째, 대법관 제청과 임명 과정에서 법원 외부가 배제되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11월28일 새 대법관 후보자로 임명 제청한 안철상 대전지방법원 원장과 민유숙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모두 법원의 고위직 출신이다. 인권과 공익에 평생을 헌신해온 외부 인사를 대법관으로 제청해 법원의 인권 옹호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는 없었다.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를 외부에 개방된 법원이 아니라 법관 내부의 다양화로 축소한 것이다. 역시 좋지 않은 신호다.

우리 역사를 보면 법원 개혁·사법 개혁은 항상 국민의 힘으로 이루어져왔다. 법원 내부에는 개혁을 할 만한 비전과 리더십이 없었기 때문이다. 법원은 항상 보수적이었다. 1993년 사법발전위원회(대법원 산하), 1995년 세계화추진위원회(국무총리 산하), 1999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대통령 자문기구), 2003년 사법개혁위원회(대법원 산하), 2005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대통령 자문기구) 등의 활동은 모두 법원 외부에서 주도한 개혁이었다. 법원은 사법 개혁 과정에서 줄곧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응했다. 다만 참여정부의 사법 개혁에서는 법원 일부가 적극적으로 개혁에 임했다. 이때도 개혁을 이끈 힘은 노무현 대통령의 사법 개혁 의지였고, 여기에 참여한 외부 인사들의 노력이었다.

판사 임용에 일대 변화를 몰고 온 법조일원화 도입 과정을 보아도 외부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법조일원화는 10년 이상 사회활동을 한 변호사 중에서 법관을 임용하는 제도다. 2003년 사법개혁위원회의 법조일원화 논의에서 실무 작업을 담당했던 나는 전면적인 법조일원화를 주장했다. 그때도 법원은 부정적 태도를 취했다. 치열한 논쟁 끝에 서로 양보하여 단계적으로 법조일원화를 도입하기로 결론이 났다. 이처럼 법조일원화 같은 당연한 제도도 법원은 처음에는 거부했다. 법원 외부에서 법조일원화를 수십 년 동안 주장하고 개혁 과제로 상정하고 치열하게 논쟁한 끝에 겨우 도입되었다. 법원 내부에서 개혁을 추진했더라면 법조일원화는 아직도 도입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법 개혁 역사는 시민과 법원이 함께할 때 제대로 된 개혁, 큰 개혁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법원 개혁·사법 개혁 양상은 이런 역사의 흐름에 어긋난다. 사법 개혁의 비전과 리더십을 시민이라는 ‘바다’에서 찾지 않고 법원이라는 좁은 ‘우물’에서 구하고 있는 것이다.

법원 중심의 사법 개혁은 법원 구성의 다양화에 대한 오해도 불러일으킨다. 대법원을 포함한 법원 구성의 다양화는 시민들의 다양한 생각을 반영하는 것만이 아니다. 보수적이고 경직된 법원이 개혁적이고 유연하게 변할 수 있도록 외부 인사 ‘수혈’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외부 인사 중 평생을 인권과 공익에 헌신하면서 살아온 공익적 인물이 더 많이 대법관이나 고위직 법관이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법원 외부의 인사를 임용함으로써 도움을 받는 것은 외부 인사 자신이 아니라 바로 법원이다. 새로운 비전과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 대법관이 되는 순간 법원의 비전과 리더십이 강화된다. 인권을 지키는 마지막 관문으로서 권위와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법원이다.
 

ⓒ연합뉴스2011년 12월7일 문재인(오른쪽 두 번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토크 콘서트에서 검찰 개혁을 주제로 발언하고 있다. 왼쪽 두 번째가 김인회 교수.

 

법원이라는 ‘우물’에서 시민이라는 ‘바다’로
다양성은 법원 내부의 다양성에 그치면 안 된다. 이번 대법관 제청은 법원 내부에서 다양화를 생각한 결과다. 시야가 너무 좁다. 법원 내부에서 서울대 출신이 차지하던 자리를 비서울대 출신이 차지하는 꼴이다. 큰 변화는 없다. 대법관으로 제청된 법관들이 몇몇 판결에서 사회의 요구를 담아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판결은 법관들만이 만든 게 아니다. 판결의 이면에는 법원 외부에서 부당함에 맞서 싸웠던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있다. 한승헌 변호사의 지적처럼 사법부 독립을 주장하고 지켜온 것은 사법부로부터 핍박받은 사람들이다.

시민을 배제한 법원 중심의 개혁은 법원 개혁·사법 개혁을 부분적으로 만든다. 모든 조직에 공통된 조직 이기주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에서 멀어진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제시한 사법 개혁 과제는 너무 법원 중심이다. 법관의 독립, 상고심 제도 개선,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 실현 등 법원이 오랫동안 주장해왔던 개선 사항 중심이다.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 국민참여재판 확대, 법원의 지방분권, 법원의 과거사 정리 같은 시대의 요구와 굵직한 개혁 과제는 빠져 있다.

개혁을 하는 데 도움이 필요한 것은 시민이 아니라 법원이다. 법원이 외부에서 시민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때 진짜 법원 개혁·사법 개혁이 시작된다. 지금과 같은 법원 중심의 부분적인 움직임은 개혁을 축소하고 지연시킬 뿐이다.

폐쇄적인 법원과 구경꾼인 시민. 김명수 대법원장이 원하는 모습은 아닐 터이다. 열린 법원,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법원, 외부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자율적인 법원이 되어야 대법원장이 원하는 개혁도 제대로 할 수 있다.

 

기자명 김인회 (변호사·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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